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당유고

위화진경(魏花眞經) 完譯(13)

지보고 2023. 11. 30. 17:47

 

63. <위화> 을공(乙公)의 도(道)를 說하다.

 

乙公(을공))

 

許婁大王 猿面 而虎精 足智多謀 紏合英雄 一匡天下 臣妾萬民 威高 八域

<허루許婁> 대왕은 얼굴이 원숭이 상으로 호랑이의 정기(精氣)가 있고 지혜가 풍부하고 계략이 많아

영웅을 규합하여 어지러운 천하를 바로 잡아 신하와 첩, 만백성에게 두루 위엄을 높였다.

 

대노(구을) - 허루(80-155)

 

達門大母 溫美神麗 常奉大王枕席

달문(達門)대모는 온화하고 신비스런 아름다움이 있었는데 언제나 잠자리에서 대왕을 모셨다.

 

탈해(장씨) - 달문(97-171)

 

時卞山有 大麻織之爲布

변산(卞山)에 있을 때 대마(大麻)로 모시를 짰다.

 

布人曰 此布多異祥 非凡人 所可服 乃裁 大裙 而獻 于甘生大母

포인(布人)이 말하기를

“ 이 모시는 기이한 상스러움이 많아 비범한 사람이 입어야 한다며

큰 치마를 만들어 <감생甘生(100?- )>대모에게 바쳤다.

 

<감생>은 <발량發良>의 처로 <길문吉門(93?-152)>을 좋아하여

파사왕 4년(129년)에 <길문>을 따라 변산(卞山)으로 갔다.

 

甘生曰 我何敢當此 可奉納 于達門大母

<감생>이 말하기를

“ 내가 어찌 이 모시옷을 감당하겠는가?  <달문>대모에게 받들어 바침이 옳을 것이다.“

 

達門乃服之 與大王 同枕 而合歡

이에 <달문>이 그 모시옷을 입고 대왕과 함께 동침하여 합환(合歡)하였다.

 

夢見 月下 有虎 下山 似虎 而非虎 似馬 而非馬 似鹿 而非鹿 烏足 而白鼻

大母惧之 走度小橋 歸 其室 室在豕牢之傍 與牢 同醜 小門 髣弗 柵門 怪而覺之

꿈에 달빛 아래 호랑이가 산을 내려오는데 호랑이 같기도 한데 호랑이가 아니고

말 같기도 한데 말이 아니고 사슴 같기도 한데 사슴이 아닌 까마귀 발이 달린 백비(白鼻)를 보았다.

대모가 두려워 조그만 다리를 건너 달려와 집에 돌아오니

그 집은 돼지우리 옆에 있었는데 돼지우리처럼 더럽고 작은 문은 목책을 둘러 친 문이었다.

괴이하게 여기며 깨어났다.

 

백비(白鼻) : 털색은 흑갈색이며, 얼굴, 사지, 꼬리가 긴 흰 코 사향 고양이

 

大王曰 當生貴子 其神羊之精乎 惧之者犯也 豕牢同醜者胎也

대왕이 말하기를

“ 마땅히 신령스런 양(羊)의 정기로 귀한 자식을 낳을 것이다.

두려워하는 것은 죄이고 돼지우리와 같이 더러운 것은 수태이다.

 

大母乃禱于梪王 果娠 身生黃華

이에 대모가 두왕에게 기도하니 과연 임신하여 몸에 황화(黃華)가 생겼다.

 

時 脫解帝崩 未葬 婆娑帝 夢見 脫解帝入 達門大母之懷

때에 <탈해脫解(51-130)>제가 붕하여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는데

<파사婆娑(90-158)>제가 꿈에  <탈해>제가 <달문>대모의 품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탈해>가 죽은 해는 130년이고 을공(乙公) <허을>이 태어난 해는 131년이다.

 

파사왕 5(130)

八月 太君以暑疾崩 于日知宅 上與惠后臨泣曰 父今棄我 何去

太君曰 歸侍先今 此願畢矣 骨門無相殘 努來無相欺 知之乎

上曰 太君乃崩 天地晦冥 上痛哀之 以父今禮葬 于壤井陵門

阿孝今堂皆殉之 不能禁

太君足智多謀有 大功于社稷 又喜女色所 畜嬪妾 千有余人 生子女七百人 不能盡知

自神以來 初有之事也.

8월 태군(太君){탈해}이 더위로 병을 얻어 <일지日知>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왕과 혜후가 대면하여 울면서 말하기를

부금(父今)은 지금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시렵니까?”라고 하였다.

태군이 말하기를

선금(先今){유리}을 모시러 가고자 한다. 이 소원을 이루어 주기를 바란다.

골문(骨門)간에 상잔(相殘)하지 말고, 오고자 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속이지 마라. 알겠느냐고 하였다.

왕이 승낙하자, 태군이 이에 죽었다.

하늘과 땅이 깊은 어둠속에 빠져들었다.

왕이 애통해 하며, 부금(父今)의 예로 양정릉(壤井陵)에 장사를 지냈다.

<아효阿孝><금당今堂>이 모두 따라 죽었으나 막지 못하였다.

태군은 지혜가 풍부하고 많은 계략이 있어서 사직(社稷)에 큰 공이 있었다.

또 여색을 좋아하는 바가 있어 데리고 있는 빈첩(嬪妾)이 천여 명이었고,

자녀가 700명이어서 모두를 알 수 없었다()이 내려온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다.

 

知其爲貴子 召 于壤井 而幸之曰 生子可名乙

귀한 자식이 될 것을 알고 <달문>을 양정(壤井)으로 불러 행(幸)하며 말하기를

“ 아들을 낳아 이름을 을(乙)이라고 함이 옳다.”

 

達門不敢諱之 乃告以已娠 許婁子

<달문>이 감이 이를 기피하지 못하여 이미 <허루>의 자식을 임신하였음을 고하였다.

 

帝惜之 以爲摩㚆子 十月 許婁大王 監軍 于一善

제가 이를 애석하게 여겨 마복자(摩㚆子)가 되게 하고  10월 <허루>대왕을 일선(一善)에서 군사를 살피게 하였다.

 

파사왕 5(130)

十月 聖父角干與太聖 巡至一善 慰賜軍士 夂理唐卒 命以海飡禮葬之

10월 성부(聖父 : 許婁) 각간과 태성(太聖 : 阿利)이 돌아다니며 일선(一善)에 이르러 군사를 위문하였다.

<치리夂理>가 갑자기 죽어 해찬(海飡)의 예로 장사를 치루었다.

 

達門大母從之 以布裙福 于烏城

<달문>대모가 <허루>를 따라 오성(烏城)에 가서 모시 치마를 입고 복을 빌었다.

 

城神 以明水 獻之曰 可生羊聖

오성(烏城)의 신(神)에게 맑은 물을 바치며 말하기를  “ 양성(羊聖)을 낳게 하여 주십시오.”

 

果 至翌年 白羊之 孟春 中陽 誕之

과연 다음 해 백양(白羊)의 음력 정월 9일에 성인이 탄생하였다.

 

131년은 辛未년 백양(白羊)의 해이다.

 

香聞 而彩生

향기가 멀리 퍼지고 채운이 일어났다.

 

母見白羊從() 而降 完若 夢

어머니는 백양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완전히 꿈에서 본 것과 같았다.

 

時空中隱隱有仙樂 忽有異人羽衣下庭 授丹藥 而奏曰

國仙生矣 可以壽之 輒不知所去

때에 공중에 은은한 선악(仙樂)이 울리더니

홀연 이인(異人)이 우의(羽衣)를 입고 정원으로 내려와 단약(丹藥)을 주며 아뢰기를

“ 국선이 태어나 장수를 기원하여야 하는데 문득 나아갈 바를 모르겠습니다.”

 

大王奇之 洗于神池 乃名許乙

대왕이 이를 기이하게 여기며 신지(神池)에서 씻고 <허을許乙>이라고 하였다.

 

及長 聰明 過人 眉目吉羊眞 天仙之下降也

장성하여 감에 따라 남보다 총명하고 눈썹과 눈은 길한 양(羊)을 빼어 닮으니 하늘의 신선이 내려온 것이다.

 

及長 好事梪王 勤行朔禮

장성하여 감에 따라 두왕(梪王)을 섬기는 것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삭례(朔禮 : 초하루에 올리는 禮)를 올렸다.

 

年十三 與足公 學 于吉公

13살에 <족공足公(130?-187)>과 더불어 <길공吉公(110-170?>에게서 수학하였다.

 

굴공(66-141)(아리 65?-133) - 진공(굴고) - 족공(130?-187)

 

吉公子邊公與公同年 而多識 于庭 公乃事邊公如吉公

<길공>의 아들 <변공邊公>은 공과 나이가 같은데 정원에 지식이 많아  공은 <변공>을 <길공>과 같이 섬겼다.

 

길공(흘고) - 변공(131- )

 

吉公謂邊公曰 今日 汝雖敎乙 他日 乙必敎汝 汝不可 以師 自居

<길공>이 <변공>에게 일러 말하기를

“ 오늘은 비록 네가 가르치지만 다음날엔 <을공>이 반드시 너를 가르칠 것이니

너는 스스로 스승이라고 자처하는 것은 옳지 않다.“

 

邊公乃 欲友之 而公敬之益重

이에 <변공>은 친구가 되기를 바라니 더욱 공경하고 중히 여겼다.

 

邊公美而好色

<변공>은 아름답고 색을 좋아하였다.

 

年十六 儼 若妙仙

16살인데 의젓하고 신묘한 신선(神仙) 같았다.

 

達門大母見其美 而心惑之 夏月 引欲 于蚊川 而通之

<달문>대모가 그 아름다움을 보고 유혹하려는 마음이 있어 여름에 문천(蚊川)으로 이끌고 나와 통정을 하였다.

 

寵愛深 至解其宝佩 而與之 仍謂公曰

邊公多才 而美 又洽我情可 呼 以小父

깊이 총애하여 차고 있던 보물을 풀어 <변공>에게 주고는 공에게 말하기를

“ 변공은 재주가 많고 아름답고 또 나와 정을 화합하였으니 소부(小父)라 불러야 한다.”

 

公從之 無逆

공은 이를 따르고 거역하지 않았다.

 

邊公遂 與達門 相戱 如夫婦

마침내 <변공>은 <달문>과 더불어 부부처럼 서로 놀았다.

 

公未嘗 有妬 色 視 若尋

공은 일찍이 질투를 한 적이 없고 색을 보거나 찾는 일이 없었다.

 

常 達門大母 有大度 多權數 故前後所産多異 公恥之

달문대모는 언제나 도량이 크고 권세가 많은 까닭에

앞 사람과 뒤 사람에게서 낳은 자식이 많이 달라 공이 이를 수치스러워 하였다.

 

嘗諫願如己者 至是 知其不可諫

일찍이 자기처럼 간(諫)하기를 원하는 자도 지금에 이르러 간(諫)하지 못함을 알았다.

 

乃禱於樹王曰 許其所好 無使過勞

이에 수왕에게 기도하며 말하기를

“ 그 좋아하는 대로 하게 해 주시고 너무 과로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大母窃聽之 乃謝于公曰 吾非好之也 不忍拒之也

대모가 이를 훔쳐 듣고 공에게 말하기를

“ 나는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거절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公曰 不忍之心是 卽牝也 可以生萬物 願擴其心

공이 말하기를

“ 참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암컷의 마음입니다.

암컷은 만물을 낳으니 그 마음을 널리 펼치시기를 바랍니다.”

 

大母乃?曰 母心子知 子心母知

이에 대모가 말하기를

“ 어미의 마음은 아들이 알고 아들의 마음은 어미가 안다.”

 

公曰 知之行之至之 是知也 吾未得其一 安有知乎

공이 말하기를

“ 알고 행하여 이르는 것이 아는 것입니다.

저는 그 하나를 얻지 못하였는데 어찌 안다고 하겠습니까?“

 

大母乃謂許婁曰 汝雖雄也 未若汝子之賢 汝之威一世 子之威萬世也 今汝亦然

이에 대모가 <허루>에게 일러 말하기를

“ 당신이 비록 영웅이지만 만약 당신의 아들의 현명함에 미치지 못하면

당신의 위엄은 한 세대지만 아들의 위엄은 만 세대에 떨칠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그러합니다.“

 

后是之曰 願苾而入

후가 이를 옳다고 하며 말하기를  “ 향기가 들어오게 하라.”

 

 

64. <위화> 理方(이방)의 도(道)를 說하다.

 

理方(이방)

 

理方者 理之 以方也

이방(理方)이라는 것은 다스리는 것을 방편으로 하는 것이다.

 

太古之世 神人濟衆 眞氣彌滿 無言 而化

태고(太古)의 시절에는 신인(神人)이 무리를 제도(濟度)하여  진기(眞氣)가 널리 가득차서 무언(無言)으로 교화하였다.

 

中古之世 聖人治衆約之 以法民不罹之

중고(中古)의 시절에는 성인(聖人)이 무리에게 약속하였으나 법으로서는 백성을 매어달지 못하였다.

 

下古之世 眞鵚法解 無以爲民 故賢智者理之 以方

하고(下古)의 시절에는 진(眞)이 쓰러지고 법이 느슨해져  백성을 위하는 바가 없는 까닭에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가 다스리는 것을 방편으로 하였다.

 

故或中或不中 今之人 以方 爲法 刑之 削之

罔有 其極 豈徒 不中 而已哉反 有害之

그런 까닭에 지금 사람들은 법으로 형벌을 내리기도하고 깎기도 하고

그물에 그 지극함이 있으나 빠져나오기도 하니 반하여 해로움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였다.

 

古之善刑者 無刑善 理者 不理 唯 回眞氣 而已 吉公吹笛 回心者 此也

옛적의 형벌을 잘 다스리는 자는 형벌이 없이도 잘 다스리고

다스리지 않고 오직 진기(眞氣)를 돌림으로서 이미 형벌이 필요 없으니

<길공>이 피리를 불어 마음을 돌리게 한 것이 이것이다.

 

今汝朝暮 我 而愈 勤 理方 其 於汝何 抑 亦 於蒂何

지금 너희들은 아침저녁으로 내가 병이 낫도록 부지런한데  이방이 어찌 너희들과 <후체>를 억류하려고 하겠는가?

 

后曰 善哉 苾我 祐我

후가 말하기를

“ 선(善)함이여!  나를 향기롭게 하고 나를 돕게 하라”

 

后女厚蒂 爲沙嵩妻 與嵩 修眞理 淸無相逆

후의 딸 <후체厚蒂>는 <사숭沙嵩>의 처가 되어 <사숭>과 더불어 진리를 닦아 맑고 서로 거역함이 없었다.

 

비처(연제) - 후체(484- )

비처(사세) - 사숭(482-520)

 

嵩有 歌奴 名柯枝 麗質 蕙性 寵遇之

<사숭>에게는 <가지柯枝(495-524)>라는 가노(歌奴)가 있었는데  곱고 아름다운 성품을 지녀 총애하여 특별히 대우하였다.

 

或以月夜 連歌 輸情意 頗戀牽 無有間髮 困憊 鵚臥

때로는 달밤에 연이어 노래를 불러 자못 연정을 이끌어내니  잠시도 피곤하여 쓰러져 눕지를 못하였다.

 

厚蒂 解 柯枝衣 抱 而入裳 如幼子慈母

<후체>가 <가지>의 옷을 벗기고 안고는 치마 속에 들어오게 하니 마치 어린 자식과 인자한 어미 같았다.

 

<가지>는 <후체>보다 11살 어리다.

 

三人同被 而宿 陰陽相觸 未嘗動念

세 사람이 같은 이불에서 자니 음양이 서로 닿아도 일찍이 사념(思念)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一日 柯枝朝起 見厚蒂 豊美 隆皐 玲瓏 玉膚 逼起根念

하루는 <가지>가 아침에 일어나 <후체>의 풍만한 아름다움과 두둑한 음부와

영롱한 옥 같은 살결을 보니 남근이 우뚝 솟아올랐다.

 

嵩先起 下庭刷鶴

<사숭>은 먼저 일어나 정원에 내려가 학(鶴)을 손질하고 있었다.

 

柯枝 不忍 火心 取 而濡之 厚蒂 從容受之 莞爾撫之 歡畢 而起

<가지>가 화심(火心)을 참지 못하여 취하여 적시니

<후체>는 조용히 받아들이고 빙그레 웃으니 애무하여 즐기고는 일어났다.

 

柯枝 善惧 自責 不能諱之 乃告 于嵩 而請杖

<가지>는 착하나 두려워하여 기피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사숭>에게 고하여 지팡이로 매질 할 것을 청하였다.

 

嵩笑之 而已不言 是非 待之 如常

<사숭>은 웃으며 잘잘못은 말을 하지 않고 여느 때와 같이 대우하였다.

 

自是 柯枝 戒而不犯

이로부터 <가지>는 경계하여 범하지 않았다.

 

及嵩薨 厚蒂 不勝 寥寂 召柯枝 同宿

<사숭>이 죽으니 <후체>는 적적함을 견딜 수 없어 <가지>를 불러 같이 잤다.

 

情話深深 適値 冬冬夜 纏綿 取溫 不覺 氣生 暖流 而柯枝 不敢犯之

정겨운 이야기가 깊어지고 마침 겨울의 긴 밤을 맞이하여 단단히 얽힌 솜으로 따뜻함을 취하니

기가 일어나 따뜻이 흐르는 것을 깨닫지 못하여 <가지>는 감히 범하지 않았다.

 

厚蒂 挑 而引之 則戰戰拒之 則蒂 疲 而 柯 凍

<후체>가 돋우어 끌어당기니 전전긍긍하며 거절한 즉  <후체>는 피로하여 지고 <가지>는 얼어붙었다.

 

如是 數日 厚蒂 憔悴

이와 같이 며칠이 지나니 <후체>는 초췌하여졌다.

 

后憂之 使斗花 往慰 笑話 見勢 而逼通之

후가 이를 걱정하여 <두화斗花>를 시켜 가서 위로하게 하니 우스운 이야기로 기세를 보여 다그쳐서 통정하였다.

 

결아(벽화) - 두화(496?-530)

 

厚蒂乃留斗花 而薄 柯枝

이에 <후체>는 <두화>에게 머무르며 <가지>를 박대하였다.

 

柯枝乃作白鳥歌 而悲之

이에  <가지>는 백조가(白鳥歌)를 지어 슬퍼하였다.

 

后乃與郎 吉之 爲夫妻 遂生子 而情弛

이에 후와 <위화>랑이 길례로 부부가 되게 하니 마침내 자식을 낳았으나 정이 느슨해졌다.

 

厚蒂復思柯枝密從之曰 男女 以陰陽爲情 汝不通我 而誤我 今已生子 而猶未忘汝也

<후체>는 다시 <가지>를 생각하며 남몰래 <가지>를 따르며 말하기를

“ 남녀는 음양으로 정(情)이 되는데 너는 나와 통하지 않아

잘못하여 내가 이미 자식을 낳았으나 아직도 너를 잊지 못한다.“

 

柯枝曰 臣非不好色 不敢忘先恩

<가지>가 말하기를

“ 신(臣)이 색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감히 <사숭>의 은혜를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蒂曰 汝能悅我 則彼自悅矣 何固持乎

<후체>가 말하기를

“ 너는 능히 나를 기쁘게 할 수 있으니 너 스스로 기뻐할 것인데 어찌 고집을 부리는가?“

 

枝曰 臣非吾君 則不可活命 可聽也

<가지>가 말하기를

“ 신은 나의 군(君)이 아니면 목숨을 연명할 수 없으니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乃解 而縱 情盡歡

이에 해명하고 종용하여 정을 다하여 합환하였다.

 

蒂乃奔 于枝 而不歸

이에 <후체>는 <가지>에게 따라가 돌아오지 않았다.

 

后怒曰 吾夫所吉 枝敢毁之

후가 노하여 말하기를  “ 나의 지아비가 한 길례를 <가지>가 감히 훼손하였다.”

 

乃命理方 治枝 而蒂護 而不放 理方不得治

이에 이방에 명하여 <가지>를 치죄토록 하니

<후체>가 보호하였으나 방면하지 못하고 이방은 치죄하지 못하였다.

 

后命兵官笞理方 而捕枝曰 今之理方 何 爲以稱理方

후는 병관에게 명하여 이방에게 태형을 가하고 <가지>를 잡아들이게 하고 말하기를

“ 지금의 이방이 어떻게 이방이라고 불리게 되었는가?”

 

郎乃告此 而止之

이에 <위화>랑이 이와 같이 고하고 이를 중지시켰다.

 

<위화>랑이 <영제>에게 이방(理方)의 도를 설명하고 <가지>를 방면하였다는 것이다.

 

 

 

65. <위화> <달문達門>대모와  <죽실竹室>의 도(道)를 說하다.

 

達門大母(달문대모)

 

后曰 達門大母聖人也 猶多枕席 前後所夫十數 而人不爲好色

朕是庸人也 惟三帝一仙 而人 以爲好色何也

후가 말하기를

“ <달문達門>대모는 성인(聖人)이다.

많은 사람이 잠자리를 같이 하여 전 남편과 후 남편이 수십 명이나 사람들은 색을 좋아한다 하지 아니하였다.

짐은 평범한 사람으로 오직 세 명의 帝와 한 명의 선인이 있었으니 사람들이 어찌 호색하다고 하겠는가?”

 

<연제>는 자비, 소지, 지증제를 모셨다.

 

花曰 達門大母古之大雌也

大雌善理陰 故枕多 而不煩

中雌能守陰 故枕淸 而能貞

下雌亂淫 故十目指之

汝與我 偕 仙風 長吹 誰復謂好色乎

汝乃今之達門也 可不好色乎 惟在理陰 而已

위화랑이 말하기를

“ <달문>대모는 옛적의 큰 암컷입니다.

큰 암컷은 음의 이치를 잘 아는 까닭에 많은 사람이 잠자리를 하여도 번민하지 않습니다.

중간의 암컷은 능히 음을 지킨 까닭에 잠자리가 맑고 능히 바릅니다.

아래의 암컷은 음란한 까닭에 열 개의 눈이 손가락질 합니다.

당신과 나는 모두 선풍(仙風)을 오래도록 불었으니 누가 다시 호색하다고 말하겠습니까?

당신은 오늘의 <달문>인데 호색함에 옳고 그름이 있겠습니까? 오직 음의 이치가 있을 뿐입니다.

 

后曰 欽哉 願 耳 而苾我

후가 말하기를

“ 공경함이여! 귀 기울어 나를 향기롭게 하라”

 

后曰 那比神母 達門大母之婢也

今人 反以爲神母 抑有功德 而然乎

후가 말하기를

“ <나비那比> 신모(神母)는 <달문>대모의 노비이다.

지금 사람들이 신모를 반대하는 것은 공덕이 있음에도 막으려고 하는데 어찌 된 것입니까?“

 

花曰 婢子何常婢 而功德何常功哉 我無色 而汝悅之 汝無威 而人畏之 何嘗有功德哉

只是 淤池 爲玉門 腐草 爲吾汝 而已 竹室 宝弓 何嘗有功德哉

<위화>랑이 말하기를

“ 노비는 어찌 영원한 노비이며 공덕은 어찌 영원한 공덕이겠습니까?

나는 색(色)이 없이도 당신을 기쁘게 하고 당신은 위엄이 없이도 사람을 두렵게 하니

어찌 일찍이 공덕이 있다하겠습니까?

단지 진흙 같은 못이 옥문지(玉門池)가 되고 썩은 풀이 나(위화)와 당신(영제)이 되었는데

<죽실竹室(433-496)>과 <보궁宝弓>이 어찌 일찍이 공덕이 있다하겠습니까?“

 

호원(다실) - 죽실(433-496)

궁혜(보심) - 보궁(450?- )

 

后曰 浪哉苾我

후가 말하기를

“ 물결이여! 나를 향기롭게 하라.”

 

郁永者 昌永之後也

<욱영郁永>은 <창영昌永>의 후손이다.

 

일지(야비) - 창영(110?-176)

 

<창영>은 파사왕 14년(139년)에 태자병관이 되었고 <욱영(450?- )>은 자비왕 17년(474년)에 병관이 되었다.

 

世守那比神祠 在玉門池

대대로 나비신사(那比神祠)를 지켜왔는데 그 신사(神祠)는 옥문지(玉門池)에 있었다.

 

有七百 奈樹 國人尊之 爲奈祠 貢布歲 以萬敫

칠백 그루의 나수(奈樹)가 있어 나라 사람들이 우러러보니 나사(奈祠)로 하여

해마다 포목을 바치고 수많은 사람이 노래하였다.

 

故郁永之家 富裕 多珍宝

그런 까닭에 <욱영>의 집은 부유하고 진기한 보물이 많았다.

 

實竹公母竹室娘主 致誠于奈祠 而生公

<실죽實竹>공의 어머니 <죽실竹室(433-496)>낭주가 나사(奈祠)에서 치성을 드려 <실죽>공을 낳았다.

 

及長 與郁永 相善 郁永妻宝弓 亦禱祠 而生 郁永 入實相(?)公 幕下

장성하여 <욱영>과 더불어 서로 잘 지내니  <욱영>의 처 <보궁> 역시 나사(奈祠)에서

<욱영>이 <실죽>공의 막하에 들어가도록 기도하였다.

 

宝弓亦爲實相(?)公 供妾 生公女 宝竹 還爲 郁永妻 守那比神

<보궁> 역시 <실죽>공을 위하여 첩으로 바쳐 공의 딸 <보죽宝竹>을 낳고 돌아와

<욱영>의 처가 되어 나비신(那比神)을 지켰다.

 

竹室之母多室 亦曰聚姬者 句麗人也

<죽실>의 어머니 <다실多室>은 <취희聚姬>라고 하는데 고구려 사람이다.

 

初爲好原妾 生竹室 而後爲實相公妾

처음에 <호원好原>의 첩이 되어 <죽실>을 낳고 후에 <실상實相>공의 첩이 되었다.

 

호동(수화) - 호원(396-438)(다실) - 죽실(433-496)

호물(보반) - 실상(395-461)(죽실) - 실죽(449- )

 

 竹室從之 共事那比神 夢見 白額虎告 于竹室

<죽실>이 어머니를 따라서 나비신(那比神)을 같이 섬기니 꿈에 이마가 흰 호랑이가 <죽실>에게 고(告)하였다.

 

實相公聞之曰 貴子夢也 可以生吾子

<실상>공이 이를 듣고 말하기를  “ 귀한 아들을 낳을 꿈이니 나의 아들을 낳음이 옳다.”

 

聚姬乃引竹室 于公寢

이에 <취희>가 <죽실>을 <실상>공의 잠자리로 이끌었다.

 

公遂合竹室曰 汝爲何功德 而得夢乎

마침내 <실상>공이 <죽실>과 합환하고 말하기를  “ 너는 어떤 공덕으로 꿈을 꾸었는가?”

 

竹室曰 妾於祠 前見 小兒輩 欲捕水天牛 而殺之 故救而放之也

<죽실>이 밀하기를

“ 첩이 사당에서 전에 작은 아이들이 물속의 천우(天牛)를 사로잡아 도살코자하여 구하여 놓아주었습니다.“

 

公曰 汝行陰德 必生吾好子 不可以婢妾待之

<실상>공이 말하기를

“ 네가 음덕을 행하여 반드시 나의 좋은 아들을 낳을 것이니 첩으로 대우하는 것은 옳지 않다.“

 

乃請于帝 而吉之爲夫人

이에 帝에게 청하여 부인(夫人)으로 하여 길례를 올렸다.

 

果生 實竹公

과연 <실죽實竹>공을 낳았다.

 

<실죽>이 태어난 449년은 己丑년으로 土牛의 해이다.

 

竹室曰 我母爲汝妾 而我爲汝妻 不安于心也

<죽실>이 말하기를

“ 나의 어머니는 당신의 첩인데 내가 당신의 처가 되니 마음이 불안합니다.”

 

公然之 亦請于帝 而幷欲爲夫人

<실성>공이 그렇다고 여겨 역시 帝에게 청하여 나란히 부인이 되게 하고자 하였다.

 

帝以骨微 難之 只嵩品秩

제는 골품이 낮아 어렵게 여겨 단지 품계만 높여주었다.

 

公乃納竹室 于帝 媚於枕席之間 而請之

이에 <실성>공이 <죽실>을 제에게 바치니 잠자리에서 아첨을 하여 어머니가 부인이 되기를 청하였다.

 

帝頗動之 命聚姬爲宝海女

제가 자못 마음이 흔들려 <취희>를 <보해宝海>의 딸로 명하였다.

 

내물(보반) - 보해(390-441)

 

보해는 고구려에 인질로 있다가 418년에 돌아왔다.

 

未幾 竹室又娠帝女

얼마 되지 않아 <죽실>은 또 제의 딸을 임신하였다.

 

帝摩其腹曰 吾子之祖也

제가 그 배를 문지르며 말하기를  “ 내 아들의 자식이니 할아버지이다.”

 

내물(보반) - 눌지(387-458) - 자비(414-479) - 비처(436-500)

                    보해(390-441) - 취희(호원) - 죽실(433-496)

                    미해(393-433)

호물(보반) - 실상(395-461)

 

<눌지>, <보해>, <미해>, <실상>은 형제간이다.

<취희>를 <보해>의 딸로 하였으므로 <취희>의 딸인 <죽실>이 <눌지>의 딸을 임신하자

<눌지>가 <죽실>의 배를 문지르며  <자비>의 자식이니 할아버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乃許吉之 故聚姬亦爲公夫人 侍於左右

이에 길례를 허락한 까닭에  <취희> 역시 <실상>공의 부인이 되어 좌우에서 시중을 하였다.

 

人稱 雉卵湯 誹 其子母 聚麀也

사람들이 치란탕(雉卵湯)이라고 하며 그 딸과 어미가 암사슴을 모은다고 비난하였다.

 

竹室事公 十四年 而公薨

<죽실>이 공을 섬긴 지 14년에 <실상>공이 죽었다.

 

<실상>공이 죽은 해는 461년이다. 이 때 <죽실>의 나이 29살이다.

 

 年尙二十九 慈帝 以其少 命嫁之

나이 29살 이었으나 <자비>제는 오히려 어리다 하여 출가(出嫁)하도록 하였다.

 

竹室曰 妾已事兩帝一君 又何適乎

<죽실>이 말하기를

“ 첩은 이미 두 임금과 한 君을 섬겼는데 또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죽실>은 <눌지>제와 <자비>제 그리고 <실상>군을 섬겼다.

 

 帝益憐之 陞爲二品權妻 入居宮中

제가 이를 더욱 가련히 여겨 2품 권처(權妻)로 올리고 궁중에 들어와 살도록 하였다.

 

又生帝女 寵益高 以爲奈祠 陰祐盡 以賞賜納祠飾之

또 제의 딸을 낳으니 총애가 더욱 높아져 나사(奈祠)를 음으로 도와

하사 받은 상을 모두 사당에 바쳐 나사(奈祠)를 장식하였다.

 

時東宮改修 太子移御所 接 於竹室宮

때에 동궁(東宮)을 수리하니 태자가 거소를 옮겨 죽실궁(竹室宮)에 접하게 되었다.

 

竹室 以其所 栽草花 日 進太子 媚之 太子悅 其色 挑弄之

<죽실>이 그 곳에 풀과 꽃을 심다가 하루는 태자에게 다가가 아첨을 하니

태자가 그 색(色)을 좋아하며 농을 돋우었다.

 

竹室 以目送情 而密語

<죽실>은 눈으로 정(情)을 보내며 속삭였다.

 

太子曰 恐人耳目 走歸之

태자가 말하기를  “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우니 빨리 돌아가십시오.”

 

太子思慕之 上樓 吹笛 而送音 竹室出倚欄干 而相望戱之

태자가 <죽실>을 사모하여 누각 위에서 피리를 불어 소리를 보내니

<죽실>이 나와 난간에 기대어 서로 바라보며 놀았다.

 

良久曰 帝將臨幸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 帝가 곧 행차하려 합니다.”

 

不可不 浴 解衣 示膚 而下之

어쩔수 없이 욕실에서 옷을 벗으니 아래에 피부가 보였다.

 

太子 不覺 心動 放其籠鳥 而逐之 故入其浴室 呼之 曰 大母請 洗 我汚足

태자는 심장이 뛰었으나 깨닫지 못하고 새장 속의 새를 놓아주어 날려 보내니

그 욕실에 들어와 <죽실>을 부르며 말하기를  “ 대모가 나의 더러운 발을 씻어 주기를 청합니다.”

 

竹室 知其意 却婢出之 出槽迎之

<죽실>이 그 뜻을 알고 노비를 물리치고 욕조에서 나가 태자를 맞이하였다.

 

太子乃抱竹室 入槽通之

이에 태자가 <죽실>을 안고 욕조에 들어가 통정하였다.

 

竹室感泣曰 妾蒙 聖恩 願作同穴之身 此處 多人目 不得 浪藉

太子 若從妾 于奈祠 淨室 則雖姿意 盡歡 而人 莫知之

<죽실>이 감읍하며 말하기를

“ 첩이 성은을 입었으니 동혈지신(同穴之身 : 죽어서 같이 묻히는 몸)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곳은 여러 사람의 눈이 있어 질펀하게 놀지 못하니

태자가 만약 첩을 따라 나사(奈祠)에 가면 방을 깨끗이 하여

비록 마음대로 즐겨도 사람들이 알지 못할 것입니다.“

 

乃以琴笛 相應 爲約 而日就 奈祠 相合

이에 가야금과 피리로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매일 나사(奈祠)에서 서로 만났다.

 

遂娠太子女 太子益愛之 以奈祠 猶遠 托言 學琴 至 竹室之寢

마침내 태자의 딸을 임신하여 태자는 <죽실>을 더욱 사랑하게 되니

나사(奈祠)는 가야금을 배우는 구실을 붙이기에는  <죽실>의 침실에 도착하기가 오히려 멀었다.

 

或書 而繼夜 婢皆知之 嘲 琴曰 雌蛙聲 笛曰 雄蛙聲

때로는 낮에서 밤까지 계속하여 함께 있으니 노비들 모두가 이를 알고

가야금은 암 개구리 소리고 피리는 숫 개구리 소리라고 조롱하였다.

 

一夜 太子與竹室 沈淪 抱臥

어느 날 밤 태자와 <죽실>이 사랑에 빠져 안고 누워있었다.

 

時方風雨 以爲帝 不幸臨矣 豈謂 帝 微行 而至入其寢

而見 太子合 于竹室 而睡深

때에 비바람을 피하려고 帝가 임의로 행차하지는 않았는데

어찌하여 알려져 帝가 미행하여 그 침실에 들어와 보니 태자와 <죽실>이 합환하여 깊이 잠들어 있었다.

 

帝怒召 巴胡后 責之 將流 太子 及竹室

帝가 노하여 <파호巴胡>后를 불러 꾸짖으며 태자와 <죽실>을 유배를 보내려고 하였다.

 

태자 <비처(436-500)>는 <자비(414-479)>와 <파호(420-482)>의 아들이다.

 

巴胡乃 取餠 與帝 及太子 覺 喫少 許 而自取 而食其餘曰

共色亦 如共食 而已

竹室 先帝 寵姬 而汝悅之 汝之寵姬 太子獨 不可悅乎

이에 <파호>가 떡을 가져와 제와 태자에게 주며 한 모금씩 먹어보라 하며 자기도 나머지를 먹으며 말하기를

“ 색(色)을 같이 하는 것은 음식을 같이 먹는 것과 같습니다.

<죽실>은 <눌지>제의 총희로 당신이 좋아하여 당신의 총희가 되었는데 유독 태자가 좋아하면 옳지 않은 것입니까?“

 

帝乃小解欲歸之

帝는 이에 조금 풀려 돌아가고자 하였다.

 

巴胡后曰 冒雨而 來 怒 而歸 非人情也

吾欲與汝 共枕 于竹室之寢

<파호>후가 말하기를

“ 비를 피하려고 와서 노하여 돌아가니 인정(人情)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죽실>의 침실에서 같이 자고자 합니다.“

 

遂引帝入寢 呼 竹室 入之

마침내 제를 침실에 끌어들여 <죽실>을 불러 들어오게 하였다.

 

竹室不敢入 后使諸婢 携來引入 使臥帝側曰 聖人不妬

<죽실>이 감히 들어오지 못하니 후가 여러 노비를 시켜 강제로 들어오게 하여

제의 곁에 눕히며 말하기를  “ 성인은 질투를 하지 않습니다.”

 

濡 餘多 福 遂 挑帝 聯房

적시는 복이 남아도니 마침내 帝를 돋우어 연이어 방사를 치렀다.

 

帝乃氷解 不復問之

이에 帝는 완전히 풀려 다시는 묻지 않았다.

 

是以 太子姿意出入 設小門 於寢後 帝至 則太子 從小門 走 宮中

이로서 태자는 마음대로 출입하고 침실 뒤에 작은 문을 설치하여

帝가 도착하면 태자는 작은 문을 따라 궁중으로 도주하였다.

 

歌曰 東門 迎太陽 西門 送小陽 妾身 不是好淫 雨 只是 聖恩 兩 難忘

노래하기를

“ 동문(東門)에서 태양(太陽)을 맞이하여 서문(西門)에서 소양(小陽)을 보내네.

첩의 몸은 음탕함을 좋아하지 않는데

단지 비가 내려 성은을 입었으니 태양(太陽)과 소양(小陽)은 잊기가 어렵구나.“

 

太子 卽位 待 以后禮 後宮 無 與之 抗禮

태자가 즉위하여 후의 예로 대우하니 후궁들이 아무도 그 예에 거부하지 못하였다.

 

政事多出其手 習宝公 依之 爲重

정사(政事)가 그 손에서 많이 나오니  <습보習宝>공이 그녀에게 의지하여 중하게 되었다.

 

내물(보반) - 보해(성명) - 습보(420-485)(조생) - 지도로(437-514)

 

<습보>는 <내물>제의 아들인 <보해>의 아들로 일명 <보보아>라 하였으며  지증제 <지도로>의 아버지이다.

 

炤明 迎帝 兩后之入宮 皆被其薦引之力

소명(炤明)과 영제(迎帝) 두 后가 궁궐에 들어온 것은  모두 <죽실>이 천거하여 끌어들인 힘이다.

 

<비처>의 천후인 소명(炤明)천후는 <지도로>의 딸 <후황(466-499)>을 말하며

<지도로>의 천후인 영제(迎帝) 천후는 <등흔>의 딸 <연제(463-525)>를 말한다.

 

迎帝之初薦于毗帝

영제(迎帝)를 처음 <자비>제에게 천거하였다.

 

時 竹室 以相衣付之曰

那比神 護寵之衵也 大貴而無相忘

당시 <죽실>이 서로 속곳을 바꾸어 입고 부탁하며 말하기를

“ 나비신(那比神)이 보호하고 총애하는 속곳이다. 크게 귀하게 되니 서로 잊지 말자.”

 

迎帝感其恩 常 呼以叔母 情義不變

영제(迎帝)는 그 은혜에 감격하여 항상 숙모라고 부르며 정(情)과 의(義)가 변하지 않았다.

 

奸細輩 讒 迎帝 于昭明 則竹室 輒解之 得無事者多

간사한 무리들이 소명(昭明)천후에게 영제(迎帝)를 참소하니

<죽실>이 번번이 이를 해결하여 무사하게 된 것이 여러 번이었다.

 

宝弓者 宝沈之女也 亦事那比神 以竹室爲神兄

<보궁宝弓>은 <보심宝沈>의 딸인데  역시 나비신(那比神)을 섬겨 <죽실>을 신형(神兄)으로 여겼다.

 

交義甚密 竹室歡之 如夫婦曰

吾功德 乃汝功德 以放生 救恤計 以較之

교의(交義)가 심히 친밀하여 <죽실>이 이를 기뻐하며 부부처럼 말하기를

“ 나의 공덕과 너의 공덕은 방생(放生)으로 구휼하는 계책이니 서로 이를 견주는 것이다.”

 

宝弓見人寒無衣 而脫衣與之

<보궁>이 추운 겨울에 옷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고는 옷을 벗어 주었다.

 

竹室聞之曰 無衣 則無食

<죽실>이 이를 듣고 말하기를  “ 옷이 없는 것은 음식이 없는 것이다.”

 

遣人 負粮 追 而與之 如是者 累百計

사람을 보내어 양식을 짊어지고 쫓아가 주니 이와 같은 자가 수백 명이었다.

 

常謂宝弓曰 大貴 未若事神 汝可爲祠主

항상 <보궁>에게 일러 말하기를

“ 크게 귀한 것은 신을 섬기는 것만 못한데 네가 어찌 사주(祠主)가 되겠는가?”

 

乃召祠 嗣 郁永 與宝弓通之

이에 후사(後嗣) <욱영>을 사당으로 불러 <보궁>과 통정하게 하였다.

 

郁永 素仰 竹室 一如其命 遂以宝弓 爲祠主 奉 竹室爲祠大監

<욱영>은 <죽실>의 명성을 오래 전부터 들어 그 명령에 따르니

마침내 <보궁>이 사주(祠主)가 되어 <죽실>을 나사(奈祠) 대감(大監)으로 받들었다.

 

毗帝卽位 竹室退 爲習宝公 暖房

<자비>제가 즉위하지 <죽실>은 물러나 <습보>공의 난방(暖房)이 되었다.

 

<자비>제가 즉위한 해는 458년이다.

이때 <죽실>은 26세이고 <습보> 39세, <자비> 45세이다.

 

及公 薨 以奴 碧仁 爲私臣 生女竹仁 嫁 于宝弓子弓永 生子竹永

마침내 <습보(420-485)>공이 죽으니

종(奴) <벽인>을 사신(私臣)으로 삼아 딸 <죽인竹仁>을 낳고

<보궁>의 아들인 <궁영弓永>에게 출가하여 아들 <죽영竹永>을 낳았다.

 

벽인(죽실) - 죽인(486- )

궁영(죽실) - 죽영(488?- )

 

迎帝欲報其舊恩 命竹仁入侍于帝 生子

영제(迎帝)가 그 구은(舊恩)에 보답하고자  <죽인>에게 명하여 제를 시중들게 하여 아들을 낳았다.

 

竹公 妻 以眞晩公主 生子䨿公

<죽공竹公>은 <진만眞晩>공주를 처로 하여 아들 <잡공䨿公>을 낳았다.

 

모진(죽인) - 죽공(505- )

지도로(연제) - 진만(502- )

죽공(진만) - 잡공(520?- )

 

竹公 荒外 而不親 公主乃與(竹永)私通 願改嫁竹永 而主祠許之 生女筍姬

<죽공>이 변방에 나가 친하지 못하니 공주는 <죽영>과 사통하여

<죽영>에게 개가하기를 원하여 사주(祠主)가 이를 허락하여 딸 <순희筍姬>를 낳았다.

 

죽영(진만) - 순희(527- )

 

竹永使其嬖人 妙人 通其妻 生女篁氏 爲狗祠主

<죽영>은 그 폐인(嬖人)인 <묘인妙人>을 시켜

그 처와 통정케 하여 딸 <황씨篁氏>를 낳아 구사(狗祠)의 사주(祠主)가 되었다.

 

묘인(진만) - 황씨(530- )

 

尋宗妻 簡公通之 生子篁宗

<심종尋宗>의 처가  <간공簡公>과 통정하여 아들 <황종篁宗>을 낳았다.

 

簡公 尋宗母眞昭公主與竹公相通 而生也

<간공簡公>은 <심종尋宗>의 어머니 <진소眞昭>공주가  <죽공竹公>과 상통하여 낳았다.

 

모진(진희) - 진소(506- )

모진(죽인) - 죽공(505- )

죽공(진소) - 간공(525?- )

 

至是 狗祠奈祠皆 奉竹室 宝弓 皆稱其功德此章

이때에 이르러 구사(狗祠)와 나사(奈祠)는 모두 <죽실>과 <보궁>을 받들고

모두가 그 공덕을 이와 같은 문장으로 말하였다.

 

竹公生子䨿公福于奈祠

<죽공>의 아들 <잡공>이 나사(奈祠)에서 복을 빌었다.

 

迎帝與魏花郞臨之 入其淨室 見竹室宝弓之像 而謂

영제(迎帝)와 <위화>랑이 왕림하여 그 깨끗한 방에 들어와  <죽실>과 <보궁>의 상(像)을 보고 생각하였다.

 

郎曰 人有 以竹室 碧仁 比 汝我 我實不然

又以達門 比 竹室 而那比 比 宝宮者有之 何如

<위화>랑이 말하기를

“ <죽실>과 <벽인>을 당신과 나와 비교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또 <달문>을 <죽실>에 비교하고 <나비>를 <보궁>에 비교하는 자가 있는데 어찌 같겠습니까?“

 

郎乃說大母經 而入齋

이에 <위화>랑이 <달문>대모경(大母經)을 설명하고 들어와 재(齋)를 올렸다.

 

后曰 望祖 晦母 三神護之 而祠丁 作亂 藏 於岩穴 而避之

朕與汝 若遭 不測之變 則汝有何術 而遁之

후가 말하기를

“ 죽은 할머니 <벽회碧晦>는 삼신이 보호하여 사당 장정의 난리가 일어났을 때 동굴에 숨어 피신하였는데

짐과 당신이 만약 사고를 당하면 당신은 무슨 술수로 달아나겠습니까?“

 

花曰 禍福之 所由其源 甚遠可遁 則遁可當 則當 何用術乎 無乃汝遁我 我遁汝乎

<위화>랑이 말하기를

“ 길흉화복은 그 원인이 이유인데

아주 멀리 달아나면 달아남이 가한 것이 당연하니 무슨 술수가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신이 나를 달아나게 하고 내가 당신을 달아나게 하는 것은 소용없지 않겠습니까?“

 

后曰 遁哉苾我

후가 말하기를

“ 달아남이여! 나를 향기롭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