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당유고

위화진경(魏花眞經) 完譯(11)

지보고 2023. 11. 29. 09:58

 

 

56.  의인(義人)  <신룡神龍>과 <조의曹義>

 

神龍 曹義 最多遊春 得子數百人

<신룡神龍>과 <조의曹義>는 가장 많이 봄나들이를 하여 자식이 수백 명이었다.

 

天下之姓曹神者 皆祖之 常語人曰

汝以眞 吾以元 汝以現 吾以隱 仙院 雖 廢吾 其祀矣 果然矣

온 세상의 조(曹)씨는 모두가 그를 조상으로 하니 언제나 사람들의 말이

“ 너는 진(眞)이고 나는 원(元)이고, 너는 현(現)이고 나는 은(隱)이다.

비록 선원이 나를 폐하더라도 제사를 받을 것이다.“ 라고 하니 과연 그리 되었다.

 

神龍 與郎 同年 而先二月

<신룡神龍>은 <위화>랑과 나이가 같은데 2개월 앞섰다.

 

自云 神龍 交 于其母 而生 乃名 神龍

스스로 말하기를 신룡(神龍)이 그 어머니에게 교접하여 태어나 이름을 <신룡神龍>이라 하였다고 하였다.

 

長於羊皮奾子 奾子 愛其壯陽 而密私之

자라서 <양피羊皮> 선자(奾子)에게 소속되었는데 

선자(奾子)는 그 강한 양기(陽氣)를 사랑하여 남몰래 사유(私有)하였다.

 

奾子有三夫 其一曰 玉人休父 其二曰 皮人卓五 其三曰 刀人國長

<양피> 선자는 세 남편이 있는데

첫 번째는 옥인(玉人) <휴부休父>이고 두 번째는 피인(皮人) <탁오卓五>이고 세 번째는 도인(刀人) <국장國長>이다.

 

三人議曰 兒龍得志 則吾輩 當踈 不如除之

세 사람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 어린 용(龍)이 뜻을 얻은 즉 우리 무리들을 소홀히 할 것이니 이를 제거함만 못할 것이다.”

 

乃誘 至陰處 欲刺之

이에 음침한 곳으로 유혹하여 <신룡神龍>을 주살코자 하였다.

 

神龍曰 汝等之欲害 我者爲奾子也

汝等 計拙反 爲理方所捕 而族之 吾爲龍子可甦 而專奾子

<신룡神龍>이 말하기를

“ 너희들이 해를 입히려고 하지만 나는 선자(奾子)를 위할 것이다.

너희들이 졸렬하게 반대하는 계책을 꾸미니 이방(理方)에서 가족을 잡아 가둘 것이고

나는 소생하여 용의 자식이 되어 선자(奾子)를 독차지 할 것이다.“

 

三人() 汝此陰處有 誰可知 而告 理方乎

세 사람이 말하기를

“ 너는 이와 같이 음침한 곳에 있는데 누가 알고 이방(理方)에 고소하겠는가?”

 

可急殺之 忽自樹上 有言曰 吾知之

급히 죽이려고 하니 갑자기 나무위에서 “내가 알고 있다”는 말이 들렸다.

 

나무 위에 <조의曺義>가 숨어 있었다.

 

三人乃懼曰 樹王知之

이에 세 사람은 부끄러워하며 말하기를  “ 수왕이 이를 알고 있다.”

 

乃止之 許爲 同夫

이에 주살하는 것을 금지하고 같이 남편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다.

 

神龍乃語奾子曰 汝愛我甚 故三人妬之 不若踈我 而保之

이에 <신룡>이 선자에게 말하기를

“ 당신이 나를 심히 사랑하여 세 사람이 이를 질투하니  만약 나를 소홀이 하지 않으면 보호할 것입니다.”

 

奾子乃佯笞 而放之 林間 龍 仰臥

이에 선자가 볼기를 때리는 체 하며 놓아주니 숲 사이에 용(龍)이 가슴을 위로하고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數樹果有 人 自樹轉樹 如飛 摘果 而飽之

나무에는 몇 개의 과일이 달려 있고 사람이 나무에서 나무로 굴러 과일을 따서 배부르게 먹었다.

 

龍問其爲誰 乃前日樹王也

용이 누구냐고 물으니 바로 어제의 그 수왕(樹王)이다.

 

<조의曹義>를 수왕이라고 속이고 있는 것이다.

 

短軀 炯目 有剽勇 常曰 馬有 同曹之義 人有 同樹之情

체구는 작고 눈은 빛이 나고 사납도록 용감하며 언제나 말하기를

“ 말(馬)은 조(曹 : 짝)와 같은 의(義)가 있고 사람은 나무와 같은 정(情)이 있다” 라고 하였다.

 

故名之 以曹義 二人一見如

그런 연유로 두 사람을 한 사람으로 보아 <조의曹義>라고 이름 하였다.

 

曹義라는 이름의 뜻이 두 사람의 의리라는 것이다.

 

舊曰 得長補短 吾人之謂也

옛말에 '긴 것을 얻어 짧은 것을 보충한다' 하니 우리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盖龍太長 而義太短也

<신룡>의 가장 긴 것으로 <조의>의 가장 짧은 것을 덮은 것이다.

 

遂 詣曹義 窟中 同其妻母

마침내 <조의曹義>의 처와 어머니가 같이 굴속에 있는 <조의曹義>에게 이르렀다.

 

若兄弟不歸 羊皮思之 不食 命其三夫索之 得於窟中 請歸

만약 형제가 돌아오지 않으면 <양피>는 밥을 먹지 않으려고 생각하여

그 세 남편에게 그를 굴속에서 찾아 구하여 돌아오라고 청하였다.

 

龍曰 吾無所技臥 遊終日 汝等各 以其業 媚妻 丈夫 豈可取食於女子乎

<신룡>이 말하기를

“ 우리는 기술이 없어 종일 누워서 놀고 있는데 당신들은 각자 그 직업으로 처에게 아첨하니

대장부가 어찌 여자에게서 밥을 얻어먹겠는가?“

 

三夫 以告羊皮 羊皮乃薦於后 欲爲院卒

세 남편이 <양피>에게 고하니 이에 <양피>가 후에게 천거하여 선원을 나오고자 하였다.

 

后見 其壯皃魁偉 而可之

후는 얼굴에 기상이 넘치고 기골이 장대함을 보았다.

 

龍仰天大笑曰 臣等皆 當世之英雄也 今補之 以衛卒 誰謂陛下聖乎

<신룡>이 앙천대소하며 말하기를

“ 신(臣) 등 모두는 당대의 영웅인데 지금 위졸(衛卒)로 임명하면 누가 폐하를 성인이라고 말하겠습니까?“

 

后曰 侍汝有功 而遷之矣

후가 말하기를  “ 네가 공을 세우기를 기다려 옮길 것이다.”

 

龍曰 臣日飮斗酒 豚肩 若與螻蟻輩 同食 則餓 而死 何待立功乎

<신룡>이 말하기를

“ 신(臣)은 하루에 한 말의 술을 마시고 돼지 넓적다리 하나를 먹는데

만약 누의배(螻蟻輩)들과 같이 먹으면 죽으니 어찌 공을 세워 모시겠습니까?“

 

누의(螻蟻) : 땅강아지와 개미라는 뜻으로 작아서 시시한 것을 비유한 말

 

乃手折銅馬柱 亂打衛卒 百余人 無敢敵者

손으로 동마(銅馬) 기둥을 꺾어 위졸(衛卒) 백 여 명을 난타하니 감히 대적할 자가 없었다.

 

后大驚曰 古莫柴之類也

후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 옛날에 없던 섶나무(柴 : 울타리로 쓰는 가시나무) 부류이다.”

 

命屬衛士曰 賜斗酒 烝豚

위사(衛士)에 소속토록하고 명하기를 말술과 돼지를 삶아 내리도록 하라고 하였다.

 

龍與義 拔雙刀 㘦而食之 旣醉 揚刀 而歌

<신룡>과 <조의>가 쌍도(雙刀)를 빼내어 잘라서 먹고는 술이 취하여 칼을 휘두르며 노래하였다.

 

令人笑啼飛刀 於樹上 枝葉隨意前落

나무 위로 칼이 나르고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게 하니

나뭇가지 잎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后喜聞其歌 每於月夜 與郎 抱臥 於殿上 使之 奏歌 于殿庭

후는 달밤이면 전각위에 <위화>랑을 안고 누워

전각의 정원에서 그를 시켜 노래를 연주토록 하여 그 노래를 기쁘게 들었다.

 

令弄刀 往來 爲戱 而欒之

칼을 희롱하며 오고가며 노니 란(欒 : 둥근 모감주나무)이 되었다.

 

未幾 山帝公主 將妻 剡梁

머지않아 <산제山帝> 공주를 <염량剡梁>의 처로 하기로 하였다.

 

비처(연제) - 산제(494- )

염신(옥량) - 염량(494- )

  

后與郎 宿 于剡院 失火 迫 於后寢人 皆危之

후와 <위화>랑이 염원(剡院)에서 자는데 실수로 불이 나서

불길이 침실로 들어 와 후는 다급해지고 모두가 위험에 처하였다.

 

龍與義 毁屋脊 而飛入 抱 后及郎 而逃禍 功爲第一加爵

<신룡>과 <조의>가 용마루를 헐고 비호같이 날아 들어와

후와 <위화>랑을 안아서 화를 모면하여 공이 제일이라 작위를 더하였다.

 

或云 非后 而公主也 又有地震 剡院 老樹王倒地

혹은 말하기를 후가 아니라 공주라고 하고

또 염원(剡院)에 지진이 일어나 늙은 수왕(樹王)이 땅에 쓰러졌다고 하였다.

 

后憂之曰 朕之蘖也

후가 이를 근심하며 말하기를

“ 짐의 얼(蘖 : 그루터기에서 돋은 움, 허물, 재앙)이다.”

 

龍義起之 如小株 如常

<신룡>과 <조의>는 평상시와 같이 작은 그루터기처럼 일어났다.

 

后益愛 獎之序 于仙臣之列

후는 더욱 사랑하여 선원의 서열로 격려하였다.

 

衆畏其勇 莫敢拒之 后出入必左右之曰 朕之雙獹也 不可無好牝

모인 사람들은 그 용맹함을 두려워하여 감히 거스러지 못하니 후가 출입할 때 반드시 좌우에 두고 말하기를

“ 짐의 두 준견(駿犬)이니 좋아하는 암컷이 없음은 불가하다.”

 

乃以蟾長女艾妻之 于龍義

이에 <섬장蟾長>의 예쁜 딸을 <신룡>과 <조의>의 처로 하였다.

 

有其妻 而不易 人益義之

그 처가 있으나 바꾸지 않으니 사람들은 더욱 의롭다고 하였다.

 

 

57. 6선가(仙家)의 계보

 

火猿之始 后復臨朝 命定 骨門 四十七宅 以明六仙之系

516년 정월, 후가 다시 조회에 임하여

골문 47집안을 정하여 이름 있는 6선가(仙家)의 계보로 정하도록 명하였다.

 

福公之後 有 彭公宅 東公宅 摩帝宅 碩孝宅

<복공福公>의 후손으로는  <팽공彭公>, <동공東公>, <마제摩帝>, <석효碩孝> 집안이 있고

 

일신(선도) - 복공

역공(불휘) - 팽공

월복(홍제) - 마제(90?-159)

공공(선효) - 석효

 

阿盧之後 有 月盧宅 尙盧宅 虹公宅

<아노阿盧>의 후손으로는 <월노月盧>, <상노尙盧>, <홍공虹公> 집안이 있고

 

일광(알영) - 아노

일성(지진내례) - 삼달라

과노(삼달라) - 월노

강노(상씨) - 상노

치공(석홍) - 홍공

 

奉母之後 有 發良宅 白馬宅 順貞宅 馬貞宅

<봉모奉母>의 후손으로는 <발량發良>, <백마白馬>, <순정順貞>, <마정馬貞>집안이 있고

 

일광(알영) - 봉모

봉모(산제) - 발량

                    백마(100?-160)

봉모(성제) - 순정

                    마정

<산제>는 <알영>의 딸이고 <성제>는 <월광>의 딸이다.

 

 

大盧之後 有 日知後 昌永宅 馬知那宅 天公宅 馬日宅 又有 許婁宅 羽烏宅 河婁宅

<대노大盧>의 후손으로 <일지日知>의 후손 <창영昌永>, <마지나馬知那>, <천공天公>, <마일馬日> 집안이 있고

또 <허루許婁>, <우조羽烏>, <하루河婁> 집안이 있었다.

 

일광(알영) - 대노

대노(아리) - 일지(85?-129)

일지(야비) - 창영(110?-176)

일지(한나) - 마지나(110?-179)

                    사을나

차웅(운제) - 아세

일지(아세) - 천공

일지(사을나) - 마일

대노(구을) - 허루(80-155)

대노  (?)    - 우조

대노(자산) - 하루

 

別封 山檍宅 辛公宅 馬公宅 汗兒宅 文支宅 吉公宅 齊居宅 玉君宅 明宣宅 屈公宅

楊山宅 大刀宅 白山宅 金山宅 于老宅 大樹() 月瓠宅 盤山宅 仲解宅 車宿宅 好淵宅

長沙宅 牟梁宅 章伊宅 實相宅 比太宅 乃宿宅 阿珍宗宅 宝信宅

별도로 <산억山檍>, <신공辛公>, <마공馬公>, <한아汗兒>, <문지文支>, <길공吉公>,

<제거齊居>, <옥군玉君>, <명선明宣>, <굴공屈公>, <양산楊山>, <대도大刀>,

<백산白山>, <금산金山>, <우로于老>, <대수大樹>, <월호月瓠>, <반산盤山>,

<중해仲解>, <거숙車宿>, <호연好淵>, <장사長沙>, <모량牟梁>, <장이章伊>,

<실상實相>, <비태比太>, <내숙乃宿>, <아진종阿珍宗>, <보신宝信>

집안을 봉하였다.

 

방아(산도) - 산억(135?-193)

거신(알영) - 신공(60?-138)

파사(미례) - 마공(146-191)

윤공(흘고) - 길공(110-170?)

고허(돌산) - 제거(70?- )

유리(금당) - 옥군

훤명(장생) - 명선

심공(구을) - 굴공(66-141)

장도(알씨) - 대도(? -124)

내해(홍모) - 우로(277-331)

적공(무산) - 대수(70?139)

호공(월씨) - 월호(90?-149)

내해(옥모) - 중해(280- )

  ?  (홍아) - 거숙(439- )

심  (보반) - 호연(397-466)

눌지(보미) - 모량(434-503),  <모량>은 태후 <연제>의 어머니이다.

보해(보미) - 장이(425-490)

호물(보반) - 실상(395-461)

실성(아로) - 비태(416-481)

습보(홍아) - 내숙(436-501)

습보(보량) - 아진종(451-511)

미해(보미) - 보신(421-485)

 

 

其外諸宅 在眞骨者 稱宮 在仙骨者宗

그 외 여러 집안은 진골(眞骨)은 궁(宮)이라 칭하고 선골(仙骨)은 종(宗)이라 하였다.

 

於四十七宅 以統之 分置仙臣 于其宅 以供之 名曰宅相

47집안을 혈통으로 하여 그 집안에 선원의 신하를 나누어 두어 받들게 하니 이를 택상(宅相)이라 한다.

 

自是 宅相 憑籍 仙院 多 通宅母生子 以爲骨仙 歸合之 慶盛設火戱 以爲黑夜之樂

이로부터 많은 택상(宅相)들이 선원(仙院)을 빙자하여

택모(宅母)와 통정하여 아들을 낳아 골선(骨仙)이 되어 돌아와 하나가 되어

캄캄한 밤에 불꽃놀이로 성대히 경축하며 즐겼다.

 

時 富斗理 娘主 爲退花郡主 最善火戱

때에 <부두리富斗理> 낭주가 퇴화(退花) 군주(郡主)를 위하여 불꽃놀이에 최선을 다하였다.

 

宅相 龍周者 淺璜之私父也 善作火花 發五色烟 奇奇妙妙 幻變 百化狀 故呼爲龍火

택상(宅相) <용주龍周>는 <천황淺璜>의 사부(私父)인데

불꽃을 잘 만들어 오색의 연기를 내뿜으니 기기묘묘하고

환상적으로 변화하여 여러 색으로 바뀌니 용화(龍火 : 용불)라 불렀다.

 

后亦樂之 每以黑夜 取龍火設 于深苑中

후 역시 이를 캄캄한 밤마다 깊은 연못 가운데 용화(龍火)를 설치하여 즐겼다.

 

后在樓與郎 共臥 而賞之 雖風雨 而不滅

후는 누각에서 <위화>랑과 같이 누워 이를 감상하니 비록 바람이 불거나 비가와도 꺼지지 않았다.

 

后命各院 置火人 使龍周 敎其硝術 授 以奈麻

후가 명하여 각 원에 화인(火人)을 두어

용주(龍周)로 하여금 초술(硝術)을 가르치도록 하고 나마(奈麻)의 작위를 주었다.

 

龍周之父 宝周 爲烏士只 嬖臣 善 於房術 得爵 奈麻 人以爲泥 奈麻

<용주龍周>의 아버지 <보주宝周>는 <오사지烏士只>의 폐신(嬖臣)으로

방술(房術)을 잘하여 나마(奈麻)의 작위를 받았는데 진흙으로 사람을 만드는 나마(奈麻)이다.

 

龍周 以硝術 爲奈麻 人以爲火 奈麻

<용주龍周>는 초술(硝術)로 나마(奈麻)가 되니 불로 사람을 만드는 나마(奈麻)이다.

 

龍周笑曰 水火旣備 吾其興矣

<용주>가 웃으며 말하기를

“ 수화(水火)를 준비하여 사람을 만드니 우리가 흥(興)하는 것이다.”

 

富斗理 與龍周 相通 而生三子 皆聰明

<부두리>와 <용주>가 상통하여 세 아들을 낳았는데 모두가 총명하였다.

 

富龍善藥 與芬宗同年

<부룡富龍>은 약을 잘 지었는데 <분종芬宗>과 같은 나이이다.

 

甚善 后命 入別洞 爲藥手

매우 약을 잘 지어 후가 별동선원으로 들이어 약수(藥手)로 삼았다.

 

次斗龍 皃明美善歌

그 다음 <두룡斗龍>은 얼굴이 밝고 아름다우며 노래를 잘 하였다.

 

次理龍 亦端麗 善舞 亦能繪圖

그 다음 <이룡理龍> 역시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춤을 잘 추고 그림에 능하였다.

 

與執網 齋名 以此東西堂 亦推

<집망>과 더불어 명성을 나란히 하니 동서 학당에서 추천하였다.

 

龍周爲座首 龍周美䯾 而善言辭

<용주龍周>는 좌수(座首)가 되었는데 <용주>는 머리카락이 아름답고 말을 잘하였다.

 

좌수(座首) ; 지방 향청(鄕廳)의 우두머리

 

四十七宅 皆稱 其賢 乃爲龍周 立火人院 于退火 是爲 退火仙院也

47집안 모두가 그 현명함을 말하여 퇴화(退火)에 화인원(火人院)을 세우니 이것이 퇴화선원(退火仙院)이다.

 

雨斗 妻 塞宣 與后 同年 而善釀酒雜 以山果 甘酸 淸香 時人稱 以酒神

<우두雨斗> 처 <새선塞宣>은 후와 나이가 같은데

산의 과실로 여러 가지 술을 잘 담갔는데 신 맛이 나고 향기가 맑아 당시 사람들이 주신(酒神)이라고 칭하였다.

 

酒母 皆就 而習 其手 不能 盡其妙

주모들이 모두 나아가 그 손재주를 배웠으나 그 신묘함을 다하지 못하였다.

 

雨斗乃 以旬日 獻酒 爲例 名曰山酒

이에 <우두雨斗>가 초열흘에 술을 바치는 것을 관례로 하니 이 술을 산주(山酒)라 하였다.

 

后好飮山酒醉 則裸舞高歌

후가 산주(山酒)를 좋아하여 취하여 옷을 벗고 춤을 추며 크게 노래하였다.

 

而降神 卞人 曲直 完如目見

신이 내려오니 변인(卞人)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처럼 완연하게 잘잘못을 가렸다.

 

변인(卞人) : 옳고 그름을 법으로 가리는 사람. 

 

仙臣 神之 願得 山酒 以通其神

선원의 신하들이 이를 신(神)으로 여겨  산주(山酒)를 얻어 그 신(神)과 통하기를 원하였다.

 

富龍亦 以黃根 作橘酒 甘凉 宜暑 郎好飮之

<부룡> 역시 황근(黃根)으로 귤주(橘酒)를 담그니 달고 시원하여 피서를 할 만하여  <위화>랑이 이를 즐겨 마셨다.

 

塞宣聞之 迎富龍 于其家 而習之 論酒意 合遂與之 相通 願得 爲宅相

<새선>이 이를 듣고 그 집에서 <부룡>을 맞이하여 배우며 술의 의미를 논하다

마침내 하나가 되어 상통하여 택상(宅相)이 될 것을 원하였다.

 

后以藥手 不恕 塞宣 自願 爲別洞酒母 而欲從

후는 <부룡>이 약수(藥手)라 용서하지 않으니

<새선>이 자원하여 별동선원의 주모(酒母)가 되어 따르고자 하였다.

 

富龍(塞宣?)曰 臣之愛富龍 如陛下之愛仙君

<새선>이 말하기를

“ 신이 <부룡>을 사랑함은 폐하께서 선군을 사랑함과 같습니다.”

 

富龍은 塞宣의 오기인 듯

 

后笑而許之 賜茅 于庄中 與富龍同居 以掌 酒食藥物

후가 웃으며 허락하고 장원 안에 모옥을 하사하여

<부룡>과 함께 동거하며 술과 음식과 약물을 관장토록 하였다.

 

歲餘 富龍 爲色所迷 不能專其術

한 해가 지나니 <부룡>은 색(色)이 혼미하게 되어 그 기술을 전담할 수 없었다.

 

后怒欲逐 塞宣 歸之

후가 노하여 <새신>을 쫓아내어 돌아가게 하였다.

 

郎止之曰 汝能無我 而可 則逐之

<위화>랑이 이를 막으며 말하기를

“ 당신이 내가 없어도 가하다면 쫓아 낼 수 있습니다.”

 

后乃召塞宣戒之曰 仙君憐汝之 恩不可忘也

이에 후가 <새신>을 불러 훈계하며 말하기를

“ 선군(仙君)이 너를 가엾게 여기니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塞宣乃作不忘酒獻之 以爲合歡之用 是爲 塞氏三合

이에 <새신>이 불망주(不忘酒)를 담아 바쳐 합환(合歡)에 사용하게 되니 이를 새씨삼주(塞氏三酒)라 하였다.

 

今人 以歡酒 爲不忘酒者 盖出 於此也

지금 사람들이 합환주로 불망주(不忘酒)를 사용하는 것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后以同卯之情 特加 富龍 爵奈麻 以榮之

후는 동묘지정(同卯之情)으로 특별히 <부룡>에게 나마의 작위를 내려 영화롭게 하였다.

 

<연제>와 <새선>이 동갑이고 <위화>와 <부룡>이 동갑으로 토끼띠이다.

 

塞宣生富龍女龍宣 妻其冢孫 汗斗 世爲骨門

<새선>이 <부룡>의 딸 <용선龍宣>을 낳아 그 몽손(冢孫) <한두汗斗>의 처로 하여 대대로 골문이 되었다.

 

龍周之言 果驗矣

<용주龍周>의 말이 과연 효험이 있었다.

 

宝周之先 出自 板公家奴 善事樹王

<보주宝周>의 선조는 <판공板公> 집안의 노비 출신으로 수왕을 잘 섬겼다.

 

지마(판구) - 판공(160-228)

 

板公宅 有陽精樹 當春吹脂 如陽精 味酸洌 懷春之女 爭取食之

<판공>의 집에 양정(陽精) 나무가 있어 봄에 마치 양정(陽精)같은 기름진 수액(樹液)이 나오는데

맛은 시고 담백하여 회춘하고자 하는 여인이 이를 취하여 먹으려고 다투었다.

 

多有娠者 以爲宜子 而封爲樹王

많은 임신한 부인이 아들을 낳기 위하여 수왕에게 봉지를 봉하여 달았다.

 

都中士女奉之者 萬計 其入總歸 於宝周 頗饒足

경도(京都) 안의 사녀(士女)로 수왕을 받드는 자가 만 명이나 되었는데

그들이 들어와 모두 <보주宝周>에게 보내졌으나  수액(樹液)은 자못 넉넉하여 모자람이 없었다.

 

鳥生宮 山花宮 皆用其脂 而産士女

<조생鳥生>궁 <산화山花>궁도 모두 그 수액을 먹고 사녀(士女)를 출산하였다.

 

눌지(아로) - 오사지(410- )

                    자비(414-479 20대왕 재위 458-478)

                    조생(418-487)

   ?  (운화) - 산화(380?-439)

 

<오사지>는 자비왕의 누나이고 <조생>은 자비왕의 여동생이다.

<산화>는 <운화>공주의 딸이다.

 

只取根 井水飮之 烏士只宮 以樹老 而脂衰憂之

다만 뿌리를 캐어 우물물로 마시게 하니 오사지(烏士只)궁은 오로지 나무가 늙어 수액(樹液)이 쇠할까 걱정하였다.

 

多甘公 按察 北溟 時 値盛暑

<다감多甘>공이 북명(北溟)을 조사하여 살필 때 더위가 기성을 부렸다.

 

?  (탑운) - 다감(403-470)

 

路傍 有樹 其液 如乳 行旅取 而飮之曰 陰精水宜

於陽道公 亦下馬飮之 淸甘 可醫暑渴

길 가에 나무가 있어 그 수액(樹液)이 마치 젖과 같았는데 길을 떠도는 사람이 채취하여 마시면서 말하기를

“ 양정수(陰精水)임이 틀림없다.”고 하니 <양도陽道>공도 역시 말에서 내려 마시니

맑고 달콤하여 더위와 갈증을 달랠 만 하였다.

 

乃令地主 獻其子 于官 植 于陽精樹王之側

이에 지주에게 영을 내려 그 아들을 관청에 보내어 양정(陽精) 수왕(樹王)의 옆에 심었다.

 

於是 兩樹 皆 茂拜之者 益衆

이로써 두 나무 모두에게 절을 하는 자들이 더욱 많이 모여들었다.

 

城南富戶之女 當嫁 則皆 以子時 詣樹 獻衣 占 其吉匈

성남(城南)의 부잣집 딸이 시집을 가면  모두가 밤 열두 시에 수왕에게 와서 옷을 바치며 길흉을 점쳤다.

 

宝氏 世守 城南 畯官 廣置田園 奴婢 歲費 數百石

보씨(宝氏)가 대대로 성남(城南)을 지켰는데

농사를 담당하는 관리가 밭과 정원을 넓히고 노비를 두었으며 조세로 내는 세비가 수백 석이었다.

 

其奢侈 擬 於王公 有獨 女甚美 不肯嫁 于同流 慕 王子 山同 而禱于樹王

그 사치가 왕공(王公)에 견주었는데 홀로 한 딸이 매우 아름다워 같은 부류에 출가하는 것을 수긍하지 않고

왕자 <산동山同>을 사모하여 수왕에게 기도하였다.

 

눌지(산화) - 산동(418- )

 

叔周以?引媚 而通之 遂生 宝周 竟 以叔周 爲夫 其族 以叔周 賤品 不許

<숙주叔周>가 아첨하여 이끌어 통정하여 마침내 보주<宝周>를 낳으니

<숙주>를 남편으로 하였으나 그 가족은 <숙주>가 골품이 낮다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山同乃娶爲妾 而子宝周 以嗣

이에 <산동山同>의 첩이 되어 <보주宝周>를 적자로 하였다.

 

宝氏 出入 烏士只宮 與枕婢 烏龍 通之生子龍周

<보씨>가 <오사지>궁에 출입하여  침비 <오룡烏龍>과 통정하여 아들 <용주龍周>를 낳았다.

 

보주(오룡) - 용주

 

長於烏士只宮中 多甘公卒 烏士只 迎宝周 而報之 如夫婦 烏含公 不能爭之

<오사지> 궁에서 장성하자 <다감>공이 죽어 <오사지>는 <보주>를 맞이하여

부부와 같이 보답하니 <오함烏含>공은 다투지 못하였다.

 

도광(오사지) - 오함(428-499)

 

<다감>공이 죽은 해는 470년이고 이때 <오사지>는 61세이고 <오함>은 43세이다.

 

<보주>는 <오함>과 비슷한 나이거나 어린 40세 정도일 것이다.

 

事宝周如父 而慰悅母心 人稱其難

<보주>를 아버지로 섬겨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니 사람들이 그 곤란함을 말하였다.

 

烏士只薨 宝周 分其骨懷 而歸 城南

<오사지>가 죽으니 <보주>는 그 뼈를 나누어 안고 성남(城南)으로 돌아왔다.

 

時 山同已薨 宝氏 復歸 叔周 而其族 以宝周 貴 不敢復拒 遂以其財盡歸之

때에 <산동>이 이미 죽어 <보씨>는 다시 <숙주>에게 돌아가니

그 가족은 <보주>가 귀인이 되어서 다시는 감히 거절하지 못하여 마침내 그 재물이 모두 <보주>에게 돌아왔다.

 

武公 妻 斗皮 亦與宝周 通生女 願從 城南宅焉

<무공武公>의 처 <두피斗皮> 역시 <보주>와 통정하여 딸을 낳아 성남(城南) 집안을 따르기를 원하였다.

 

宝周乃 移武公宅 于其地

이에 <보주>는 <무공> 집안을 그 땅에 옮겼다.

 

沈沛之妻 宝同 乃上同之女 而宝周胞妹也 亦移其地

<심패沈沛>의 처 <보동宝同>은 <상동上同>의 딸로 <보주>의 포매(胞妹)인데 역시 그 땅에 옮겼다.

 

乃立三樹院 武氏 沛氏 宝氏 世主 其祀

이에 삼수원(三樹院)을 세워

무씨(武氏), 패씨(沛氏), 보씨(宝氏)를 세주(世主)로 하여 제사를 지냈다.

 

后幸 蘿畐祠 必宿 於三樹院

후가 라복사(蘿畐祠)에 행차하면 반드시 삼수원(三樹院)에서 잠을 잤다.

 

벌휴왕 9(252) 5월 기사

五月 大雨水 山崩十餘所 遣所非太子 恤民 行蘿畐祭 于南郊 履雨順

5월 큰 비가 내려 무너진 산이 10여 군데였다.

소비(所非){이음}태자를 보내어 백성을 구휼하고, 남교(南郊)에서 라복제(蘿畐祭)를 행하여 비가 순하여 지기를 빌었다.

 

大場 亦移 于院內 命 宝周 爲場師 宝同爲院主 以爲獎農之地

대장(大場)을 삼수원(三樹院) 내에 옮겨 열고

<보주>를 장사(場師)로 <보동>을 원주(院主)로 하여 농사짓는 땅을 넓이는 것을 장려하였다.

 

黃馬 亦與富龍 同辰(?) 先二日 富龍待之 以兄 其先 葷公之裔也

<황마黃馬> 역시 <부룡富龍>과 나이가 같고 2일이 앞서

<부룡>이 형으로 대접하였는데 그 선조는 <훈공葷公>의 후예이다.

 

辰은 年의 오기인 듯?

 

절공(한나) - 훈공

 

<절공>은 <대노>의 아들이고 <한나(63?-132)>는 <알영>의 딸이다.

 

世守推火 蠶職善 於組絲織紋

대대로 추화(推火)를 지키며 잠직(蠶職 : 누에치고 비단 짜는 일)을 잘하여  실을 만들어 무늬를 넣은 직물을 생산하였다.

 

추화(推火)는 지금의 밀양이다.

 

其母 受 遊春郎 産之 不識其父

그 어머니가 봄놀이 낭군과 통정하여 낳았는데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다.

 

及長 採童 使擇之 求門禮 于其母

마침내 장성하니 사신(使臣)이 <황마>를 선동으로 채택하여 그 어머니에게 가문의 예법을 구하였다.

 

母曰 業絲不興 願 以身 獻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 실을 만드는 일이 흥(興)하지 못하니 몸을 바치기를 바랍니다.”

 

使曰 汝 雖 無 無品 出自 葷公

사신(使臣)이 말하기를

“ 당신은 비록 가진 것이 없고 골품 또한 없다고 하나 <훈공葷公>으로부터 나왔습니다.”

 

不可 爲婢 待納禮 而再擧

노비가 되는 것은 불가하여 예의에 맞게 대접하니 다시 천거되었다.

 

未晩乃擇其次 屬院 惜之

머지않아 그 다음으로 <황마>를 발탁하여 삼수원에 소속시키니 이를 애석해하였다.

 

母曰 吾 貧而 無皃 不能 揚 汝之美 汝往京中 須 索汝父 爲援可也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 우리가 가난하고 안면이 없으니 너의 아름다움을 펼칠 수가 없다.

너는 경도(京都)에 가서 반드시 너의 아버지를 찾아 도움을 받음이 옳을 것이다.“

 

乃入京都 無所 依流離 東西 不得其父

이에 경도(京都)에 들어가 사방을 떠돌아 다녔으나 그 아버지를 찾지 못하였다.

 

卜者勸之曰 汝爲公主奴 則必得主寵 生子 則貴

점쟁이가 격려하며 말하기를

“ 당신이 공주의 노비가 되면 반드시 공주의 총애를 받아 귀하게 될 것입니다.”

 

乃越 丹門公主家 高墻 入其園中 飢臥 於樹王之下

이에 <단문丹門> 공주 집 높은 담장을 뛰어 넘어 그 정원으로 들어가  수왕(樹王) 아래에 배가 고파 누워있었다.

 

자비(장문) - 단문(475- )

 

公主見之問其來意 黃馬直言之

공주가 이를 보고 그 들어온 내막을 물으니 <황마黃馬>가 바른대로 말하였다.

 

公主 見其美心悅之 乃洗 而衣之 以爲身奴 推食 食之

공주는 그 아름다운 마음을 보고 기뻐하며 몸을 씻기고 옷을 내어 주며 노비로 삼아 밥을 먹였다.

 

黃馬乃織五色組 以獻 于樹王

이에 <황마>는 오색의 직물을 짜서 수왕에게 바쳤다.

 

公主奇其才益愛之

공주가 그 재주를 기이하게 여겨 더욱 사랑하였다.

 

時后飾組花 于郎 公主納其組爲第一

때에 후가 <위화>랑에게 꽃을 엮어서 꾸미게 하니 공주가 엮어 보낸 것이 제일이었다.

 

后問其手 乃與黃馬謁之

후가 그 솜씨를 물어 <황마>와 더불어 알현하였다.

 

后美之 命屬仙院

후가 이를 아름답게 여겨 선원에 소속하도록 명하였다.

 

公主曰 卜者之言 不虛 我可生汝子 乃捀日 沐浴 而婚之

공주가 말하기를

“ 점쟁이의 말이 헛되지 않다면 나는 당신의 아들을 낳을 것이니 날을 받아 목욕을 하고 혼인을 할 것이다.“

 

相慕 凡五年 而始親情意密密

서로 사모한 지 무릇 5년이 되니 처음 친한 정이 더욱 친밀해졌다.

 

公主夫婿 康秋公 知其密 妬怒欲誅之

공주의 남편 <강추康秋>공이 그 친밀함을 알고 질투와 노여움으로 주살코자 하였다.

 

黃馬乃逃匿 仙庄 公主從 而爲夫婦

이에 <황마>가 도피하여 산장에 숨으니 공주가 따라와 부부가 되었다.

 

康秋 訴 于理方

<강추康秋>가 이방(理方)에 고소하였다.

 

后聞之 召康秋 丹門解之

후가 소문을 듣고 <강추>를 불러 <단문>과 해결하도록 하였다.

 

康秋乃 許 黃馬 私 其妻

이에 <강추>는 <황마>에게 사사로이 그 처를 허락하였다.

 

丹門乃 與黃馬 行吉 而洗子 迎其母 于推火 而養之 康秋不能爭

이에 <단문>과 <황마>가 혼례를 치르고 아들을 씻고

추화에서 그 어머니를 맞이하여 부양하니 <강추>는 다툴 수 없었다.

 

后命黃馬 掌仙院之 孫 以功超遷 至大舍

후가 <황마>에게 명하여 선원을 관장토록 하니 자손이 공을 세워 등급을 뛰어넘어 대사(大舍)에 이르렀다.

 

丹門設 東西 寢 事 以二夫無差等

<단문>은 동서(東西)에 침실을 두고 두 남편을 차등 없이 섬겼다.

 

黃馬曰 彼夫 而吾奴 何待若是

<황마>가 말하기를

“ 저 남편은 나를 노비로 여기는데 어찌 이와 같이 대우합니까?”

 

丹門() 彼乃人定之夫 而君 乃仙定之夫 果誰輕乎

吾身在彼 而心常在君 不復産彼子也

<단문>이 말하기를

“ 저 사람은 사람이 정한 남편이고 낭군은 신선이 정한 남편인데  과연 누구를 가벼이 하겠습니까?

내 몸은 저 사람에게 있으나 마음은 언제나 낭군에게 있으니  다시는 저 사람의 자식을 낳지 않을 것입니다.“

 

後果連産黃馬子女 而已 時 理方 有會食 大釜 可享 數百人

훗날 과연 <황마>의 자녀를 연이어 낳아

이방(理方)에서 큰 솥으로 밥을 지어 먹으며 잔치를 여니 모인 사람이 수백 명이었다.

 

國有異變 釜自鳴 理方戒之

나라에 이변이 있으면 그 솥이 스스로 울어 이방(理方)에서 이를 경계하였다.

 

康秋 以左頭 卞上 每問 釜鳴

<강추>는 좌두(左頭)로 솥이 울 때 마다 변인(卞人)에게 알아보라고 하였다.

 

右頭曰 有何異變乎

우두(右頭)가 말하기를  “ 어찌하여 이변이 있다고 하는가?”

 

秋曰 黃馬夜夜 跨 吾妻 天后夜夜 抱 花郞 此非異變 而何乎大

<강추>가 말하기를

“ <황마>는 밤마다 내 처를 타넘고 천후는 밤마다 <위화>랑을 안으니

이것이 이변이 아니면 무엇을 큰일이라고 하겠는가?“

 

理方聞 而癡之 罷 其卞曰 不卞子午者焉 能卞人曲直乎

이방(理方)이 듣고 어리석게 여겨 그 변인(卞人)을 파면하며 말하기를

“ 변(卞 : 法)은 자오(子午 : 쥐와 말)라는 것이 아닌데 변인(卞人)이 옳고 그름을 알 수 있겠는가?

 

后聞 而笑曰 京都之釜 不鳴可聞

후가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 경도(京都)의 솥이 운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州郡之釜 命移 一善 理方

주군(州郡)의 솥을 일선(一善) 이방(理方)으로 옮기도록 명하였다.

 

일선(一善)은 지금의 경북 선산(善山)이다.

 

秋 戀妻 夜 騎 而歸 密入 其室 窺見 其妻 與黃馬 相戱之狀 而悲號 于外

<강추>는 처를 그리워하여 밤에 말을 타고 돌아와서 몰래 그 방에 들어가 그 처를 엿보니

<황마>와 더불어 서로 즐기고 있어 바깥에서 슬피 통곡하였다.

 

丹門曰 吾愛黃馬 而汝愛我 汝欲妬之 反 受殃 而已何不愛 黃馬 如愛我乎

<단문>이 말하기를

“ 나는 <황마>를 사랑하고 당신은 나를 사랑하여

당신이 이를 질투하여 반대하고 재앙을 받아 이미 사랑하지 않으니 어찌 <황마>가 나를 사랑함과 같겠습니까?

 

秋乃服 而順之

이에 <강추>는 복종하며 순순히 따랐다.

 

丹門乃爲其夫 ()移 屬畿內 后許之

이에 <단문>이 그 남편을 위하여 경도(京都) 내에 소속토록 옮기기를 청하니 후가 이를 허락하였다.

 

後來 帝文郞 作詩解之曰

훗날 <제문>랑이 시를 지어 이를 풀어 말하기를

 

子午通心 鼎不鳴 漫使理方 勞夜騎

黃馬 丹門 相得地 老陰少陽 轉上下

쥐와 말이 마음이 통하니 가마솥이 울지 않아 이방의 사신이 게을러 밤에 말을 타고 달리며 힘쓰네.

황마와 단문이 서로 땅을 얻어 늙은 암컷과 젊은 수컷이 위아래로 구르네.

 

<단문>은 475년생이고 <황마>는 487년생으로 같은 토끼띠로 12살 차이다.

 

 

58. 노음소양(老陰少陽)과 노양소음(老陽少陰)

 

時人 以老陰少陽 老陽少陰 爲貴故也

당시 사람들이 노음소양(老陰少陽), 노양소음(老陽少陰)이 귀하게 된 까닭이라고 하였다.

 

陰陽調 而萬物生 老少和 而天地

음양의 조화로 만물이 생겨나고 노소가 화합하여 천지가 되었다.

 

久神仙之道在乎 玄牝

장구한 신선의 도가 있는가?  현빈(玄牝)이다.

 

玄牝之妙在乎 老少

현빈(玄牝)의 신묘함이 있는가? 노소(老少)이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 도덕경 6>

()이 죽지 않는 계곡이 있으니 이를 일러 현빈(玄牝)이라 한다.

현빈(玄牝)의 문은 하늘과 땅의 뿌리이다.

그 이어짐이 실낱같아서 어찌 보면 있는 것 같지만 쓰임새는 없다.

 

陰陽不盡之理 仙道盛

음양이 다하지 않는 이치로 선도(仙道)가 번성하였다.

 

時 上下和融 老少 相 依男女 交好 盡情 而歡遊花 載路無 有曠夫

당시 위아래가 서로 어울려 사이좋게 화합하고  노소가 서로 남녀에 의존하여 서로 정을 다하여 좋아하니

길에는 수레에 태워 환영할 유화(遊花)는 없고  아내를 잃고 홀로 지내는 홀아비만 있었다.

 

故頌 時樂天 不知 帝力 東方之數 女多而 男少

그런 연유로 시절을 희망적으로 칭송하니 帝의 힘을 알지 못하였고

동방(東方)의 수는 여자는 나이가 많고 남자는 나이가 어렸다. 

 

公卿大夫 皆 有侍妾 數人 士農工賈 亦有三四 妻者 役 于官者 不得 帶 妻營家者 防其 以公謀私也

공경대부는 모두 시중드는 첩이 여러 명이고 사농공상 역시 3,4명의 첩이 있으니

처를 부득이 띠를 두르게 하여 관청에 부역하게 하였으나 놓아주어 사사로이 공모하였다.

 

乃設遊花 交遞 送 迎一 依鍾鼓

이에 유화(遊花)를 설치하여 교체하여 보내니 한 사람을 맞이할 때마다 종과 북을 쳤다.

 

肥其飮食 侈其枕 席出 則花場入 則權地

음식을 배불리 먹고 그 베개를 치장하고 출석하여 화장(花場)에 들어가니 그 화장(花場)은 권지(權地)이다.

 

故皆 能効死 報國 無 有憾焉

그런 연유로 모두가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여 이바지 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고 한심한 마음만 있을 뿐이다.

 

非天子之貴無 以尊神仙 故聖后配陰 以見少陽也

천자(天子)가 아니면 귀한 것이 없어

신선으로 존경받는 까닭에 성후(聖后)를 음(陰)에 배치하여 소양(少陽)으로 보았다.

 

老陽少陰者巽也 兌也 老陰少陽者艮也 震也

노양소음(老陽少陰)은 손(巽 : 風 ☴)이고 태(兌 : 澤 ☴)이며

노음소양(老陰少陽)은 간(艮 : 山 ☶)이고 진(震 : 雷 ☳)이다.

 

山澤通氣之門 而震巽 東方之神也

노음소양(老陰少陽)인 산과 노양소음(老陽少陰)인 못은 기(氣)가 통하는 문이며

노음소양(老陰少陽)인 우레와 노양소음(老陽少陰)인 바람은 동방의 신(神)이다.

 

弩理世界相食而 循環 故男()交精 老少通氣也

노리(弩理)의 세계는 서로 상생상극하며 돌고 도는 까닭에 남녀가 교합하니 노소(老少)의 기(氣)가 통한다.

 

※ 소양(少陽)과 소음(少陰)

 

불(☲)은 겉으로 보이는 것은 활활 타올라 강(剛)하고 뜨거우나 속은 태울 수 있는 물체가 있어야 하므로

바깥은 양이며 속은 음이므로 음을 지닌 양으로 소양(少陽) 상화(相火)이다.

 

물(☵)은 겉으로 보이는 것은 부드러워 유(柔)하나 속은 굳세어 강(剛)하여

속은 양이며 바깥은 음이므로 양을 지닌 음으로 소음(少陰) 군화(君火)이다.

 

노리(弩理)의 세계라는 것은  八卦(乾坤坎離震巽艮兌)를 말한다.

 

팔괘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 탄 노아의 가족 8명으로 만물의 근원이다.

 

주역은 태극(太極)이 양의(兩儀 : 陰陽)를 낳고  양의(兩儀)가 사상(四象 ; 乾坤坎離)을 낳고

사상(四象)이 팔괘(八卦)를 낳는다고 하였다.

 

 

59. <윤기尹己>공주와 <우의牛衣>

 

尹己之於牛衣 凡有 四十年之高 牛衣之母 甲夫公 濯足之婢也

<윤기>공주는 <우의> 보다 무릇 40살이 많았는데  <우의>의 어머니는 <갑부甲夫>공의 발을 씻는 노비이다.

 

눌지(파호) - 윤기(442- )

 

每以七月七日 獻衣 於明活山 樹王 凡五年如一日

노비는 칠월칠석날이면 명활산 수왕에게 옷을 바친 지가 무릇 5년을 하루같이 하였다.

 

不避風雨 雨則 衣牛皮 而行 自其先來 不知 爲幾年也

비바람을 피하지 않고 비가 오면 우피(牛皮)를 입고 나갔으며 그 선조가 왕래한 지 몇 년이 되었는지 알지 못하였다.

 

其歲嘉俳日 天雨 客少 飮食 滯餘

그 해 한가윗날 비가 내려 손님이 적어 음식이 그대로 남았다.

 

乍眠 于盤菜之間 忽 夢 樹王至 而起之曰

我與西岳大王 會遊 於鳩嶺 花舍 汝其戴食 而來

잠시 음식을 치우는 사이 졸았는데 홀연 꿈에 수왕(樹王)이 이르러 일으키며 말하기를

“ 내가 서악대왕(西岳大王)과 더불어 구령(鳩嶺)의 화사(花舍)에서 모여 노는데 네가 음식을 머리에 이고 왔다.“

 

婢乃如其言 有光明導之 至其處

이에 노비가 밝은 빛이 있어 인도하는 대로 그 말처럼 음식을 머리에 이고 그 곳에 이르렀다.

 

精舍 在山腹 有老翁居之 以花鳥 爲業 奇玩 可賞 婢乃告其言

산 중턱에 있는 정사(精舍)에 늙은 노인이 꽃과 새를 키우며 기묘한 꽃을 감상하며

새를 즐기며 놀고 있어 노비가 그 말을 고하였다.

 

翁喜曰 吾奉西岳大王 三十七年 今始驗矣

노인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 내가 서악대왕(西岳大王)을 30년을 모셨는데 지금에야 효험이 나타나는구나.”

 

乃掬石 淸水 淨其手口 而進食 拜神 天復 大雨 不能下山

이에 두 손으로 돌을 움켜쥐고 맑은 물로 손과 입을 깨끗이 하여

음식 앞에 나아가 신에게 절하니 하늘에서 다시 큰 비가 내려 산을 내려올 수 없었다.

 

遂與翁 對食 通宵

마침내 노인과 더불어 음식을 마주하고 밤을 새웠다.

 

翁曰 吾在山中 三十年 不見雌人 今對吾娘 不覺春回 願 以佛心 惠 我艾陰

노인이 말하기를

“ 내가 산중에 30년을 있으면서 여인을 본적이 없는데 지금 내가 낭자와 마주하여도 회춘을 깨닫지 못하니

불심으로 나에게 조그만 음을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婢曰 妾雖賤人 方年 十八 未知男子 一與之許 可以終身許 偕不可 無物相禮

노비가 말하기를

“ 첩이 비록 천인(賤人)이나 방년 18세로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한번 허락하면 종신토록 허락하여야 하니 서로 예물이 없으면 불가합니다.“

 

翁曰 吾有 三十七年 所奉 西岳神像 可以獻之

노인이 말하기를

“ 나에게 37년 동안을 모신 서악신상(西岳神像)이 있으니 이를 예물로 바치고자 한다.”

 

婢曰 妾有金剛大母 牛皮衣 可以答禮

노비가 말하기를

“ 첩에게는 금강대모의 우피(牛皮) 옷이 있으니 답례로 하겠습니다.”

 

於是 兩人情洽 行春 遂生牛衣

이로서 두 사람의 정(情)이 화합하여 행춘(行春)하여 마침내 <우의牛衣>를 낳았다.

 

能通 百鳥語 深察 千花神 花鳥之師 皆仰之 如神 年十五

백가지 새의 말에 능통하고 천 가지 꽃의 신(神)을 깊이 관찰하니

꽃과 새의 스승으로 모두들 신(神)으로 추앙하니 나이 15살이었다.

 

<우의>는 482년생이니 <우의>가 꽃과 새의 신으로 추앙받은 해는 496년이다.

 

甲夫公 薦于龍宮 冬花殿 與其母 入花舍 得炤明天后之寵 擢爲 花鳥師  雖老師 不及 其奧妙

<갑부>공이 용궁(龍宮) 동화전(冬花殿)에 천거하여  그 어머니와 함께 화사(花舍)에 들어와

소명천후(炤明天后)의 총애를 받아 화조사(花鳥師)로 발탁되니

비록 노사(老師)가 있어도 그 오묘함에 미치지 못하였다.

 

소명천후(炤明天后)는 <비처> 소지왕의 비이고 <지도로> 지증왕의 딸인 후황(466-499)을 말한다.

 

炤明崩 而花皆 孝白 帝 神之 加爵舍知

소명천후가 붕(崩)하니 꽃들이 모두 하얗게 피어 帝가 이를 신묘하게 여겨 사지(舍知)의 작위를 더하였다.

 

車宿公 以理方 退 居 芼兮 作大花園 集花師 營之

<거숙車宿>공이 이방에서 물러나 모혜(芼兮)에 살며  큰 화원(花園)를 지어 화사(花師)를 모집하여 이를 운영하였다.

 

모혜(芼兮)는 지금 경북 군위이다.

 

皆言 牛衣之神 公妻

모두들 말이 <우의>의 신(神)은 <거숙>공의 처 <윤기>라고 하였다.

 

尹己乃請于帝 而迎 歸雨中 遂 通()帷 車中 至其家 奉之 如夫

이에 <윤기>가 帝에게 청하여 비가 오는 중에 <우의>를 맞이하여 돌아오다가

마침내 수레 안 휘장에서 통정하고 그 집에 이르러 지아비처럼 받들었다.

 

車宿公 素淡 於色 許 與之好爾來 二十年 如一日

<거숙>공은 색에 소박하고 담백하여 허락하고 20년을 하루같이 그녀{윤기}만을 좋아하며 지내왔다.

 

甲夫公之()車己 乃尹己之女也

<갑부甲夫>공의 처 <거기車己>는 <윤기尹己>의 딸이다.

 

恥其母與奴通 不見其母 車己之女甲()反之 右于尹己

그 어머니가 노비와 통정한 것을 수치로 여겨 그 어머니를 보지 않았으나

<거기>의 딸 <갑기甲己>는 반대로 <윤기>를 도왔다.

 

눌지(파호) - 윤기(거숙) - 거기(갑부) - 갑기(우의) - 우갑

 

尹己以已年老 而不能生 牛衣子憂之

<윤기>가 늙어서 <우의>의 자식을 낳을 수 없음을 걱정하였다.

 

甲己曰 我則汝身也 可代 而生之

<갑기>가 말하기를

“ 내 몸은 바로 할머니의 몸입니다. 내가 대신하여 낳을 수 있습니다.”

 

尹己乃以 昏夜 代甲己 牛衣不知 而通之 乃甲己也

이에 <윤기>가 캄캄한 밤에 <갑기>로 대신하게 하니  <우의>가 알지 못하고 통정하니 <갑기>였다.

 

遂生牛甲 車己益怨 其母 而后方廣仙院 力花鳥

마침내 <우갑牛甲>을 낳아 <거기>가 더욱 그 어머니를 원망하니

후는 오로지 선원에서 꽃과 새를 널리 기르는데 힘쓰도록 하였다.

 

牛衣 以功超遷 至奈麻 致財數萬

<우의>는 공을 뛰어넘어 나마(奈麻)가 되어 많은 재물을 모았다.

 

后命 甲夫妻其女 行吉鮑祠 將吉 車己不肯之

후가 <갑부>의 처 <거기>와 <우의>가 포사에서 길례를 치르라고 명하니  <거기>는 이를 수긍하지 않았다.

 

甲夫曰 國家用人才 汝有何才 陋吾婿乎

<갑부>가 말하기를

“ 나라에서 사람의 재주를 쓰고자 하는데  당신은 무슨 재주가 있어 나를 속 좁은 사위로 만드는가?”

 

車己 不得已 吉之 知 牛之好 而大悅之 反有甚 於尹己事

<거기>는 부득이 길례를 치르고 <우의>를 좋아하여 크게 기뻐하고는

<윤기>의 일에 심히 반대함이 있었음을 알았다.

 

牛衣母 如其母 甲夫 尹生 皆以牛衣之業 廣其田園 以爲國甲富

<우의>의 어머니를 그 어머니처럼 모시고

<갑부>와 <윤생>이 모두 <우의>의 직업으로 그 전원을 넓혀 나라의 갑부가 되었다.

 

거숙(윤기) - 거기(461- )

                    윤생(464-540)

 

갑부는 거기의 남편이고 윤생은 거기의 동생이다.

 

盖西岳大王 金剛大母 守護之力也

이 어찌 서악대왕과 금강대모의 보살핌이 아니겠는가!

 

後人 奉 牛衣之母曰牛皮奾子 父曰西岳老人

훗날 사람들이 <우의>의 어머니는 우피선자(牛皮奾子)이고  아버지는 서악노인이(西岳老人)이라고 말하며 받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