전쟁사 13

高唐전쟁(647-8년)(3)

1. 제 2차 고당전쟁(647-8년) 보장왕 6년(647) [봄 2월에] [당나라] 태종이 다시 군대를 보내려 하니 조정의 의논이 이러하였다. “고구려는 산에 의지하여 성을 쌓아서 갑자기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전에 황제께서 친히 정벌하였을 때 그 나라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었으며, [우리가] 이긴 성에서도 실로 그 곡식을 거두어 들였으나 가뭄이 계속되었으므로 백성들의 태반이 식량이 부족하였습니다. 이제 만약 적은 군대를 자주 보내 번갈아서 그 강토를 어지럽혀, 그들을 명령에 따라 분주히 움직이게 해서 피곤하게 하면, [그들은] 쟁기를 놓고 보(堡)로 들어갈 것이며, 수 년 동안 천리가 쓸쓸하게 되어 인심이 저절로 떠날 것이니, 압록수 북쪽은 싸우지 않고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태자 첨사(詹事..

전쟁사 2023.11.16

高唐전쟁(645년)(2)

5. 제 1차 고당전쟁 발발(645년) 庚戌,上自将诸军发洛阳,以特进萧瑀为洛阳宫留守。 경술일(12일)에 황상은 스스로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낙양을 출발하였는데 특진(特進)인 를 낙양궁 유수로 삼았다. 645년 음력 2월 12일 당 태종은 낙양을 출발한다. 乙卯,诏:“朕发定州后,宜令皇太子监国。” 을묘일(17일)에 조서를 내렸다. “ 짐이 정주(定州)를 출발한 다음에 의당 황태자로 하여금 감국(监国)하게 한다.” 정주(定州)가 탁군이며 수와 당의 동북방 최전방이다. 开府仪同三司致仕尉迟敬德上言: “陛下亲征辽东,太子在定州,长安、洛阳心腹空虚,恐有玄感之变。 且边隅小夷,不足以勤万乘,愿遣偏师征之,指期可殄。” 上不从。 개부의동삼사로 치사(致仕)한 이 말씀을 올렸다. “ 폐하께서 요동으로 친히 정벌을 떠나시고 태자는 정주(..

전쟁사 2023.11.15

高唐전쟁(645년)(1)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은 645년에 발생하여 고구려가 멸망할때까지 승패를 거듭하며 20년 이상을 지속한 전쟁이다. 그리고 그 전쟁은 지금의 요녕성 요동에서 일어났고 고구려의 평양은 지금의 북한 평양이라고 알고 있다. 1. 연개소문의 쿠데타 (642년) 貞觀 十六年 十一月 丁巳, 营州都督张俭奏高丽东部大人泉盖苏文弑其王武。 정관 16년(642년) 11월 정사일(5일)에 영주(營州)도독 이 고구려 동부대인 이 그의 왕인 를 시해하였다고 아뢰었다. 연자유(용암) - 연태조(연씨) - 연개소문(603-657) 영류대제 보장대제 盖苏文凶暴,多不法,其王及大臣议诛之。 은 흉포하고 대부분 법을 지키지 아니하여 그 왕과 대신들이 그를 죽이려고 논의 하였었다. 盖苏文密知之,悉集部兵若校阅者,并盛陈酒馔于城南, 召诸大臣共临视,勒兵..

전쟁사 2023.11.14

高隋전쟁(598년 612-4년)(3)

1. 수 양제의 2차 침공(613년) 冬,十月,甲寅,工部尚书宇文恺卒。 겨울 10월 갑인일(8일)에 공부상서 가 죽었다. 十一月,己卯,以宗女为华容公主,嫁高昌。 11월 기묘일(3일)에 종실의 딸을 화용(華容)공주라 하고 고창(高昌, 신간성 트루판시 동쪽)에 시집을 보냈다. 宇文述素有宠于帝,且其子士及尚帝女南阳公主,故帝不忍诛。 은 평소에 황제에게 총애를 입으며, 또한 그의 아들 은 황제의 딸 남양(南陽)공주를 모시고 살았으므로 황제는 차마 죽이지 못하였다. 甲申,与于仲文等皆除名为民,斩刘士龙以谢天下。 萨水之败,高丽追围薛世雄于白石山,世雄奋击,破之,由是独得免官。 以卫文昇金为紫光禄大夫。 诸将皆委罪于于仲文,帝既释诸将,独系仲文。 仲文忧恚,发病困笃,乃出之,卒于家。 갑신일(8일)에 등과 더불어 모두 제명시켜서 백성으로 만들고..

전쟁사 2023.11.13

高隋전쟁(598년, 612-4년)(2)

612년 정월 드디어 수양제 은 고구려 정벌에 나선다. (7) 세계 최대의 전쟁 발발 壬午,诏左十二军出镂方,长岑、溟海、盖马、建安、南苏、辽东、玄菟、扶馀、朝鲜、沃沮、乐浪等道, 右十二军出黏蝉、含资、浑弥、临屯、候城、提奚、蹋顿、肃慎、碣石、东施、带方、襄平等道,骆驿引途,总集平壤, 凡一百一十三万三千八百人,号二百万,其馈运者倍之。 宜社于南桑干水上,类上帝于临朔宫南,祭马祖于蓟城北。 帝亲授节度:每军大将、亚将各一人; 骑兵四十队,队百人,十队为团,步卒八十队, 分为四团,团各有偏将一人; 其铠胄、缨拂、旗幡,每团异色; 受降使者一人,承诏慰扶,不受大将节制; 其辎重散兵等亦为四团,使步卒挟之而行;进止立营,皆有次叙仪法。 임오일(2일)에 조서를 내렸는데, 좌익 12군은 누방(鏤方), 장령(長岑), 명해(溟海), 개마(蓋馬).건안(建安), 남소(南蘇),..

전쟁사 2023.11.11

高隋전쟁(598년, 612-4년)(1)

세계 최초의 전쟁이 BC 2690년경에 일어난 치우와 헌원의 탁록전쟁이라면 세계 최대의 전쟁은 612년에 일어난 고구려와 수나라 사이에 일어난 살수대첩이다. 우리는 이 세계 최대의 전쟁이 지금의 요동에서 일어난 전쟁이며 살수는 북한의 청천강이라고 알고 있다. 612년 고수전쟁 시 수나라의 좌익12군(붉은 원) 중 건안, 남소, 부여와 우익 12군(푸른 원) 중 임둔, 답돈, 숙신, 갈석은 지도에 지명이 없어 표시하지 못하였음. 우선 598년에 일어난 제 1차 고수전쟁부터 살펴보자 舊史 曰 嬰陽武元好太烈帝 弘武九年 帝遣 西部大人淵太祚 往討登州 擒殺 摠管韋沖 구사(舊史)에 이르기를 '영양무원호태열제 홍무 9년(AD 598)에 황제가 서부대인 를 파견하여 등주를 토벌하고, 총관 을 사로잡아 주살하였다. 先是 ..

전쟁사 2023.11.10

高燕전쟁(407년, 광개토호태왕 vs 모용희)

후연(後燕)은 가 서기384년에 세워 서기407년까지 용성(龍城)과 중산(中山)을 중심으로 아주 짧은 기간 존속했던 나라이다. 그 짧은 기간에 임금은 4명이나 바뀐다. 이들이 자몽천에 거주할 때 고구려가 제후국으로 삼아 구려의 땅을 지키게 하였는데 모용외가 단부를 공격하여 극성으로 도읍을 옮긴 후 모용황이라는 걸세출의 영웅을 맞아 고구려를 제압하고, 하북의 패자로 등장한 것이 전연(前燕)이며 이를 이어받은 것이 후연(後燕)이다. 이 후연과 고구려의 광개토호태왕과의 전쟁이 407년에 발생한 고연(高燕)전쟁이다. 1. 요동 탈환 고국양대제2년{AD385}을유 6월, 이 나이 48살에 에게 피살되었다 들었다. 황상의 아우 에게 명하여, · 등을 데리고 4만병을 끌고나가 토성(菟城)과 장무(章武) 등을 쳐서 빼..

전쟁사 2023.11.05

麗濟전쟁(고국원제 vs 근초고대왕)

318년 일본 열도(列島)의 야마토에 정착한 숭신왕(의라)을 몰아내고, 야마토는 에게 맡긴 후 333년 열도(列島)의 동정(東征)을 마지막으로,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야마토 타케루(倭建命, 日本武尊)란 이름을 남기고 대륙으로 건너 온 백제 비류(比流)왕의 아들 는 대륙의 한성(漢城, 위례성)에서 前燕의 과 고구려의 고국원제 와 더불어 하북의 패권을 다투게 된다. 342년 高燕전쟁을 승리로 이끈 은 344년에 우문 선비를 멸하여 병합하고, 345년에는 고구려의 남소를 함락시켰으며, 346년 무렵에는 서부여를 침공하여 부여의 호족들을 낙랑과 대방지역으로 이주케 한다. 모용황의 서부여 침공을 막지 못한 계왕은 왕위에서 물러나고 가 제위에 오른다. 고구려와 우문국의 정벌을 마친 은 중원으로의 남하정책을 준비하고 ..

전쟁사 2023.11.03

高燕전쟁(342년, 고국원제 vs 모용황)

고연(高燕)전쟁은 후조와의 전쟁에서 대승한 전연의 이 중원진출을 하기 전 배후세력인 고구려를 제압하고자 342년에 일어난 전쟁이다. 고국원제12년{AD342}임인, 2월, 에게 명하여 환도성(丸都城)의 지붕을 고쳐 잇게 하였다. 추8월, 환도성으로 천도하였다. 서진하려는 뜻이 있었다. 고국원제는 관구검의 난(246년)으로 폐허가 된 환도성(창남산성)을 수리하여 평양의 동황성에서 환도성으로 천도한다. 은 동진하고자 하였고, 상은 서진하고자 하였으니, 이들의 세력은 충돌할 것이었고, 그리 되었다. 10월, 이 용성(龍城)으로 천도하였다. 모용황은 극성(棘城)에서 용성(龍城)(今 보정시 서수구 동부산촌)으로 천도한다. 스스로 고구려를 먼저 평정한 이후에 우문을 멸하고서야 중원을 도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전쟁사 2023.11.02

趙燕전쟁(338년)

338년 갈족이 세운 後趙의 와 선비족이 세운 前燕의 사이에 일어난 전쟁을 趙燕전쟁이라 한다. 이때 後趙의 수도는 업성(鄴城)이고 前燕의 수도는 극성(棘城)이고 고구려의 수도는 평양의 동황성(東黃城)이었다. 고국원제8년{AD338}무술, 정월, 이 와 함께 씨를 쳤더니, 씨는 에게 과 대적하게 하였다. 은 자기의 군사를 이끌어 에게 투항하고 죄를 청하였다. 이에 은 “형을 이렇게 만든 것은 제 잘못입니다.”라 말하고는, 의 계책을 써서 씨를 깨고 씨의 땅도 많이 빼앗았더니, 가 대노하여 과 맞붙어 싸웠다. 이에 낙랑(楽浪)의 현들 중에서 많은 현들이 돌아섰고, 태수인 은 달아나서 극성(棘城)으로 들어갔다. 가 를 우리에게 보내와서 싸움을 도와달라고 청하기에, 군량이 다하여 그럴 수 없다고 하였더니, 은 ..

전쟁사 2023.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