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북부여 건국 전 하북성 동북방의 정세
북부여에 대한 사료가 빈약하여 <범장>의 북부여기, <박창화>의 모수제기와
중국의 사서를 중심으로 북부여와 주변의 역사를 대략적으로 살펴보자.
BC 334 <소진>의 합종책
연나라의 동쪽에는 조선(朝鮮), 요동(遼東)이 있고,.........
이때 燕의 강역은 산서성 영구(靈丘)인근의 사방 2천여리이다<그림 1-2 참조>
<소진>이 말한 동쪽의 조선은 번조선을 말한다.
BC 316- BC 312 <자지子之>의 전횡과 번조선의 보정 전역 차지
子之(자지) : 전국시대 연나라의 권신(權臣). 희성(姬姓).
연왕(燕王) <쾌噲>의 재상이 되었는데 권력을 장악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연왕 <쾌>가 <소대蘇代>와 <녹모수鹿毛壽>의 말만 듣고 그에게 왕위를 양위했다.
<자지>가 왕위에 오른 일은 연나라 지배층의 불만을 샀고,
<자지子之>는 병권(兵權)을 장악하고 신진 세력을 대거 등용하며 귀족들의 반발을 억누르려 했지만,
기원전 314년 <쾌噲>의 태자(太子)인 <희평姬平>과 귀족들이 연합해 반란을 일으켰다.
<자지子之>는 반란을 진압했지만, 연(燕)의 국력은 크게 쇠퇴하였다.
(齊)나라의 선왕(宣王)이 연(燕)나라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쳐들어오면서 연(燕)나라는 도읍인 계성(薊城)이 함락되었고,
제나라 사람이 <자지>를 잡아 젓을 담고 연왕 <쾌噲>는 자살하였다.
<[史記(사기) 세가(世家)] 권34.燕召公世家(연소공세가:연세가) (04/06)<연왕 쾌(燕王 噲)>
BC 314년 <자지>가 전횡을 일삼고 연나라에 반란이 일어나자 이틈을 노려 번조선이 보정 전역을 차지한다.
청나라의 <왕선겸>은 중산국이 차지하였다고 하였다.
이때 연나라의 계성(薊城)은 산서성 영구(靈丘)인근에 있었다.
BC 311년 燕의 중흥군주 소양왕의 즉위
BC 300년경 <진개>의 동정
大夫 曰 齊桓公越燕伐山戎 破孤竹 殘令支. 趙武寧王踰句注 過代谷 略滅林胡樓煩.
燕襲走東胡 辟地千里 度遼東而攻朝鮮”
<염철론鹽鐵論 벌공편伐功篇>
대부가 말하기를 제 환공이 연을 넘어 산융을 벌하고 고죽을 격파하고 영지를 잔파시켰다.
조 무령왕은 더욱 활 시위를 잡아당겨 대와 상곡을 넘어 임호 누번을 경략해 멸하였다.
연나라는 동호를 습격해 나아가 천리 밖 땅으로 물리쳤고 요동을 넘어 조선을 공격했다
염철론은 BC52년에 <환관>이 편찬한 것이다.
<환관>은 벌공편에서 제나라와 조나라, 연나라의 북벌을 말하고 있다.
BC 650년 제 환공이 고죽국을 멸망시켰고 조 무령왕은 임호와 누번을 멸망시켰다고 하였다.
조 무령왕은 BC 307년 호복령을 시행한 조의 걸출한 군주로 BC 298년에 태자에게 양위하고
주보(主父)로써 실잘적인 권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BC 296년에 중산국을 멸하여 중산군을 설치하고
BC 290년경에는 임호와 누번을 멸하여 안중, 운문, 代 3郡을 설치하게 된다.
이때가 조나라의 최대강역이었다.
BC 334년 <소진>의 합종책에서 <소진>이 연나라의 강역을 설명하면서
연나라의 북쪽에 임호와 누번이 있고 서쪽에 운중과 구원이 있다고 하였는데
BC 290년경에 조 무령왕이 임호와 누번을 멸하였다고 하니
BC 290년경에 燕나라의 수도가 산서성 영구에서 하북성 역현의 연하도로 옮겨간 것을 알 수 있다.
다시말해 연나라 <진개>의 東征이 먼저 일어나 연나라가 그 수도를 산서성에서 하북성으로 옮긴 후
조 무령왕의 임호, 누번 경략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BC 300년경 연나라가 습격해 동호가 달아났는데 벽지천리(辟地千里)라 하였다.
벽지천리를 천리를 물러나게 하였다고 하여 물러난 거리가 천리인 것처럼 일반적으로 해석하는데
'辟'이라는 글자는 갑골문자와 금문자를 보면 무릅꿇은 사람과 형벌을 상징하는 날카로운 도구로 되어 있다.
벽형(辟刑)이란 형별은 무릎을 도려내는 형벌이다. 길이가 아닌 면적의 개념이다.
필자는 벽지천리를 폭원(幅員)천리로 보아 연나라가 동호를 물리치고 차지한 땅은 그 땅의 사방 길이가 천리라고 본다.
BC 296년 <한개>의 반란과 <고열가> 즉위
BC 296년 중산국 멸망
BC 290년경 연하도(燕下都)에 황금대를 세워 인재를 등용함
이 때 燕의 수도 계성(薊城)은 하북성 역현의 연하도(燕下都)이다.
<고구려의 평양을 찾아서(8) 그림 8-2 참조>
BC 290년경 조 무령왕 임호와 누번을 멸함
BC 284년 제서지전(濟西之戰)
연 소왕 28년(기원전 284년), 연나라는 부유해지고 병사들은 기꺼이 전투에 나가려 했다.
이에 마침내 <악의>를 상장군으로 삼아 진(秦)나라와 초나라, 삼진(三晉)과 함께 제나라를 정벌하기로 했다.
제나라의 군대는 패했고 제 민왕(齊 湣王)은 도성 밖으로 도망쳤다.
연나라의 군대만 추격하여 임치에 진입해서는 제나라의 보물을 취하고 궁실과 종묘를 불태웠다.
함락되지 않는 제나라의 성으로는 요(聊), 거(莒), 즉묵(卽墨)만 남았고
나머지는 모두 연나라의 차지가 되어 6년 동안 지속되었다.
<[史記(사기) 세가(世家)] 권34.燕召公世家(연소공세가:연세가) (05/06)<연 소왕(燕 昭王)>
이 시기가 연나라 최대의 강역으로 제나라는 거의 멸망 직전이었다.
BC 278 燕 혜왕(惠王) 즉위
BC 243 趙나라에게 무수(武遂)를 빼앗김
二年,李牧將,攻燕,拔武遂、方城
도양왕 2년(기원전 243년)에 <이목李牧>이 군사를 이끌고 연나라를 공격하여 무수(武遂)와 방성(方城)을 함락시켰다.
<史記 세가 권43 趙세가>
무수(武遂)는 수성(遂城)으로 요동성을 말한다.
BC 240년경 燕나라는 국력이 쇠퇴하여 제나라와 번조선이 잃었던 지역을 회복하게 된다.
6. 북부여 략사(略史)
BC 238 - BC232 고조선의 공화정 실시
3월 제천을 행한 날 저녁에 임금께서 오가(五加)와 더불어 의논하여 말씀하셨다.
"옛날 우리 성조들께서 처음으로 법도를 만들고 국통을 세워 후세에 전하셨노라
덕을 심으심이 넓고도 멀리 미쳐 만세의 법이 되어 왔느니라
그러나 이제 왕도가 쇠미하여 모든 왕이 세력을 다투고 있도다.
짐이 덕이 부족하고 나약하여 능히 다스릴 수 없고,
이들을 불러 무마시킬 방도도 없으므로 백성이 서로 헤어져 흩어지고 있느니라.
너희 오가는 현인을 택하여 단군으로 천거하라."
옥문을 크게 열어 사형수 이하 모든 포로를 석방하셨다.
<단군세기>
중원이 전국시대에 접어들자 2000년을 지탱하여 오던 고조선도 중앙권력이 약해지고 제후들의 반란이 잦아든다.
BC 296년 <한개>의 반란을 진압한 상장군 <고열가>가 고조선의 마지막 단제로 즉위하였으나
국세가 기울고 백성들이 흩어지자 단군의 자리를 내놓고 오가들의 공화정이 시작된다..
BC 238년 <해모수>의 기병
依熊心山 而起 築室蘭濱 戴烏羽冠 佩龍光劒 乘五龍車 與從者 五百人 朝則聽事 暮則登天 至是卽位 癸亥 二年
<북부여기>
웅심산(熊心山)에서 기병하여 난빈(蘭濱)에 궁궐을 짓고, 까마귀 깃털을 꽂은 갓을 쓰고,
용의 문양이 새겨진 번쩍이는 칼을 차고, 다섯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녔다.
그를 따르는 500인의 군사들과 함께 아침에는 나랏일을 살피시고, 저녁에는 등천(登天)하였다.
이에 이르러 즉위하였다. 계해 2년(BC 238)이다.
<해모수>가 기병한 곳은 청하국(靑河國) 웅심산(熊心山)이다.
이 웅심산은 개마국과 청하국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개마산(고마산)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BC 232 공화정 철폐와 <해모수解慕漱(BC261-BC194) 재위 BC232-BC195> 등극
己巳 八年 帝 率衆 往諭故都五加 遂撤共和之政 於是 國人 推爲檀君 是爲北夫餘 始祖
<북부여기>
기사 8년(BC 232) 단제께서 무리를 이끌고 옛 도성으로 가서 오가들을 회유하여 마침내 공화정을 철폐하였다.
이에 나라사람들이 그를 단군으로 추대하였다. 이렇게 하여 해모수는 북부여의 시조가 되었다.
옛 도성은 대부여 장당경이다.
始祖 檀君 解慕漱 在位 四十五年 壬戌元年 帝 天姿英勇 神光射人望之 若天王郞 年二十三 從天而降
是 檀君 高列加 五十七年 壬戌 四月 八日也
<북부여기>
(북부여의) 시조 단군 해모수의 재위 기간은 45년이다. 임술년(BC 239)이 원년이다.
제께서는 한울님의 자태와 영웅의 용맹스러움을 지녔으며, 신령스런 광채가 번득이는 눈빛을 가지셨으니,
가히 천왕랑(하늘을 다스리는 왕의 자손, 天子)이라 할 만한 용모를 지니셨다.
그의 나이 23살이 되던 해 하늘의 뜻을 따라 강림하였다.
이때가 고조선의 마지막 단군인 고열가 57년(BC 239) 임술년 4월 8일이었다.
북부여기는 BC232년에 공화정을 폐지하고 북부여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면서도
BC 239년 청하국 웅심산에서 기병한 해인 BC239년을 북부여 원년으로 하였다.
<해모수>가 청하국 웅심산에서 옛 도성인 장당경으로 가서 오가의 추대를 받아 북부여 천제로 등극한 것이다.
BC 221 <해모수>가 <기준箕準>을 번조선왕에 명함.
庚辰 十九年 丕薨 子準襲父封 爲 番朝鮮王 遣官監兵 尤致力 於備燕 先是 燕遣將 秦介 侵我西鄙 至滿番汗 爲界
<북부여기>
경진 19년(BC 221) <비丕>가 죽었다.
그 아들 <준準>이 아버지의 직위를 세습하여 번조선의 왕이 되었다.
관리를 파견하여 병사를 감독하도록 하고, 연나라의 침입에 철저히 대비하도록 하였다.
이에 앞서 연나라의 <진개>가 우리나라 서쪽지방을 침입하여 만번한(滿番汗)에 이르러 그 경계를 이룬 적이 있었다.
<해모수>는 번조선왕 <기비箕丕>를 이어 <기준>을 번조선왕으로 명하면서
BC300년경에 연의 <진개>가 번조선 땅을 침범한 적이 있었으니 경계를 철저히 하라고 한다.
만번한(滿番汗)은 만성(滿城)과 번한성(番汗城)을 말한다.
BC 220 천안궁(天安宮) 신축
辛巳 二十年 命祭天 于白岳山阿斯達 七月 起新闕 三百六十六間 名爲天安宮
<북부여기>
신사 20년(BC 220) 단제께서는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에서 하늘에 제사 지낼 것을 명하고
7월에 366칸의 새로운 궁궐을 지어 천안궁(天安宮)이라 하였다.
백악산은 불이성(不而城) 인근의 산이다.
BC 218 진시황 암살 실패
癸未二十二年滄海力士黎洪星與韓人張良狙擧秦王政于博浪沙中誤中副車
<북부여기>
계미 22년(BC 218) 창해역사 <여홍성>이 한나라 사람 <장량>과 함께 진왕 <정>을 박랑사 가운데에 저격하였으나
목표를 잘못 맞혀 여벌로 따라가는 수레를 맞혔다.
BC 215 진장성을 쌓음
BC 209 <진승>의 반란과 유민의 귀순
壬辰三十一年 陳勝起兵秦人大亂 燕齊趙民亡歸番朝鮮者數萬口 分置於上下雲障 遣將監之
<북부여기>
임실 31년(BC 209) <진승>이 군대를 일으키니 진나라 사람들이 크게 어지러웠다.
이에 연나라 제나라 조나라의 백성들이 도망해서 번조선에 귀순하는 자가 수만명이 되었다.
이들을 상하운장(上下雲障)에 나누어 살게 하고 장군을 파견시켜 감독하였다.
여루 단제 32년(BC365)
연(燕)나라 사람 <배도倍道>가 쳐들어와서 요서(遼西)를 함락시키고 운장(雲障)을 육박하였는데,
이에 번조선이 상장(上將) <우문언于文言>에게 명하여 이를 막게 하고,
진조선(眞朝鮮)과 막조선(莫朝鮮)도 역시 군대를 보내와 이를 구원하여 오더니,
복병(伏兵)을 숨겨두고 협공(夾攻)하여 연(燕)나라, 제(齊)나라의 군사를 오도하(五道河)에서 쳐부수고는
요서(遼西)의 모든 성(城)을 남김없이 되찾았다.
운장(雲障)은 현도군 고구려현의 남소성(南蘇城)인근이다.
BC 202 연나라 <노관盧綰>의 요동고새 중수
己亥三十八年燕盧綰復修遼東故塞東限浿水
<북부여기>
기해 38년(BC 202) 연나라의 노관이 다시금 요동의 옛 성터를 수리하고
동쪽은 패수로써 경계를 하였다.
朝鮮王滿者 故燕人也 自始全燕時 嘗略屬眞番 朝鮮 爲置吏 築鄣塞 秦滅燕 屬遼東外徼
漢興 爲其遠難守 復修遼東故塞至浿水 爲界 屬燕
『史記』 '朝鮮列傳'
조선왕 만(滿)은 옛 연(燕)나라 사람이다.
연(燕)나라의 전성기에 비로소 처음 진번(眞番)과 조선(朝鮮)을 침략하여 [연(燕)에] 속하게 하고,
관리를 두고 요새를 쌓았던 적이 있었다.
진(秦)이 연(燕)을 멸하자 [그곳은] 요동외요(遼東外徼)에 속하게 되었는데,
한(漢)이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패수(浿水)에 이르기까지 요동고새(遼東故塞)를 손질하여 복구시키고,
[요동고새를] 경계로 삼아 [요동외요 이서(以西) 지역을] 연(燕)에 속하게 하였다.
BC 202년은 漢 고조 5년이다. 연나라가 멸망한 지 20년이 지난 해이다.
이때 말하는 燕나라는 漢나라가 지방관으로 보정시 당현에 봉한 군국(郡國)의 燕나라를 말한다.
漢 고조 <유방>이 옛 연나라 사람 <위만>과 <노관>을 시켜 요동성을 수리하게 하고
요새를 패수의 하류까지 쌓아 번조선(기자조선)과 경계를 하였다는 것이다.
BC 195 <해모수>의 죽음과 <위만>의 망명
丙午四十五年 燕盧綰叛漢入凶奴 其黨衛滿求亡於我 帝不許 然帝以病不能自斷 番朝鮮王箕準多失機
遂拜衛滿爲博士劃上下雲障 而封之 是歲冬帝崩葬于熊心山東麓 太子慕漱離立
<북부여기>
병오 45년(BC195)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망명하니 그 무리인 <위만>은 우리에게 망명을 요구했으나
단제께서는 이를 허락치 않으셨다.
단제께서는 병으로 인해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번조선 왕 <기준>이 크게 실수하여 마침내 <위만>을 박사로 모시고 상하운장을 떼어서 위만에게 봉해주었다.
이 해 겨울 단제께서 붕어하시고 웅심산 동쪽 기슭에 장사지내니 태자 <모수리>가 즉위하였다.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가 붕어하니 웅심산 동쪽 기슭에 장사지냈다.
필자는 이 웅심산을 북부여와 고구려의 위치를 밝히는 절대좌표로 본다.
웅심산은 북부여의 도성 불이성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10리 이내, 평양성에서 요동성까지가 약 40리이다)
웅심산은 <해모수>가 처음 기병을 한 곳이고
또한 북부여의 마지막 천제 모수제가 청하백 <옥두진>의 딸 <옥유화>를 만나 <추모>를 잉태한 곳이며
모수제의 릉과 사당이 있는 곳이고
또한 가까운 용산에는 추모가 건국한 비류곡 서성산과 추모의 릉이 있고
고국려인들의 마음의 고향인 고국원이 있는 곳이다.
BC 194 <위만>조선과 한반도의 삼한
丁未元年 番朝鮮王箕準 久居須臾 嘗多樹恩民皆富饒 後爲流賊所敗亡入于海而不還 諸加之衆奉上將卓 大擧登程直到月支立國月支卓之生鄕也 是謂中馬韓 於是弁辰二韓赤各以其衆受封百里 立都自號皆廳用馬韓政令世世不叛
<북부여기>
정미 원년(BC194) 번조선왕 <기준>은 오랫동안 수유(須臾)에 있으면서
일찍이 백성들에게 많은 복을 심어 모두 부유하였다.
뒤에 떠돌이 도적떼들에게 패망한 뒤 바다로 들어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제가의 무리들은 대장군 탁을 받들어 모두 길을 떠나 곧바로 월지에 이르러 나라를 세웠다.
월지는 탁의 태어난 고향이니 이를 가리켜 중마한이라 한다.
이에 이르러 변 진한 두 한도 역시 각 무리들이 받은 땅 백리를 가지고 수도도 정하고
스스로 나라 이름을 정했는데 모두 마한의 다스림을 따르며 세세토록 배반하는 일이 없었다.
번조선왕 <기준>은 한반도로 이동하여 청주를 중심으로한 월지국을 세우고 한씨로 성을 바꾼다.
청주 韓씨의 조상이 된다.
BC 192 <고진高辰>으로 하여금 평양을 수비케 함
己酉三年 以海城屬平壤道 使皇弟高辰守之 中夫餘一城悉從 糧餉 冬十月 立京鄕分守之法 京則天王親總衛戌
鄕則四出分鎭 恰如柶戲觀戰龍圖知變也
<북부여기>
기유 3년(BC192) 해성(海城)을 평양도(平壤道)에 속하게 하고는 황제의 동생 <고진高辰>을 시켜 이를 수비케 하니,
중부여 일대가 모두 복종하매 그들에게 양곡을 풀어 주었다.
겨울 10월 경향분수의 법을 세웠으니 서울도성은 곧 천왕이 직접 수비를 총괄하며
지방은 네 갈래로 나누어 군대를 주둔하도록 하니 마치 윷놀이에서 용도의 싸움을 보고 그 변화를 아는 것과 같았다.
BC 169 孝皇 <고해사 高奚斯> 즉위
辛未二十五年帝崩太子高奚斯立
<북부여기>
신미 25년(BC170) 제가 붕어하고 태자 <고해사高奚斯>가 즉위하였다.
필자는 북부여기와 모수제기 등을 참고하여 BC 169년에 즉위한 <고해사高奚斯>가 <고진高辰>의 아들이고
<고진>은 <모수리>의 이복동생으로 <해모수>의 정비인 황후가 아닌 高妃의 아들로 태어나 <고진高辰>이라고 하였으며
이 방계(곁가지)가 <모수리>의 뒤를 이어 북부여를 계승하였고 <해모수>의 정실 혈통인 <해부루解夫婁(BC138-BC62)>는
가섭원으로 옮겨 가 동부여를 세웠다고 본다.
동부여 금와왕의 서자 <구태>가 <소서노>와 혼인하여 세운나라가 졸본부여이고
<구태>와 <소서노>의 아들 <온조>가 세운 나라가 백제로 훗날 사비성에 도읍하여 남부여라 하였다.
추모가 고구려를 세워 증조할아버지 <고해사>를 효황(孝皇)으로, 할아버지 <고우루(BC140-BC111)>를 덕황(德皇)으로,
아버지 모수제 <고두막(BC118-BC59)>을 수황(漱皇)으로 추존하였다.
그리고 광개토태왕의 릉비에 광개토태왕 <담덕>이 17세손이라고 하였는데
고해사→ 고우루 →고두막 →추모 →유리 →무휼 →재사 →궁 →백고 →연우 →교체 →연불 →약우 →(돌고) →을불
→사유 →구부 →담덕으로 이어졌는데 실제는 고해사로 부터 18세손이나
미천대제 <을불>의 아버지 <돌고>는 왕위에 오른 적이 없어 17세손으로 릉비에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BC 169 한반도 평양의 낙랑국왕 <최숭>이 곡식 300섬을 바침
壬申元年正月 樂浪王崔崇納穀三百石于海城 先是崔崇自樂浪山載積珍寶而 渡海至馬韓都王儉城 是檀君解慕漱丙午冬也
<북부여기>
임신 원년(BC169) 정월 낙랑왕 <최숭崔崇>이 곡식 300섬을 해성에 바쳤다.
이보다 앞서 <최숭>은 낙랑산으로부터 보물을 산처럼 가득 싣고 바다를 건너 마한의 서울 왕검성에 이르니,
이때가 단군 해모수 병오년(BC195) 겨울이었다.
낙랑국왕 <최숭>은 <위만>이 번조선을 침략하자 북한의 평양으로 옮겨 가 낙랑국을 세웠다는 것이다.
BC128 요동에 창해군을 설치
癸丑四十二年 帝躬率步騎一萬 破衛賊於南閭城置吏
<북부여기>
계축 42년(BC128) 제께서 몸소 보병과 기병 1만명을 이끌고 위만의 도둑떼를 남여성에서 쳐부수고 관리를 두었다.
원삭元朔 원년(BC128) 가을, 흉노가 요서를 침입해 태수를 죽였다.
어양(漁陽), 안문(雁門)을 침입해 도위를 패배시키고 3천여 명을 살략했다.
장군 <위청衛靑>을 보내 안문을 나가게 하고, 장군 <이식李息>은 대(代)를 나가게 하여 수천 급을 참획했다.
동이(東夷) 예군(薉君) 남려(南閭) 등 28만 명이 항복하자 창해군(蒼海郡)을 설치했다.
<한서 흉노전>
부여국은 본래 예(濊)의 땅이었다.
한무제 원삭 원년(BC128) 그 땅에 창해군을 설치하였다가 수년 뒤 곧 폐지하엿다
<책부원구>
<고해사>가 <위만>의 군대를 물리치고 <예군薉君>을 두어 남려성을 지키게 하였으나
<예군薉君>이 漢나라의 사주를 받고 漢에 복속하자 漢은 이곳에 창해군(蒼海郡)을 설치하고 군대를 파견하게 된다.
漢의 태수가 창해군을 직접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단지 위만조선과 북부여를 견제하기 위한
군사적인 요충지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하였다.
예군(薉君)은 예왕(穢王)을 말한다.
이후 BC109년 한(漢)나라 대신 <공손홍公孫弘>이 창해군(蒼海郡)을 혁파 할 것을 주청하자
한무제(漢武帝)는 막대한 자금지원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우거右渠>의 공격으로부터
완충지대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자 창해군(蒼海郡)을 혁파한다.
BC 120 덕황 <고우루(BC140-BC111) 재위 BC120-BC112> 즉위
BC 115 해성(海城) 습격
병인 6년(BC 115) 단제께서 친히 정예병 5000명을 이끌고 해성을 습격하여 대파하고, 그들을 살수(薩水)까지 추격하였다.
구려하(九黎河)동쪽이 모두 항복하였다
BC 114 좌원(坐原)에 목책을 설치하다
정묘 7년(BC 114) 좌원(坐原)에 목책을 설치하고 남여(南閭)에 군대를 주둔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BC 112 <애종>의 난
<애종>의 난으로 덕황 <고우루>가 전사하고 <법황(BC138-BC77) 재위BC111-BC77> 이 제위에 오름
BC 108 한사군 설치
癸酉十三年漢劉徹寇平那滅右渠仍欲置四郡盛以兵四侵於是高豆莫汗倡義起兵所至連破漢寇遺民四應以助戰軍報大振
<북부여기>
계유 13년(BC108) 한나라 <유철>이 평나(平那)를 노략질하여 우거를 멸망시키더니
4군을 두고자 사방으로 병력을 침략시켰다.
이에 <고두막>칸이 의병을 일으켜 가는 곳마다 한나라 침략군을 연파하였다.
이에 유민들이 사방에서 일어나 호응함으로써 싸우는 군사를 도와 크게 떨쳐 보답하였다.
필자는 <고두막(BC118-BC59)>을 북부여의 태자 모수제로 본다.
이때 11세의 어린 나이로 의병을 일으켜 유민들의 도움으로 漢나라의 군사를 크게 무찌르게 된다.
BC 100 모수제기의 시작년도로 법황1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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