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당유고

위화진경(魏花眞經) 完譯(10)

지보고 2023. 11. 28. 17:46

 

 

53. 화공(畵工) <집망執網>과  금관가야 <장문長門>공주의 아들 <우공牛公>

 

翌年三月 后生 郎女柳眞公主 於皐王宮 中外仙徒會禱者數千

다음 해 3월 후가 <위화>랑의 딸 <유진柳眞>공주를 고왕궁에서 낳으니

나라 안팎 선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자가 수천 명이었다.

 

위화(연제) - 유진(511- )

 

發羽林軍護之 至期 彩雲繞宮 異香滿室

우림군의 호위를 받으며 출발하여 도착하니

아름다운 빛깔의 고운 구름이 고왕궁을 두르고 기이한 향기가 산실에 가득 찼다.

 

后抱郎身 而娩之甚安

후가 <위화>랑의 몸을 안고 분만하니 심히 안정이 되었다.

 

帝命郎洗之 而飯 仙徒 以勞之

帝가 <위화>랑에게 명하여 아기를 씻게 하고 선도들은 밥을 지었다.

 

加郎爵阿湌 賜白大馬 紫金神衣

<위화>랑에게 아찬의 작위를 더하고  백대마(白大馬)와 자금신의(紫金神衣)를 하사하였다.

 

車騎副於太子 器玩 皆 如后例 雖 角干 上仙 不敢抗禮

태자 다음의 수레를 타고 그릇과 완구는 모두 후의 것과 같이하니

비록 각간(角干)이나 상선(上仙)도 감히 예(禮)를 거슬리지 못하였다.

 

后旣淨 帝與柳眞 謁廟 以慰后心 郎 感 其恩 請於后曰

臣 以賤軀 陪幸 陛下者 有 此公主之宿命也 今 旣成命 臣請乞歸

후가 이미 깨끗하여 帝가 <유진>과 함께 종묘를 배알하여 후의 마음을 위로하니

<위화>랑이 그 은혜에 감격하여 후에게 청하기를

“ 신이 미천한 몸으로 폐하를 모셨으니 이 공주의 숙명입니다. 지금 명(命)을 이루었으니 신은 물러나고자 합니다.“

 

后曰 朕不可一日無汝 汝何孤朕 而欲去 朕欲與約三生 汝可爲朕誓也

후가 말하기를

“ 짐은 너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하는데 너는 어찌 짐을 홀로 두고 가려고 하는가?

짐은 너와 더불어 삼생(三生)을 약속코자 하니 너는 짐에게 맹서하여야 한다.“

 

郎不敢違旨 帝許郎與后約三生 于廟樹 帝與郎偕后 于廟中 古所無也

<위화>랑이 후의 뜻을 어기지 못하니 帝는 종묘의 나무에서 <위화>랑과 후의 삼생(三生)의 약속을 허락하였다.

帝와 위화랑, 후 모두가 종묘 가운데 있는 것은 옛날에는 없는 일이었다.

 

時 執網之妹 爲阿湌 宋宿妾 與郎兄 元臣 相通 生子 宋宿 訴 于理方

때에 <집망執網>의 여동생은 아찬 <송숙宋宿>의 첩인데 <위화>랑의 형 <원신元臣>과 상통하여 아들을 낳으니

<송숙>이 이방(理方)에 고소하였다.

 

元臣 恃郎之威 不肯 出其妾

<원신>은 <위화>랑의 위세를 믿고 그 첩을 내보내지 않았다.

 

 執網 與厚都妃 知悅 如夫婦 而厚都 不能禁

<집망>과 <후도厚都> 妃 <지열知悅>은 부부처럼 지냈으나 <후도>는 금할 수 없었다.

 

지도로(라황) - 후도(468-533)

비기(열황) - 지열(468- )(후도) - 도열(485- )

                                      (비처) - 말리(489- )

 

知悅之女 都悅 爲阿斗 阿湌 妻 知悅 常與網 會 于阿斗宅 知悅 旣娠

<지열>의 딸 <도열都悅>은 <아두阿斗> 아찬의 처인데

<지열>이 항상 <집망>과 함께 <아두> 집에 모여 <지열>이 임신을 하였다.

 

순도(아해) - 아두(485- )

 

又使 都悅 通 于網 而生子

또 <도열>을 시켜 <집망>과 통정하여 아들을 낳았다.

 

阿斗 不知 以爲己子 阿斗 副妻 亦 生阿斗子

<아두>는 자기 아들로 여기고 알지 못하였고  <아두>의 부처(副妻) <말리> 역시 <아두>의 아들을 낳았다.

 

乃訴 都悅子 于理方

이에 <도열>의 아들을 이방(理方)에 고소하였다.

 

網 托 爲柳眞宮 畵事 不就 服欺 其副妻 末里公主 召 以后詔幽 於仙院 强淫

而誘 以利害 末里 不得已 收其訴

<집망>이 유진궁을 위하여 그림 그리는 일을 부탁받았으나 나가지 않고

그 부처(副妻) <말리末里>공주를 속여 후가 은밀히 부른다고 하여 선원에서 강제로 욕보이고 유혹하니

<말리>는 이해타산을 따져 부득이 그 고소를 받아들였다.

 

理方主簿 田檍 知 其寃 直諫 於后曰

陛下 以萬乘之尊 委身 於妖艶 誕生 公主 故公卿之妻 望風効之

都悅 以執網之子 爲嗣 元臣 奪 宋宿之妾 皆陛下之過也 請改之

이방(理方) 주부(主簿) <전억田檍>이 그 원통함을 알고 후에게 직간하여 아뢰기를

“ 폐하는 만승지존으로 몸을 맡겨 요염한 공주를 낳으니 공경의 처들이 우러러 사모하여 이를 본받습니다.

<도열>은 <집망>의 아들로 적자로 하고자 하고

<원신>은 <송숙>의 첩을 빼앗으니 모두가 폐하의 잘못이니 고치시기를 바랍니다.“

 

后大怒 命笞之

후가 크게 노하여 태형을 가하라고 명하였다.

 

郎曰 此直臣也 豈可笞乎

<위화>랑이 말하기를  “ 이 사람은 직간하는 신하인데 어찌 태형이 가하겠습니까?”

 

乃命 末里子 爲阿斗 嗣 還 宋宿妾 又以郎妹 菱花妻

이에 <말리>의 아들을 <아두>의 적자로 하고 <송숙>의 첩을 돌려보내고

또 <위화>랑의 여동생 <릉화菱花>를 <송숙>의 첩으로 하였다.

 

田檍曰 汝可勿諱 而盡言仙門之惡

<전억>이 말하기를

“ 너희들은 선문(仙門)의 악(惡)을 기탄없이 말하는 것을 꺼리지 말라.”

 

檍曰 吾兄聖人也 臣何敢言乎

<전억>이 말하기를  “ 우리 형은 성인(聖人)인데 신하가 감히 어찌 말을 하겠는가?”

 

郎又謂執網曰 好色 人之性也 吾不責汝 而理方不恕奈何

吾恐 汝若受笞 不能畵事 汝將何以報吾后乎

<위화>랑은 또 <집망>에게 말하기를

“ 호색(好色)은 인지상정이다.  내가 너를 문책하지 않는데 이방(理方)이 어찌 용서하지 않겠는가?

네가 태형을 받아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너는 장차 어찌 나의 후에게 보답하겠는가?“

 

執網乃泣遂絶 都悅

이에 <집망>은 마침내 울면서 <도열>과 절교하였다.

 

都悅 遂狂 阿斗 悶之 請於后曰

執網 敎臣妻以繪畵 臣亦願學之 請許如故

<도열>은 드디어 미치도록 <아두>를 번민하여 후에게 청하기를

“ <집망>은 신을 처로 하여 그림을 가르치고 신 또한 배우기를 원하니 옛날처럼 허락하여 주시기를 청합니다.“

 

后笑曰 汝家事也 自爲之網

후가 웃으며 말하기를  “ 너의 집안일이니 <집망>의 일은 알아서 하라.”

 

乃復往 通之 阿斗不妬之 相與之 助歡

이에 다시 왕래하며 통정하니 <아두>는 이를 질투하지 않고 서로 도우며 기뻐하였다.

 

又使末里 通網 末里不肯之 而阿斗强之曰

執先生天仙也 其花 可以医汝

또 <말리>를 시켜 <집망>과 통정케 하니 <말리>가 이를 수긍하지 않아  <아두>가 강제로 말하기를

“ <집망> 선생은 천선(天仙)이니 그 화(花)는 가히 너를 멜만하다.”

 

末里 遂笑曰 汝言旣如此 吾何自守 亦與網 好網

마침내 <말리>가 웃으며 말하기를

“ 당신의 말이 이와 같은데  내가 어찌 <집망>과 좋아함을 스스로 지킬 수 있겠습니까?”

 

乃以其母所生 厚都之女 納于阿斗 斗曰

本欲 獻吾妻 豈意迎高妹 眞所謂 投以木瓜惠以瓊琚也

이에 그 어미가 낳은 <후도>의 딸을 <아두>에게 들여보내니 <아두>가 말하기를

“ 본래 욕심은 내 처를 바치는 것인데 어찌 고매(高妹)를 맞이 할 뜻이 있었겠는가?

진실로 소위 말하는 모과를 주어 경거(瓊琚 : 아름다운 옥)를 얻은 것이다.

 

時人重 其言 傳誦 中外曰 王孫好道以賢 易色以爲昭 代盛事 尙忠氣

而輕妻子之俗 一時風靡

聞人之贒 則千里相訪 見人之急 則脫衣相贈

당시 사람을 중히 여긴다는 그 말이 전하여 지니 나라 안팎에서 말하기를

“ 왕손은 도를 좋아하니 현명하고 색을 바꾸니 밝아져서 장하고 아름다운 일을 대신하고

충성스런 기운을 높여 처자(妻子)를 경시하는 풍속이 잠시 유행하였고 

사람의 현명함을 들으면 천리에서 서로 방문하고 사람의 위급함을 보면 옷을 벗고 서로 도왔다."라고 하였다.

 

時 甘文太守 芥明 有樂道 下士之風

당시 감문 태수 <개명芥明>은 도를 즐기고 아래 사람을 도우는 품성이 있었다.

 

?枕婢 有所私郎徒 名牛公

침비(枕婢)에게 사사로이 <우공牛公>이라는 낭도가 있었다.

 

婢謂牛曰 以君之才 爲我 作奴 非相愛也 可往 甘文 作邊帥 而責也

침비가 <우공>에게 일러 말하기를

“ 군(君)의 재주는 나를 노비로 만들고 서로 사랑하지 않으니 감문으로 가서 변방의 장수가 되어 책무를 다하시오.“

 

牛許之 到甘文 不數里 滯雪於路

<우공>이 이를 받아들이고 감문에 도착하니 몇 리를 못 가 도로에 눈이 쌓였다.

 

叩一家有 老翁出曰 糧絶無以接客

한 채의 집이 있어 문을 두드리니 늙은 할아버지가 나와 말하기를

“ 양식이 떨어져 손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牛曰 吾有宝刀 可以換米

<우공>이 말하기를  “ 나에게 보도(宝刀)가 있으니 쌀과 바꾸십시오.”

 

翁受刀 而入良久 其妻 煖室 而迎之曰

妾之子 作關吏 去此 不遠 可招來相見

할아버지가 보도를 받아 한참을 있으니  그 처가 방을 따뜻하게 하고 맞이하며 말하기를

“ 첩의 아들이 관문의 관리가 되어 이번에 떠났으나 멀리 가지 못하였으니 불러 와서 서로 만나 보시지요.“

 

乃迎其子 而來 乃一巨大漢子也

이에 그 아들을 맞이하여 오니 체구가 큰 사나이였다.

 

聞牛 爲京都仙徒 告 于關主 黑泥

<우공>이 경도(京都)의 선도(仙徒)라는 소문을 듣고 관주(關主) <흑니黑泥>에게 고하였다.

 

泥 大驚 親來 迎之 遂宿於泥家

<흑니>가 크게 놀라 친히 와서 맞이하여 마침내 <흑니>의 집에서 자게 되었다.

 

泥使其妹 洗牛足曰 此可以奉枕乎

<흑니>가 그 여동생을 시켜 <우공>의 발을 씻도록 하며 말하기를

“ 이 아이를 잠자리를 받들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牛曰 汝妹 雖好 不如汝妻

<우공>이 말하기를

“ 당신의 여동생이 비록 좋으나 당신의 처만 못합니다.”

 

泥遂以其妻奉之

마침내 <흑니>는 그 처가 잠자리를 받들도록 하였다.

 

妻曰 妹美而 妾醜 郎君 何愛妾乎

처가 말하기를

“ 시누이는 아름답고 첩은 추악한데 낭군은 어찌 첩을 사랑하십니까?”

 

牛曰禮也  聞爾君 好士而尊賢 汝爲 其臣 不識 賓主之禮乎

우공이 말하기를

“ 예(禮)입니다. 당신의 군(君)을 소문을 들으니 아래 사람을 좋아하여 존경받고 현명한데

당신은 손님의 예를 알지 못하는 신하가 되도록 하려고 하십니까?“

 

妻曰 妾乃主君之妓也 願薦君於主君 以治吾邦 貴 勿相棄 乃報 于芥明

처가 말하기를

“ 첩은 주군(主君)의 노리개입니다. 군(君)을 주군(主君)에게 천거하기를 바라니

우리 봉토를 다스려 귀하게 되어 서로 포기하지 말고 <개명芥明>에게 보답하십시오,”

 

芥待之 甚厚 以副妻 苩眞同枕 而孕 以爲得仙種 而宴之

<개명>이 그를 기다려 심히 후하게 대하고 부처(副妻) <백진苩眞>과 동침하여 잉태하니

선(仙)의 씨앗을 얻게 되어 잔치를 열었다.

 

黑泥之敵 楊久者 辱牛 以妖物 苩怒笞之

<흑니>의 적 <양구楊久>라는 자가 <우공>을 요물이라고 욕하니 <백진>이 노하여 매질을 하였다.

 

楊乃告 于按察 治之

이에 <양구>는 안찰(按察)에 고하여 이를 다스리도록 하였다.

 

牛自以爲郎臣 乃檻送 而査之

<우공>은 <위화>랑의 신하로서 우리에 실려 보내서 조사를 받았다.

 

執網 當鞠牛呼曰 執兄 救我

<집망>을 마땅히 국우(鞠牛)라고 부르며 말하기를  “ <집망> 형이 나를 구해주시오.”

 

網少時 貧寒 多爲人助 故疑其爲舊恩 而命守仙宮適値

<집망>은 어린 시절에 가난하여 많은 사람의 도음을 받았으므로

의심스러웠으나 옛 은혜에 보답하여 선궁(仙宮)을 지키도록 적당히 조치하였다.

 

后與郎 浴于神池

후와 <위화>랑이 신지(神池)에서 목욕을 하였다.

 

私語何以報天

사사로이 부탁하며 말하기를 " 어찌하면 하늘에 보답합니까?"

 

郎曰 活命報天

<위화>랑이 말하기를  “ 목숨을 연명하는 것이 하늘에 보답하는 것이다.”

 

 乃披蛙衣 跳舞 於前 而歌曰

我母我父相抱兮

欲報天 而活我后

以爲助興拜 爲衛幢朱隻

이에 개구리 옷을 입고 <위화>랑 앞에서 뛰며 춤추며 노래하기를

“ 나의 어머니와 나의 아버지가 서로 포옹하네.”

하늘에 보답코자 나와 후는 목숨을 연명하네.

흥을 돋우고자 절을 하며 군기(幢)를 지키는 붉은 새 한 마리가 되었네.“

 

乃以其婢許爲妻以 苩眞所生子息 爲嗣 息後爲抑(?)眞宮 家臣 盡忠

이에 그 침비를 처로 허락하고 <백진>이 낳은 아들 <우식牛息>을 적자로 하니

<우식牛息>은 훗 날 <유진柳眞>궁의 가신(家臣)이 되어 충성을 다하였다.

 

宮曰 此吾良狗也

<유진>궁이 말하기를  “ 이 사람은 나의 좋은 개이다.”

 

后每以夏月 納凉 于池畔 使牛夫妻 作蛙舞 雌雄和鳴相合

후는 여름마다 못 가에서 피서를 하며 <우공> 부부에게 개구리 춤을 추게 하니

암컷과 수컷이 화답하며 우는 것이 서로 잘 맞았다.

 

后笑賞之 呼 牛 以蛙牛呼

후가 웃으며 상을 줄려고 부르니 <우공>은 개구리가 되어 소를 불렀다.

 

牛妻曰 雌蛙 或與郎 共 枕 而觀 其舞 於帳外 以爲引春戱

<우공>의 처가 말하기를

“ 암 개구리가 혹 <위화>랑과 같이 베개를 베고 바라보면 휘장 밖의 그 춤은 봄놀이가 됩니다.”

 

后問於郎曰 牛以何物化生乎

후가 <위화>랑에게 물으며 말하기를  “ <우공>은 무슨 생물이 화생(化生)한 것입니까?”

 

郎曰 長門公主 篤 於葛川宮 樹王

時 牛父 以廟奴 亦以子 夜 詣 樹王

一夜 公主 命婢 獻衣于樹王

牛父通之 而生牛 乃樹上 靑蛙 慕公主之美 而死化者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 <장문長門> 공주는 갈천궁 수왕(樹王)에게 돈독하였습니다.

당시 <우공>의 아버지는 종묘의 노비인데 수왕의 아들로 밤에 수왕에게 나아갔습니다.

하루는 밤에 공주가 수왕에게 옷을 바치라고 노비에게 명하였습니다.

<우공>의 아버지가 공주와 통정하여 <우공>을 낳았습니다.

이는 나무 위의 청개구리가 공주의 아름다움을 사모하다 죽어 화생한 것입니다.

 

질지(순명) - 장문(451-513)

 

<장문長門>공주는 금관가야 8대왕 질지(428-491)의 딸이다.

 

后乃密問()公主 則果然也

이에 후가 은밀히 공주에게 물으니 과연 그러하였다.

 

公主 事慈悲 毗處 兩朝 生王子 王女 多孫曾 而密 與牛通 故朱隻惡 而逐之

공주는 <자비慈悲>와 <비처毗處> 두 임금을 섬겨 왕자와 왕녀를 낳아 손자가 많았으나

은밀히 <우공>과 통정하니 붉은 새 한 마리는 악이라 하여 쫓아내었다.

 

주척(朱隻)은 <우공>을 말한다.

 

至是 以后 寵與 公主 偕處 如夫婦 而朱隻 不能禁 後人歌之

지금에 이르러 후가 공주로서 총애하여 함께 부부로 대우하였으나

붉은 새 한 마리는 금할 수가 없으니 후세 사람들이 이를 노래하였다.

 

蛙兮 蛙兮 靑蛙兮 長門宮中 靑蛙兮

葛川宮 樹子 夜情 六十春光 尙未衰

개구리야!  개구리야!  청개구리야!  장문궁의 청개구리야!

갈천궁 수자(樹子)의 밤의 정(情) 육십 봄빛이 아직도 쇠하지 않았네.

 

 

54.  번성(繁盛)하는 선원(仙院)

 

芬宗妹 厚惠 有先約 于郎 而后欲 改嫁 于外

분종의 여동생 <후혜厚惠>는 <위화>랑과 먼저 한 약속이 있어 후가 외부로 개가(改嫁)토록 하였다.

 

비처(후황) - 후혜(497-532)

 

惠不肯 願爲枕婢 以盡忠

<후혜>는 수긍하지 않으며 <위화>랑의 침비가 되기를 원하여 충성을 다하였다.

 

至是 后許行吉 于伊同宮 再吉 于海宮 爲正妻 居 玉蘭 髮長之上

지금에 이르러 후가 이동궁에서 길례를 치르고 해궁에서 재차 길례를 치러 정처로 허락하여

<옥란>과 <발장>의 상전으로 거주토록 하였다.

 

后自稱 仙妻 居三妻之上 以配 四時 五行 於是 皆得其主

후는 스스로 선처(仙妻)라 칭하며 세 처의 상전으로 거주하며

네 계절과 오행에 맞추어 배치하니 이로써 모두 그 주인을 득하였다.

 

厚惠 居 別洞 玉蘭 居 剡 髮長 居 勝光 乃舊仙院()

<후혜>는 별동에 거주하고 <옥란>은 염원에 거주하고 <발장>은 승광에 거주하니 구선원(舊仙院)이다.

 

后無主院 隨處三院 及天宮 海宮 所 御婢子 皆用仙院 淨女 故淨籍 逐 年增加

후는 주원(主院)이 없이 삼원(三院)과 천궁, 해궁에 거처하는 곳에 따르니

어비자(御婢子)들 모두가 선원을 사용하는 정녀(淨女)가 되어 마침내 정적(淨籍)이 해마다 증가하였다.

 

至是 淨瓊 兩林 總數 無慮 三千 乃設品級 部屬 以整其序

지금에 이르러 정림(淨林)과 경림(瓊林)의 총 인원이 무려 3천 명이 되니 그 서열을 정리하여 소속 부서에 품계를 두었다.

 

兩林 以帝及太子 幷郎 爲三君一體呼 郎以仙君 陛下者 漸多

양림(兩林)은 帝와 태자를 <위화>랑과 나란히 하여 삼군일체(三君一體)라고 부르며

<위화>랑을 선군(仙君) 폐하(陛下)라고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上仙 仁陽 謂 后兄伊欣及畏山曰

魏花 以人臣得聖后 嬖寵 權 傾人主 此不祥也

昔 黑齒 稱 鷄帝 而敗物滿 則傾 兩林女子 呼 郎 以陛下者何也

君等 各 居 其親 不得 不戒

상선(上仙) <인양仁陽>이 후의 오빠 <이흔伊欣>과 <외산畏山>에게 일러 말하기를

“ <위화>는 신하로서 성후(聖后)에게 패총(嬖寵)을 받아 권세가 군주와 같으니 이는 상스럽지 못하다.

옛날 <흑치>가 계제(鷄帝)라 칭하여 패물(敗物)이 가득하더니

양림(兩林)의 여자들이 어찌하여 <위화>랑을 폐하와 같다고 하는가?

군(君) 들은 각기 그 친척으로 살며 얻지 못하고 경계하지 않고 있다.“

 

호연(새황) - 인양(450-512)

등흔(모량) - 이흔(461-526)

                    연제(463-525)

산근(외황) - 외산(459-521)

 

伊欣乃奏於后

이에 <이흔>이 후에게 아뢰었다.

 

后曰 郎乃我夫也 與我共枕 而臥 婢子 安敢不呼 以陛下乎 兄勿過慮

후가 말하기를

“ <위화>랑은 나의 지아비로 나와 함께 같이 베개를 베고 누워도

비자(婢子)도 감히 폐하로 부르지 못하니 오빠는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伊欣曰 陛下爲臣之妹 而不失 君臣之義 况 陛下之嬖妾乎

<이흔>이 말하기를

“ 폐하는 신의 여동생입니다.

잃지 않고자 하는 것이 군신(君臣)의 의(義)인데 하물며 어찌 폐하의 패첩(嬖妾)입니까?“

 

后不悅曰 兄 雖 尊而外人 郎 雖 卑而 朕體 何足 同論乎

自郎潤我體 鴻神休 血氣向 少大有恩 於朕躬 朕不可一日 無郎

帝不可一日 無朕 朕之恩人 郎帝之恩人也

帝許朕以郎爲夫者此也

帝與郎與朕一體 如天之日月 地之山川 兄何敢指爲嬖妾乎

上仙 仁陽 不識 眞元妙理 而妄生 邪念 離間 三聖 豈可謂 柱石之臣乎

兄 可面責 其非 罷 其執迷

후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 오빠가 비록 존귀하나 외인(外人)이고 <위화>랑이 비록 비천하나 짐의 몸인데 어찌 발(足)이 같다고 말하십니까?“

<위화>랑이 내 몸을 적시고부터 짐의 몸에 홍신(鴻神)이 쉬고 혈기가 나아가니

작고 큰 은혜가 있어 짐은 하루도 <위화>랑 없이 살 수 없고

帝는 하루도 짐 없이 살 수 없으니 <위화>랑은 帝의 은인입니다.

帝가 짐이 <위화>랑을 지아비로 허락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帝와 <위화>랑과 짐은 하늘의 해와 달, 땅의 산천과 같이 한 몸인데  오빠는 어찌 감히 패첩(嬖妾)으로 지적하십니까?

상선 <인양>은 진원(眞元)의 신묘한 이치를 알지 못하여 삶을 망각하여 사념(邪念)으로 삼성(三聖)을 이간질하니

어찌 가히 기둥이 되는 신하라 하겠습니까?

오빠는 그 잘못을 마주 대하여 꾸짖고 그 잘못을 고집하는 것을 그만 두게 하십시오.“

 

伊欣 知不可 諫 退 謂畏山曰

吾 無諫后之智 君有戒郞之力乎

<이흔>이 간(諫)하는 것이 불가함을 알고 물러나 <외산>에게 말하기를

“ 나는 후의 지혜에 직간이 안 되니 군이 <위화>랑의 힘을 경계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畏山笑曰 上仙之憂 只 一杞國之憂也

吾以郎貴君 以后貴 帝與太子 皆天縱之聖 而愛郎

至此 郎 固聖矣 我等 復何言乎

吾妻 君妻 視吾輩 如小兒 而事郎 如天子 皆願獻身

吾聞 君妻 洗郎 于神池 郎撫 君妻曰 汝陰 如桃生文

君妻 感恩 伏地曰 陛下 愛妾 如此 雖 死難忘

后知 郎心 使抱 君妻 而濡之

自是 君妻 奉郎 如天君 若責郎 君妻 必唾君矣

夫婦 尙 如此 况 兄妹乎

<외산>이 웃으며 말하기를

“ 상선의 근심은 단지 하나의 쓸데없는 나라의 근심입니다.

우리가 <위화>랑을 군으로 귀하게 여기면 후가 귀하게 되고

帝와 태자 모두가 하늘을 따르는 성인(聖人)으로 <위화>랑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 <위화>랑은 확고한 성인이니 우리들이 어찌 다시 말을 하겠습니까?

내 처와 군(君)의 처는 우리 무리들을 소아(小兒)로 보며  <위화>랑을 천자(天子)로 섬겨 모두 몸을 바치기를 원합니다.

내가 듣기로 군(君)의 처가 신지(神池)에서 <위화>랑을 씻으니  <위화>랑이 군(君)의 처를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 당신의 음(陰)은 복사꽃이 핀 문양이다.’라고 하니 군의 처가 은혜에 감격하여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 폐하의 애첩이 이와 같으니 비록 죽어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후가 <위화>랑의 마음을 알고 군의 처를 안고 적시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로부터 군의 처는 <위화>랑을 천군(天君)과 같이 받드니

만약 <위화>랑을 책망하면 군의 처는 반드시 군에게 침을 뱉을 것입니다.

부부가 이와 같이 숭상하는데 하물며 어찌 당신의 여동생을 말합니까?

 

伊欣乃歸詰其妻 俊明曰 仙帝之寵 比帝寵 尤貴 汝小兒 何知 而論我乎

이에 <이흔>이 돌아가 그 처를 힐문하니 <준명俊明>이 말하기를

“ 선제(仙帝)의 총애이고 비제(比帝)의 총애로 더욱 유달리 뛰어난 귀인이다.

당신은 소아(小兒)인데 어찌 나를 말하는가?

 

선제(仙帝)는 <지도로> 지증왕을 비제(比帝)는 후 <연제>를 말한다.

 

자비(파호) - 비처(436-500) 21대 소지왕 (재위 479-499)

                    준명(462?-522)

 

批欣之頰 而笑

뺨을 때리니 기쁘게 받아들이며 웃었다.

 

伊欣 啞然自失 良久曰 天乎 人乎 吾不知 其可也

<이흔>은  넋이 나가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 하늘인가? 사람인가? 나는 그 옳음을 모르겠구나.”

 

自是 遂 緘口 不言 郎事后 乃自以 坤道事

이로부터 지금까지 <위화>랑이 후를 섬기는 것을  곤도(坤道)의 일이라 하여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다.

 

郎曰 我天陛下 起臥 必扶之 飮食必嘗之

<위화>랑이 말하기를

“ 나의 하늘인 폐하가 일어나고 누우면 반드시 부축하고 음식은 반드시 이를 먼저 맛보아야 한다.”

 

大營玉帳 仙宮 於別洞 飾 以金玉七寶 極盡其美

금과 옥과 칠보로 장식하여 그 아름다움이 지극한 별동선원 선궁(仙宮)에 크게 옥으로 장식한 휘장을 설치하였다.

 

后與郎居之 歌舞 不撤 仙臣皆 以珠履 上殿 食 以膏梁

故皆肥腴華麗 而骨門 舊家 有 不能 自食者

후와 <위화>랑이 그 곳에 거주하며 밤낮으로 가무를 즐기고

선원의 신하들 모두가 구슬달린 신을 신고 전각을 걷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모두가 살이 찌고 화려하여 골문의 옛 집안에는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는 자가 없었다.

 

時人嘲之曰

仙臣之狗 不食 公卿之食

仙門之左右 有牛馬 庄畜 神牛神馬

仙臣本 不畜妻爲貴

至是 皆有妻子 散居

당시 사람들이 이를 조롱하여 말하기를

“ 선원의 신하 집의 개는 고관 집의 음식을 먹지 않네.

선원 문의 좌우에 있는 소와 말은 장원에서 기른 신우(神牛)와 신마(神馬)이네.

선원의 신하는 본래 처(妻)를 기르지 않으니 귀하게 되었는데

지금에 이르러 모두 처자가 있으나 흩어져 살았네.“ 라고 하였다.

 

牛馬 庄 民間之有逃避者 一入其庄 則理方不能追之 故兩庄漸殖

소와 말을 기르는 장원에 민간인 중에서 도피한 자 한 명이 그 장원에 들어온 즉

이방(理方)에서는 이를 쫓지 않으니 두 선원의 장원이 점점 늘어났다.

 

如閭示 三院庄屬 以千計

마을에 세운 안내문에 보이듯이 세 선원에 속하는 장원이 천 곳이 되었다.

 

息臣 乃置羊庄 于城東 而自居之 八海之屬 多從之命

이에 <식신息臣>이 성동(城東)에 양장(羊庄: 양을 키우는 장원)을 설치하여

스스로 거주하니 <팔해八海>에 소속되어 많은 사람이 <팔해>의 명을 따랐다.

 

猪牛羊三氏 養庄卒 以需院用

저(猪), 우(牛), 양(羊) 세 성씨는 장원을 키우고 나와서 장원의 이름을 사용한 성씨이다.

 

黑泥 牛公等 皆以庄卒 拔身 致家

<흑니黑泥> <우공牛公> 등도 모두 장원 출신으로 도망쳐 나와 가정을 이루었다.

 

天下之右 仙徒者日

熾尊賢 尙義 輕財 好色之風 大行

온 세상이 이를 숭상하여 선도(仙徒)를 말하기를

“ 존귀하고 현명함이 불타오르고 의(義)를 숭상하여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호색하는 풍속을 크게 유행시킨 자다.“ 라고 하였다.

 

仙徒 乃上 太上老帝之號 于帝 曰

肇始以來 未有 如今日之盛

이에 선도들이 帝에게 태상노제(太上老帝)라는 호칭을 올리며 말하기를

“ 나라를 건국한 이래 오늘같이 선도(仙道)가 번성한 날이 없습니다.”

 

進金玉壽器 于帝及后郎 是爲三聖宝也

금과 옥으로 만든 수기(壽器)를 제와 후와 <위화>랑에게 진상하니 이를 삼성보(三聖宝)라 한다.

 

수기(壽器) : 살아 있을 때 미리 만들어 두는 관

 

仙臣亥牟造之 刻以龍獜(?)鳳紋 精巧逼眞

선원의 신하 <해모亥牟>가 용과 기린과 봉황의 문양을 정교하게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새겨 만들었다.

 

后又命亥牟 率其徒 入金官 習磁 貝之術 而歸 分置各院 而傳授之

후는 또 <해모>에게 명하여 선도들을 인솔하여 금관가야에 들어가

사기그릇을 만드는 기술을 보고 배워 돌아오게 하여 각 원에 나누어 설치하여 이를 전수케 하였다.

 

磁는 瓷(사기 그릇 ‘자’)의 俗字

 

時車宿公 嗣子 尹生 居 芼兮 奉 白楡 樹王 致財 鉅萬 四方 來拜者 不絶

당시 <거숙車宿>공의 적자 <윤생尹生>이 모혜(芼兮)에 거주하며

흰 느릅나무 수왕을 받들어 많은 재산을 모으니 사방에서 절을 하러 오는 자가 끊이질 않았다.

 

거숙(윤기) - 윤생(464-540)

                    거생

 

尹生 摩只 得寵 於太子 爲太子 置花林精舍

<윤생>과 <마지摩只>는 태자의 총애를 득하여  태자를 위하여 화림정사(花林精舍)를 세웠다.

 

<마지摩只>는 백제 동성왕 <모대>의 딸로서  <윤생>의 처이다.

 

時迎 而享之 歲獻五穀 于仙院

당시 태자를 맞이하여 향(享)을 올리며 세비로 선원에 오곡을 바쳤다.

 

尹生之妹 車生 居 一善 亦以畜牸 致財 歲獻 牛馬 于仙院

<윤생>의 여동생 <거생車生>은 일선(一善)에 거주하였는데

암소를 길러 재산을 모아 세비로 선원에 소와 말을 바쳤다.

 

后與郎 亦出遊 其精舍 或留數日

후와 <위화>랑 역시 그 화림정사에서 유람하고 혹은 수일간 머물렀다.

 

尹生乃請立楡院 于花林 后許之

<윤생>이 화림정사에 유원(楡院)을 세우고자 하니 후가 이를 허락하였다.

 

以摩只爲院主 摩只 遂 與郎合 生女 宝花 世爲 楡院之主人

<마지>를 유원주(楡院主)로 삼으니 마침내 <위화>랑과 하나가 되어

딸 <보화宝花>를 낳아 대를 이어 유원(楡院)의 주인이 되었다.

 

皆以楡院 爲財 天供之 連絡 于路院 財甚富

모두가 유원(楡院)에 재물을 하늘에 바쳐 로원(路院)과 연락하니 재물이 매우 풍족하였다.

 

仙臣 爲其翁 苩眞 請 以牛公 爲其翁 入 其財 于柳眞宮 后許之

선원의 신하들이 <우공牛公>을 선옹으로 삼기를 <백진苩眞>에게 청하여

그 재물을 <유진柳眞>궁에 들이도록 하니 후가 이를 허락하였다.

 

摩只 欲 媚于后及郎 付 私田 穀歲增 其入

<마지>는 후와 <위화>랑에게 아첨코자 하여 사전(私田)을 넘기어 주니 해마다 곡식이 늘어났다.

 

后嘉 其忠 以摩只 爲柳眞宮 假母 以宝花 爲柳眞宮 膢妹 賞賜 甚重

후가 그 충성에 기뻐하며 <마지>를 <유진>궁 가모(假母)로

<보화>를 <유진>궁 루매(膢妹)로 하고 상을 거듭하여 내렸다.

 

時后生女杵眞宮 與宝花同年

때에 후가 딸 <저진杵眞>궁을 낳았는데 <보화宝花>와 나이가 같았다.

 

위화(연제) - 유진(511- )

모진(연제) - 저진(514-531)

위화(마지) - 보화(514- )

 

<저진>은 태자 <모진>과 어머니 <연제>가 蒸하여 낳은 딸이다.

 

摩只 勸車生 立杵院 于一善 入 其財 于杵眞宮

<마지>가 <거생>에게 권하여 일선(一善)에 저원(杵院)을 세우니 그 재물이 <저진>궁에 들어 왔다.

 

后 於柳杵 鍾 其愛 各置宮宅 奴婢 備 其所用無 不具盡

후는 <유진>궁과 <저진>궁을 사랑하여 각 궁 집에 쇠 종(鍾)을 설치하니

노비들이 준비하는 것은 소용이 없었고 다 갖추지 못하였다.

 

 

55. 선원(仙院)의 조직과 구성

 

靑馬七月 智帝 崩 於凉宮

514년 7월 지증제가 양궁(凉宮)에서 붕(崩)하였다.

 

514년은 갑오(甲午)년 청마(靑馬)의 해이다.

 

法帝 卽位 奉后 爲太后 行妙王 仙后事仙政盡 歸之

법흥제가 즉위하여 후를 태후로 받들고 묘왕(妙王)에게 행차하였다.

선후(仙后)가 선정(仙政)을 정성을 다하여 베푸니 돌아왔다.

 

묘왕(妙王)은 선후(仙后) 태후 <연제>로 곤천대제 법흥묘왕이다.

 

乃置 仙臣 十二級 一如 骨品設三十六 仙院於國中 置仙院令 治之

이에 선원의 신하 12등급을 골품 36등급을 설치하여 똑같이 하여

나라 안의 선원에 선원령(仙院令)을 시행하여 다스렸다.

 

后命平立宮 設三位宝座 以郎居其右 如三聖殿同 其規

후는 평립궁(平立宮)에 명하여 세 번째 보좌(宝座)를 설치하여

<위화>랑을 그 오른쪽에 앉게 하고 그 규모를 삼성전(三聖殿)과 같이하라고 하였다.

 

※ 종묘(宗廟)

 

홍현궁(弘峴宮) : <보해(390-441)>를 모시는 종묘

갈천궁(葛川宮) : <자비(414-479)>를 모시는 종묘

선평궁(善坪宮) : <습보(420-485)>를 모시는 종묘

이동궁(伊同宮) : <비처(436-500)>를 모시는 종묘

평립궁(平立宮) : <지도로(437-514)>를 모시는 종묘

 

好知 以其非祖宗之法 諫 于帝

<호지好知>가 帝에게 조종(祖宗)의 법이 아니라고 간(諫)하였다.

 

帝欲悅后 而任 其所爲

帝는 후를 기쁘게 하고자 그대로 두었다.

 

乃樹三株 樹王 立 其殿 飾 以金玉 朱門 翠尾 莊嚴燦爛

이에 세 그루의 나무를 수왕(樹王)으로 하여

금과 옥으로 장식한 붉은 문과 그루터기를 비취로 장식한 장엄하고 찬란한 수왕전(樹王殿)을 세웠다.

 

평립궁에 세운 수왕전을 말한다.

 

以羊秀爲翁 命花人狗臣 治花田栽 以琪瑤芬芳 以悅四時之目 引水其間曲曲爲池

以養魚鳥 完然若仙界 骨女之詣謁者不絶

<양수羊秀>를 수왕전옹(樹王殿翁)으로 하여

꽃을 다루는 사람과 구도(狗徒)의 신하에게 명하여 꽃밭에 꽃을 심도록 하니

진기한 꽃의 향기가 가득하여 사시사철 눈을 즐겁게 하고

그 사이로 물을 끌어들이니 굽이굽이 못을 이루고 고기와 새를 기르니 마치 신선의 세계와 같아

골녀(骨女)들이 와서 보는 것이 끊이질 않았다.

 

后與郎 抱臥于樹王殿 晝寢 夢 見美人 紫衣 紺裳 兎首 而進自言 臣是五兎神君

願護陛下夫妻 乃以五株宝花進之 其花各發 一旬 循環不盡

후와 <위화>랑이 수왕전(樹王殿)에서 안고 누워 낮잠을 자는데

꿈에 미인(美人)이 자주색 저고리에 짙은 푸른색 치마를 입고 토끼 머리를 하고 다가오며 스스로 말하기를

“ 신(臣)은 다섯 마리 토끼의 신군(神君)입니다.

폐하 부부를 보호하기를 원하오니 다섯 송이의 붉은 꽃을 주시면 그 꽃이 각각 10일 만에 피어 끝없이 돌고 돌 것입니다.

 

后奇其夢語于郎曰 此何兆乎

후가 그 꿈속의 말이 기이하여 <위화>랑에게 말하기를

“ 이것은 무슨 조짐입니까?”

 

郎曰 元始 弩理 卯王 旬間 吾爲陽兎 汝爲陰兎生 于五卯神山

宝椧樹下 食其花 而生五子女 其花有五色 各發十二日 

而不盡 以養 吾子孫 今 此 樹王 乃古椧神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 만물의 근원은 노리(弩理)이고 묘왕(卯王)은 순간(旬間)입니다.

나는 오묘신산(五卯神山)에서 태어난 양토(陽兎)이고 당신은 음토(陰兎)입니다.

나무 아래에 있는 보물 홈통(椧)이 그 꽃을 먹어 다섯 자녀를 낳으니

그 꽃은 다섯 가지 색으로 각각 12일간 피어 다함이 없이 우리 자손을 키웁니다.

지금 이 수왕이 바로 옛날의 홈통신(椧神)입니다.“

 

위화는 487년 정묘년(火兎)에 태어났고 연제는 463년 계묘년(黑兎)에 태어났다.

보리(宝理)는 太極, 노리(弩理)는 八卦, 순간(旬間)은 五行을 말한다.

다섯가지 색은 五行의 색인 青,赤,白,黑,黄을 말한다.

 

后乃大覺完然 如見旬間 

이에 후는 순간(旬間:五行)을 보는 것처럼 완연히 깨달았다.

 

時乃以樹王殿 爲椧神祠 故仙徒 稱以椧洞仙院

이에 당시 수왕전(樹王殿)을 명신사(椧神祠)라 한 까닭에 선도들은 명동선원(椧洞仙院)이라고 칭하였다.

 

羊秀 息仁等 與沙忠 薛布等 請用五卯神曆 許之捀

<양수羊秀>, <식인息仁> 등이 <사충沙忠>, <설포薛布> 등과 함께

오묘신력(五卯神曆)을 사용토록 청하니 이를 받들도록 허락하였다.

 

仙童之美 爲五卯 旬將 戒名者 五人

선동(仙童)중에서 아름다운 자가 오묘(五卯)가 되는데 계명(戒名)자 5명이다.

 

直日者 五人 緋衣 綠袴 戒名者 黃綠 高一品

직일(直日)자 5명은 붉은 저고리와 녹색 바지를 입고

계명(戒名)자는 노란 저고리에 녹색바지를 입은 높은 일품(一品)이다.

 

月將 十二人 皆用五品 奾子

월장(月將) 12명은 모두 오품으로 선자(奾子)이다.

 

日將 二十四人 使者

일장(日將) 24명은 사자(使者)이다.

 

六十人 奉上仙 値其年者 爲太歲大將軍 以其妻 爲歲合大母

60명이 상선(上仙)을 받드는데 그 나이가 많은 자가 대장군(大將軍)이 되고

그 처는 나이를 맞추어 대모(大母)가 된다.

 

日將 使者 皆用淨林 以備充年之用仙徒

일장(日將) 사자(使者)는 모두 정림(淨林)을 사용하여 해마다 선도(仙徒)를 준비하고 충당하였다.

 

以旬將爲登龍之門 爭其科者

순장(旬將)은 등용문이 되니 시험을 경쟁하는 자들이다.

 

학당(鶴堂)에 들어와 시험에 합격한 자가 순장(旬將)이다.

 

飾其族之美者 窮其奢侈 爲之傾 其産掌 其銓者 謂之 駕鶴

그 가족을 아름답게 꾸미고 사치가 극에 달하여 생산하여 가진 것이 기우니

시험을 보려는 자를 일러 가학(駕鶴)이라 하였다.

 

一經駕鶴卒 然成富 盖受重賂也

일단 가학(駕鶴)을 마치면 자연히 부를 이루니 어찌 중한 뇌물을 받지 않겠는가?

 

每以六月 十二月 考其試 先 期定鶴

매 6월과 12월에 시험을 치기 전에 학당(鶴堂)을 정해야 한다.

 

故爭科者 皆就鶴堂納門 禮行 師弟之儀

그러므로 시험에 경쟁하는 자는 모두 학당(鶴堂)에 나아가 학당 문에 들어가서 사제(師弟)의 예를 행하여야 한다.

 

其禮不一 牛馬金帛盡 其所有 而納之 故仙臣 以駕鶴 爲致貨之職 亦爭其職

그 예가 서로 어긋나면 소와 말과 금과 비단을 바쳐서 가지게 되니

선원의 신하들은 가학(駕鶴)으로 돈을 모으는 직책이 되니 그 직책을 다투었다.

 

가학(駕鶴)은 학당(鶴堂)에 들어가려고 하는 자를 말한다.

 

后命 駃兒 薛布 執網 唐奴 曹義 比食 黃馬 角治 息仁 爲東堂 呼以靑鶴

후가 명하여 <결아駃兒>, <설포薛布>, <집망執網>, <당노唐奴>,

<조의曹義>,<비식比食>, <황마黃馬>, <각치角治>, <식인息仁>을

동당(東堂)이라 하여 청학(靑鶴)이라고 부르고

 

沙忠 亥牟 牛衣 翟芝 羊秀 神龍 牛公 雨神 柯枝 爲西堂 呼以白鶴

<사충沙忠>, <해모亥牟>, <우의牛衣>, <적지翟芝>, <양수羊秀 >,

<신룡神龍>, <우공牛公>, <우신雨神>, <가지柯枝>를

서당(西堂)이라 하여 백학(白鶴)으로 부르게 하였다.

 

청학(靑鶴) 9명, 백학(白鶴) 9명이다.

 

仙童 年十五六 始入鶴堂曰 登壇 凡欲登壇 宜得靑白之援引 呼以靑父 白父

선동(仙童)이 나이 15,6세로 처음으로 학당에 들어오면 등단(登壇)이라 하였다.

무릇 등단이 되고자 하면 마땅히 청학(靑鶴)과 백학(白鶴)의 추천을 받아야 하니 청부(靑父), 백부(白父)라 불렀다.

 

十七八 乃入銓考曰 上堂 初授 旬將者曰 直日 再授者曰 戒名

17,8세에 시험을 쳐서 들어오면 상당(上堂)이라 하고

처음 수업을 받는 순장(旬將)자를 직일(直日)이라 하고 재차 수업을 받는 자를 계명(戒名)이라 한다.

 

十九而止二十 而始列 于仙臣之序次 受品位登壇 而未得上堂者曰下堂

以才藝進之曰別堂 亦序臣列 以功力進之曰功堂 特寵加之曰寵堂

19세에서 20세까지 선도의 신하의 품계에 서열이 시작되는데

등단(登壇)의 품계를 받고 상당(上堂)이 되지 못한 자를 하당(下堂)이라고 하는데

재주와 예능에 있으면 별당(別堂)이라 부르니 이 역시 신하의 서열이다.

공을 세우면 공당(功堂)이라 부르고 특별히 총애를 받은 자를 총당(寵堂)이라고 한다.

 

下堂之爲 州郡 仙臣者()外堂

하당(下堂)으로 주군(州郡)의 선원의 신하가 된 자를 외당(外堂)이라 한다.

 

上別功寵 外 謂之 五堂學士下堂曰 壇士

왕이 특별히 공을 총애하는 자 외에 오당학사(五堂學士)를 하당(下堂)에서 단사(壇士)라 한다.

 

未及登壇曰 仙徒

등단(登壇)하지 못한 자를 선도(仙徒)라 한다.

 

선도(仙徒)는 선동(仙童) 중에서 학당에 들어가지 못한 자를 말한다.

 

未及擇童曰花衆

선동(仙童)으로 선택되지 못한 자를 화중(花衆)이라 한다.

 

八九歲而入童子番者曰擇童

8,9세에 선원에 들어와 선동이 되기를 순번을 기다리는 자를 택동(擇童)이라고 한다.

 

每以三四月 分遣採童使于國內 各院擇之州郡選 其美者納于屬院 而備其採

해마다 3,4월에 선동(仙童)을 채용하려고 나라 안에 나누어 파견하니

각 선원은 이를 주군(州郡)에서 선발하여 아름다운 자를 소속 선원에 들여보내 그 채용에 대비하였다.

 

擇得其擇一 鄕祭之曰 吉祥

그 중에서 한 명이 선택을 받으면 마을에서 제(祭)를 올렸는데 이를 길상(吉祥)이라 한다.

 

以花飾笠 而擧戴 其童 而歌舞 爲例

그 선동(仙童)은 꽃으로 장식한 삿갓을 쓰고 수레에 올라 가무를 하는 것이 예가 되었다.

 

凡有美童一響 養之 童母 爲遊花

무릇 아름다운 선동(仙童)이 있다는 명성이 있으면 이를 키우니 선동(仙童)의 어머니는 유화(遊花)가 된다.

 

故國人 重美色 雖富豪之家 見行旅之美者 不問其骨品 而喜迎 而寬待之

使其妻女通之 得美種曰 轉元

그러므로 나라 사람들이 미색을 중히 여겨 부자 집에서는 비록 행여자(行旅者)라도

아름다운 자를 보면 골품을 묻지 않고 기꺼이 맞이하여 관대히 대우하고

그 처와 딸로 하여금 통정하게 하여 아름다운 씨를 얻으니 이를 전원(轉元)이라 한다.

 

苟有美風采 善歌舞 言辭者 遍行國中 不行一步 綺羅膏梁 而歸名曰遊春

구차하여도 아름다운 풍채가 있고 가무를 잘하고 말을 잘하는 자는

나라 안을 두루 다닐 때 한 발짝도 걷지 않아도

기라성 같이 쌓인 고량진미를 잘 먹고 돌아오니 이를 유춘(遊春 : 봄나들이)이라 한다.

 

時人歌之曰 願逢遊春郎 得接仙花 種 當春花

당시 사람들이 이를 노래하여 말하기를

“ 봄나들이 낭군을 만나기를 원하여 선화(仙花)와 교접하여 씨를 받은 봄꽃이다.” 라고 하였다.

 

時家家飾其妻女出遊 於途花樹 擁途 而發爛熳 如雪散在花下

당시 집집마다 그 처와 딸이 예쁘게 꾸며 꽃이 활짝 핀 꽃나무 길에서 놀고 거느리니

마치 꽃나무 아래 눈이 날리는 것 같았다.

 

開葚携䒰 陳列酒食 而待遊春郎 得其所歡 則縱情 歌舞

或野合 而不歸 雖至旬月 而不問其風

오디가 우거지게 열리니 술과 음식을 진열하여

봄나들이 낭군을 기다려 그 즐거움을 얻어 가무를 실컷 즐기고

때로는 야합(野合)하여 비록 열흘이나 한 달 동안 돌아오지 않아도 그 풍속을 묻지 않았다.

 

淳美 不相 盜詐暴力 故理方 皆得其情 農工 不以其時 遊連

순박함과 아름다움은 도적과 사기와 폭력과는 서로 상관이 없으나

이방(理方)에서 그 정(情)을 받은 농업과 공업에 종사하는 모두가 연이어 노는 것은 그 때가 아니라고 하였다.

 

故家戶皆 全其業咸 頌妙王之德 山無盜賊 野無拾遺

그런 연유로 모든 가구가 그 생산을 다하고 묘왕(妙王)의 덕을 암송하니

산에는 도적이 없고 들에는 잃어버린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이 없었다.

 

比尾連屋 皆食米穀 夜不關門 途無行乞人

꼬리를 이은 집이 즐비하고 모두가 쌀밥을 먹으니 밤에도 대문을 닫지 않고 길에는 걸인이 없었다.

 

口蕃殖 逐 年增 戶疾病 不行 人無

마침내 호구가 크게 늘어나 해마다 가정에 질병이 늘어나니 길에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醜惡 殘弱 雖 少兒老婦 皆有春心 夏顔無

비록 추악하고 잔약(殘弱) 무력한 어린아이와 늙은 부녀자는 모두 춘심(春心)만 있고 얼굴에는 열정이 없었다.

 

有欠氣 口誦 妙王眞后理 陰調陽福

我萬民神運開通 國力日盛 如出一口 無有腹誹

모자라고 부족한 기(氣)로 단지 입으로 묘왕(妙王) 진후(眞后)의 이치인

음(陰)의 조화와 양(陽)의 복(福)을 외우며

우리 만백성은 신운(神運)이 열려 한 입에서 나오듯이 국력이 날로 번성하니 마음속으로 꾸짖지 말라 하였다.

 

後來 帝文郞 作遊春曲 贊其盛事

훗날 <제문>랑이 유춘곡(遊春曲)을 지어 그 일이 이루어졌음을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