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당유고

위화진경(魏花眞經) 完譯(5)

지보고 2023. 11. 25. 10:19

 

 

27. 나마(奈麻)로 진급하여 천후 <영제>를 만나는 <위화魏花>

 

翌日太子與妃謁帝及后請加郎爵召入大內進位奈麻

다음날 태자와 비는 제와 후를 알현하고 <위화>랑에게 작위를 더하여 줄 것을 청하니

불러 대내(大內)에 들어오게하여 나마(奈麻)의 직위로 진급시켰다.

 

나마(奈麻)는 11관등이다.

 

天后美之()此兒玉膏人() 妙心遠不及之 豈謂今日復見如此尤物乎仍問

천후가 위화랑의 아름다움을 보고 말하였다.

" 이 아이는 옥으로 만든 사람이다. <묘심>은 멀리서도 미치지 못한다.

오늘 다시 보니 어찌 이처럼 뛰어나다고 오히려 묻지 않을 수 있겠는가?" 

 

郎曰 何時何人何處 眞 郎對曰 無時無人無處 眞

위화랑이 자문자답 하였다.

"무엇이 時이며 人이며 處이며  眞인가?

無時 無人 無處가 眞이다."

 

위화랑은 天地人 三才의 眞이 無라고 자문자답하고 있다.

 

주역에서는 無極 → 太極 → 兩儀(陰陽) → 四象 → 八卦로 천지가 창조되었다고 한다.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을 낳고, 태극(太極)이 양의(兩儀)(음양)를 낳고, 양의(兩儀)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四象)이 팔괘(八卦)를 낳고, 팔괘(八卦)가 만물(萬物)을 낳는다는 것이다.

 

后曰 我眞誰元

후가 말하기를 " 나는 眞이란 오로지 元이다."

 

郎對曰 臣是元 元自天來

위화랑이 대답하기를 " 臣이 元입니다. 元은 본래 하늘에서 온 것입니다."

 

后大笑抱郎曰 虎狼有食牛之志 此兒之謂也

후가 크게 웃고 위화랑을 안으며 말하기를

"소를 잡아먹는 호랑이와 이리의 뜻이 바로 이 아이를 일러 말함이다."

 

命加紫袖綠衣而舞完若蝴蝶 后爲調歌而援之

자수와 녹의를 더하여 내리고 호접무가 끝날 때 쯤 후가 노래로 응원하였다.

 

自是寵愛日加 常召入內 與后開瑒講眞

이로부터 총애가 날로 더하여 항상 불러 대내(大內)에 들어와 후와 함께 탕(瑒)을 열고 진(眞)을 강연하였다.

 

或圍碁蹴鞠交 以歌舞至于夜深 則宿于宮中

때로는 서로 바둑을 두고 축국을 하고 밤이 깊을 때 까지 가무를 즐긴즉 궁중에서 자기도 하였다.

 

與殿君公主同槽而后爲之洗而加衣曰

전군과 공주와 더불어 같은 욕조를 쓰니 후가 위화의 몸을 씻고 옷을 입히며 말하기를

 

朕以天下養一仙 兒者欲報于天也

“짐이 천하의 일선(一仙)을 양육하니 아이는 하늘에 보답코자 한다.”

 

太子侍后同槽 而浴郎亦洗

태자는 후와 위화랑이 같은 욕조에서 목욕하고 씻는 것을 시중들었다.

 

后加衣曰 奉淨

후가 옷을 입으며 말하기를 “ 몸을 깨끗이 하여 받들어라”

 

后好淸淨備香湯于內外 或一日數次行湯

후는 내외에 향을 넣은 욕탕을 준비하여 청정(淸淨)한 것을 좋아하고 때로는 하루에 수차 욕탕에 행차하였다.

 

每臨仙院必先行湯于水宮 而拜樹王

선원에 올 때 마다 반드시 수궁에서 먼저 목욕을 하고 수왕에게 절하였다.

 

后體洪 而胖郎能抱 而入湯洗之

후는 체격이 커서 뚱뚱한 위화랑을 안고 욕탕에 들어가 씻어 주었다.

 

后笑曰此所謂以氣運耶

후가 웃으며 말하기를 “ 이것이 소위 氣의 운행이다.”

 

郎對曰 臣幼冲不敢以氣運敢以誠運

위화랑이 대답하기를

“신(臣)은 너무 어려 감히 氣를 운행하기를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后曰 誠能致力 氣能運理 造化之秘也

후가 말하기를

”힘을 다하면 능히 이룰 수 있다. 氣는 理를 운행할 수 있는 조화(造化)의 비결이다.“

 

郎得之可謂仙也

위화랑이 이를 체득하니  일러 仙이라 한다.

 

郎曰 皆天宮萬歲之恩也 非臣得之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모든 것이 천궁의 만세의 은혜입니다. (仙은) 신이 득한 것이 아닙니다.”

 

后嘉之 賜碧我白馬紫衣 以賞 仙母之功

후가 이를 기뻐하며 <벽아>에게 선모(仙母)의 공으로 백마와 자의를 상으로 내렸다.

 

 

28. 가배(嘉俳)제(齊)를 행하는 <위화魏花>

 

是年 嘉俳太子命郎行祭于南桃

이 해 태자가 위화랑에게 명하여 남도에서 가배를 행하게 하였다.

 

503년 8월과10월에 가배제와 백양제를 통하여 <위화>랑이 처음으로 화랑이 되고 <벽아>가 최초의 화모가 된다.

<영제>와 태자 <모진>이 원화정의와 백양제를 열어 낭도들을 끌어들이고 세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發羽林軍衛之載碧我於高車 飾以錦繡 鼓噪而進 名曰花母

우림군 시위가 비단으로 수놓아 장식한 높은 수레에 <벽아>를 태우고

북소리가 요란하게 출진하니 이를 화모(花母)라 하였다.

 

車太子與妃碧花 迎花母奉之壇上 飾郎以金寶色貝二十八彩

導以十二仙童奏樂而進太子迎之就位主席拜謁花母

태자와 비 <벽화>가 금과 보석 스물여덟 빛으로 장식한 단상의 화모를 맞이하여 받들고

열 두 선동이 음악을 연주하니 태자가 주석으로 나아가 화모를 배알하였다.

 

太子與侍女主幣帛 妃與侍女主香粲 分坐花母()東西 郎跪進幣香

폐백(幣帛)을 주관하는 태자와 시녀, 향찬(香粲)을 주관하는 비와 시녀가 화모의 좌우로 앉아있고

<위화>랑이 무릎을 꿇고 폐백과 향찬을 올렸다.

 

仙童奉于花母 太子勸母受之

선동들이 화모를 받들어 모시고 태자가 화모에게 이를 받도록 권하였다.

 

衆彩女一齊拜謁 乞巧 獻其品彩

여러 채녀들이 일제히 그 품채(品彩)를 바치며 걸교(乞巧)로써 배알하였다.

 

 

29. <위화魏花>와 <발장髮長>의 만남

 

前後方一時歌之 郎舞而散花群女爭花 而獨一女 髮長而美

不與之爭而讓花 自後惟祝郎福

전후방에서 일시에 노래를 부르고 <위화>랑이 춤을 추며 꽃을 뿌리니 여러 여인들이 꽃을 가지려 쟁탈하는데

유독 머리카락이 긴 미모의 한 여인이 꽃을 가지려 하지 않고 사양하며 오직 위화랑의 복을 축원하고 있었다.

 

郎憐之而歌曰 髮長姬 髮長姬 花不及奈手短

<위화>랑이 이를 가련히 여겨 노래하여 말하기를

“머리카락이 긴 여인이여, 머리카락이 긴 여인이여!  꽃이 이르지 못하니 내 손이 짧기만 하구나!“

 

女答歌曰 長短在伸縮拾心 勝拾花聖心伸到我 何論手上花

여인이 답하여 노래하며 말하기를

“길고 짧음은 마음을 줍는 펼침과 오그림에 있고

꽃을 줍는 것은 성심이 나에게 이르러 펼침이니 어찌 손 위에 있는 꽃을 논하겠습니까?“

 

郞知其非凡 使人探之 乃畏山公之女也

<위화>랑이 그 비범함을 알고 사람을 시켜 알아보게 하니 <외산畏山>공의 딸이었다.

 

외산(람연) - 발장髮長(479? - )

 

<발장>은 법흥왕 6년(519)에 조주가 되었다.

 

其母覧淵忽明公之雲孫也 畏山以山近公之子

그 모친 <람연覧淵>은 <홀명忽明>공의 먼 후손이고 <외산畏山>은 <산근山近>공의 아들이었다.

 

양부(줄례) - 홀명(343?-412)

눌지(산화) - 산근(405-475)(외황) - 외산(459-521)(람연) - 발장(479?- )

 

好淸德 家甚貧 無以奉花歡徒 故姬不欲拾花也

청명하고 덕을 좋아하며 집안이 심히 가난하였으나

봉화(奉花)하지 않고 낭도들을 좋아하였으니 여인은 꽃을 줍지 않은 것이다.

 

郎益重之 密行訪之于狼山之下 姬着短褐布裳 與母娘舂粟

<위화>랑이 이를 더욱 중히 여겨 <외산>의 집 아래에 몰래 방문하니

여인은 짧은 갈포 저고리를 입고 모친과 더불어 좁쌀을 찧고 있었다.

 

母衣襤樓殆不能掩體 門墻皆鵚自外可窺

모친의 옷은 남루하여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이고  문 담장은 모두 무너져 바깥에서 볼 수 있었다.

 

郎入拜母前母避曰 何處公子誤拜貧婦

<위화>랑이 들어 와 모친에게 절하니 피하며 말하기를

“어찌 공자께서 잘못 알고 빈부(貧婦)에게 절을 하십니까?”

 

姬知爲郎而走前扶之曰 無至汚衣而禮母

여인이 <위화>랑이 앞서 달려와 도울려는 것을 알고 말하기를

“지극히 더러운 옷을 입고 있으니 예(禮)가 아닙니다.”

 

郎曰姬母卽吾母也 衣何論乎

위화랑이 말하기를

“여인의 모친은 곧 나의 모친입니다. 어찌 옷을 논하겠습니까?”

 

乃引姬入堂 共籍而談心 姬着喜交集不能成言曰 家貧無以奉 郎欲剪髮而獻之

이에 여인을 이끌고 방에 들어가 마음을 터놓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니

여인의 얼굴에 기쁨이 감도나 이런저런 생각에 말을 잇지 못하고 말하기를

“집안이 가난하여 받들 길이 없습니다.

낭군이 머리카락을 자르기를 원하시면 이를 잘라 드리겠습니다.“

 

言于母則母亦許之

모친에게 말하니 모친도 이를 허락하였다.

 

昨夢花生于髮 今見郎君實不虛也

어제 꿈에 머리카락에 꽃이 피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 낭군을 만나니 사실이 헛되지 않았다.

 

郎乃抱姬曰 姬髮卽吾髮 何必剪乎 吾所欲者姬之心身也 豈一髮乎

이에 위화랑이 여인을 안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머리카락은 곧 나의 머리카락입니다. 어찌 잘라야만 하오?

나는 그대의 마음과 몸을 바랄뿐인데 어찌 한 가닥 머리카락이겠소?“

 

姬曰 心是天稟自合于郎君 而身爲父母之所有 非父母之許共之 而難獻也

여인이 말하기를

“마음은 하늘이 내린 것이어서 스스로 낭군에게 합하나

몸은 부모의 것이니 부모의 허락이 함께하지 아니하면 바치기 어렵습니다.“

 

郎曰 惟心而已神仙不言難

<위화>랑이 말하기를

“오로지 마음은 이미 신선이니 말은 어렵지 않습니다.”

 

姬曰妾迷不知道 願郎君敎之

여인이 말하기를

“첩은 미혹하여 도를 알지 못합니다. 원컨대 낭군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郎乃言道談笑

이에 <위화>랑이 도를 말하며 담소하였다.

 

畏山自外而還見郎而喜曰 權門多好女仙 郎愛吾女亦天定也 敢以奉之爲妾

<외산畏山>이 바깥에서 돌아와 <위화>랑을 보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권문의 많은 사람이 여선(女仙)을 좋아하는데

<위화>랑이 나의 딸을 사랑하는 것 역시 하늘의 정함이니 감히 첩으로 받아 주시오“

 

郎再拜受之 覧淵烹新粟而進之 此吾女所種之園物也

<위화>랑이 재배하고 받아들이니

<람연覧淵>이 햇 좁쌀을 쪄서 올리며 이것은 내 딸이 심은 것이라고 하였다.

 

仙郎愛吾女則庶可一嘗

선랑(仙郎)이 내 딸을 사랑하니 첩의 자식을 한번 맛봄이 옳다.

 

郎再拜受之自是郎數往來

<위화>랑이 재배하고 받아들이며 이로부터 수차 왕래하였다.

 

仙徒乃供姬一新茅宅而豊其衣食

이에 선도들은 여인에게 새 모옥(茅屋)을 한 채 지어주고 옷과 음식을 풍족히 주었다.

 

郎不自知而問於姬曰 何至如此

<위화>랑이 자초지종을 알지 못하여 여인에게 물으며 말하기를

“어찌 된 일입니까? ”

 

姬曰 自郎君之來 仙徒日董家役 負駄 相繼致 此富裕 妾以爲郎君之遺 而不敢辭也

何戱之爲

여인이 말하기를

“낭군께서 오신 이래 하루는 선도들이 집을 바로 세우고 짐을 싣고 왔습니다.

이런 부유함은 첩이 낭군의 유명으로 알아서 감히 사양하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이를 희롱하겠습니까?

 

郎曰 吾所以來密行也 何有囑乎 此必徒頭之爲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 내 몰래 한 짓입니다. 어찌 부탁하였겠습니까?  이것은 필히 도두(徒頭)가 한 짓입니다.“

 

姬曰 徒頭外人不可受 其賂可以斥之乎

여인이 말하기를

“남인 도두는 받을 수 없으니 그 뇌물을 물리침이 옳습니까?”

 

郎曰 汝爲吾妻 徒頭卽汝身()也 何可斥乎

吾當稟于太子 加爵祿奴婢矣

<위화>랑이 말하기를

“당신은 나의 처이니 도두 역시 당신의 몸종입니다. 어찌 물리치겠습니까?

내가 마땅히 태자에게 품하여 작록과 노비를 더하도록 할 것입니다.“

 

姬止之曰 妾爲郎君而不禁治宅 今已足矣 無功而受爵不可 况多奴婢則只增煩累而已

여인이 이를 막으며 말하기를

“ 첩은 낭군을 위하여 집을 짓는 것을 금하지 못하고 지금 이미 족합니다.

공이 없는데 작위를 받는 것은 불가합니다. 하물며 많은 노비는 오히려 번거러움만 더할 뿐입니다.“

 

郎曰 我有功於太子 而汝有功於我 何謂無功乎

且天爵高而功爵下 何以功論乎

<위화>랑이 말하기를

“내가 태자에게 공이 있고 당신이 나에게 공이 있는데 어찌 공이 없다고 하십니까?

또한 하늘이 준 벼슬은 높고 공을 세운 벼슬은 낮으니 어찌 공을 논하겠습니까?“

 

乃告于太子曰 臣有密妻 貧不能自生 願祿其父畏山

이에 태자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 신에게 밀처가 있는데 가난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없으니

그 부친 <외산畏山>에게 녹을 내려주시길 원합니다.“

 

太子許之 拜爲理方巡行州郡

태자가 이를 허락하니 절을 올리고 이방(理方)이 되어 주군(州郡)을 순행하였다.

 

畏山所到刑獄 殆空從者 恐其太寬

<외산>이 감옥에 도착한 바  <태공殆空>을 따르는 자들은 크게 관대함을 두려워하였다.

 

畏山曰 罪之爲罪 罪之也 非爲罪也 吾爲仙郎之父治 吾民安可以刑罰加人乎

<외산>이 말하기를

“죄는 벌을 내리는 것이고 죄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선랑의 아비가 되어 다스리니 나의 백성을 어찌 형벌을 더하겠는가?"

 

諸曰 感泣頌聲大振 而民不得私 故肅然而歸

모두가 감읍하여 칭송하는 소리가 크게 퍼지고 백성들은 사사로이 득하지 않으니 숙연이 돌아갔다.

 

仙徒曰 畏公淸直不可以致財

선도들이 말하기를 “ <외산>공은 청렴하고 정직하니 재물을 모으는 것은 불가하다.”

 

郎叱之曰 吾父自有爵祿 豈爲汝輩所誤哉

<위화>랑이 이를 질책하며 말하기를

“ 나의 아버지는 스스로 작위와 녹봉을 가졌는데 어찌 너희들 무리의 잘못이겠는가?”

 

帝果知其賢 而崇其秩曰 今日始得好理方 命專內外刑政

제가 과연 그 현명함을 알고 그 질서를 존중하며 이르기를

“ 오늘 비로소 좋은 이방(理方)을 얻었으니 내외 형정(刑政)을 전담토록 하라”

 

郎爲姬 行白羊大祭于明活山 而散花空中使姬白中 黃鵠一雙來鳴于上俳佪數回

<위화>랑이 여인을 위하여 명활산에서 백양제를 행하고 공중에 꽃을 뿌리며

여인으로 하여금 백중(白中)토록 하니 누른 고니 한 쌍이 위에서 내려와 수차례 돌며 배회하였다.

 

郎曰吉祥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상서로운 조짐이다.”

 

命姬出舞於太子之前 太子嘉之 命下歡徒錢使之奉花

여인에게 명하여 태자의 앞으로 나아가 춤추도록 하니 태자가 기뻐하며

선도(仙徒)와 금전과 사신(使臣)의 봉화(奉花)를 내렸다.

 

姬不勝感激 歸治其具 而涓吉邀郎

여인이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 선도와 사신을 다스리며  <위화>랑을 맞이할 혼인날을 정하였다.

 

太子與郎幷騎白神馬到宅

태자와 <위화>랑이 나란히 백신마를 타고 집에 도착하였다.

 

畏山公與妻覧淵娘主出拜馬下 郎扶起之公導

<외산>공과 처 <람연>낭주가 나와 말 아래에 엎드려 절을 올리니

<위화>랑이 부축하여 일어나게 하여 <외산>공을 인도하였다.

 

太子及郎升堂下坐娘主引姬

태자와 <위화>랑이 마루에 올라가니 아래에 앉아있던 낭주가 여인을 데려왔다.

 

而入姬以七彩五寶盛粧 而前奉花于太子五拜()退

일곱 빛깔 다섯 보물로 성대하게 장식한 여인이 들어와

먼저 태자에게 봉화(奉花)하며 오배(五拜)를 올리고 물러났다.

 

又奉花于郎再拜而退

또 <위화>랑에게 봉화(奉花)하며 재배(再拜)하고 물러났다.

 

娘主獻酒於太子五拜 酙酒於郎勸食

낭주가 태자에게 술을 올리며 오배하고 위화랑에게 술을 따르며 음식을 권하였다.

 

太子召姬抱之 命行酒太子旣醉 命郎與姬對舞

태자가 여인을 불러 안으며 이미 취한 태자에게 술을 올리게 하고

<위화>랑과 함께 마주보며 춤을 추도록 하였다.

 

使娘主歌之 太子亦歌之 仙徒以花車載姬鼓舞樂之

낭주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하고 태자 역시 노래를 부르고

선도들이 꽃수레에 여인을 태우고 북을 치고 춤을 추며 연주하였다.

 

入仙院眞殿太子與郎從之 是夕 太子幸姬 授品命爲仙院之主 白中女皆羡之黑羊

태자와 <위화>랑이 이를 따라 선원 진전(眞殿)으로 들어와서

이날 저녁 태자는 여인에게 행차하여 선원주(仙院主)로 명하고 모든 백중녀들이 부러워하는 흑양의 품계를 주었다.

 

 

30. <염신>의 죽음과 <위화>와 <옥란>의 만남

 

三月剡臣公 往誄 叔欣公于桃山 而將歸出神門之外欲上馬

3월 <염신>공이 도산에 <숙흔>공의 명복을 빌러 가서 신문(神門)을 나와 돌아가려고 말을 탈려고 하였다.

 

夜已三更 月色稀迷 有美人在神樹下召之 公疑其爲祠主 而詣之美人無言步入西殿

밤은 이미 삼경이고 달빛이 희미한데 미인이 신목(神樹)아래서 그를 부르니

<염신>공이 사주(祠主)인줄 알고 다가가니 미인은 아무 말 없이 걸어서 서전(西殿)으로 들어갔다.

 

公隨之無燭 公疾趣抱之 乃助里宮主也

<염신>공이 촛불도 없이 그를 따라가서 걸음을 재촉하여 그녀를 안으니  <조리助里>궁주였다.

 

公號泣昏倒 馬奴搜之

<염신>공이 울면서 부르짖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니 마노(馬奴)가 찾아 나섰다.

 

公不省人事 西殿 助里所居也

<염신>공은 인사불성이었고 서전(西殿)은 <조리助里 >가 거처하는 곳이었다.

 

久廢不用 煤苔滿衣 公歸邸 而疾篤謂郎曰

歸侍吾母于天上無餘恨矣 汝可繼我治家子女幸矣

오래도록 내버려 두고 사용하지 않아 그을음과 이끼가 가득 낀 옷을 가지고 <염신>공이 자택으로 돌아가

<위화>랑에게 돈독히 일러 말하기를

“천상에서 기다리는 내 어머니에게 돌아가는데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너는 나를 이어 나의 집안 자녀들을 다스려 행복하게 하여야한다“

 

元臣乃以家讓之郎不受 其夕公卒

이에 <원신元臣>이 집안을 <위화>랑에게 양보하였으나 받지 않았다.

그날 밤 <염신>공이 죽었다.

 

순실(청아) - 등흔(416-483)

                    조리(423-483)

미해(청아) - 백흔(420-482)

등흔(보미) - 숙흔(434?-502)

백흔(조리) - 염신(447-503)

 

지난 해(502년) 죽은<숙흔>은  <염신>의 외사촌 형이다.

  

宅主玉蘭不歸于元臣 而歸于郎曰 先夫之言也

택주 <옥란>은 <원신>에게 돌아가지 않고 <위화>랑에게 돌아와서 말하기를

“ 죽은 아버지의 언약이라고 하였다”

 

비처(란릉) - 옥란(478-533)

 

郎乃與玉蘭行祥 碧我遂爲宣登妻入光院

<위화>랑과 <옥란>이 상서러운 결혼식을 치루고

<벽아>는 마침내 <선등>의 처가 되어 광원(光院)으로 들어갔다.

 

지도로(찬황) - 선등(469-526)

 

太子命玉蘭爲剡公院主 督宅師 增新宅園泉石以爲遊賞之地

태자는 옥란을 염공원주(剡公院主)로 명하여 택사(宅師)를 감독케하고 새 집과 정원 연못을 증설하여 놀이터로 하였다.

 

時以仙光剡三院爲太子別院 天后亦數親臨之 *선원, 광원, ()

이때 선원(仙院), 광원(光院), 염원(剡院) 세 원(院)은 태자의 별원(別院)이 되었고 천후 역시 수차 이 곳에 왕림하였다.

 

<모진> 태자의 별궁 :  선원(仙院) <벽화>, 광원(光院) <벽아>, 염원(剡院) <옥란>

 

調用皆自宮中出 奢麗冠 於骨門珠履金冠之屬

골문의 구슬달린 신발과 금관에 달린 사치스럽고 화려한 의관들은 모두 궁중에서 조달한 것이었다.

 

莫不畢擧 盛冬嚴夏皆用不時之物

한겨울과 한여름에는 사용되지 않는 물건도 남기지 않고 모두 들어오지 아니하였는가?

 

 

31. 대나마 <위화>, 천후 <영제>의 폐신(嬖臣)이 되다.

 

時帝以宿疾命后禱于捺己神山

이때 제는 고질병이 있어 후로 하여금 날기 신산에서 기도하게 하였다.

 

太子從之 郎亦侍左右 至神山齋七日

태자가 따라가니 위화랑 역시 좌우에서 시중들며 신산에 도착하여 7일간 재(齋)를 지냈다.

 

困盛夏留連 山中滯雨

무더운 여름에 객지에서 머물러 피곤한데 산중에서 비를 만났다.

 

后方有乳公主在京 故乳漲 則命郎哺之

후가 경도(京都)에 있을 때 공주에게 젖을 먹였기 때문에 젖이 흘러나와 위화랑에게 젖을 먹도록 하였다.

 

이때 위하랑 17세, 연제 41세이다.

 

因抱與之寢遂得天寵及歸 加爵大奈麻 命行天宮衛監便宜入侍后

마침내 침실에서 함께 포옹하여 하늘의 총애를 받고 돌아오니

위화랑에게 대나마(大奈麻)의 작의를 더하여 천궁 위감(衛監)이 되어 편하게 들어와 후를 시중하게 되었다.

 

始嬖寵臣 恩漢(?)自大 召幸無時 郎恐得罪于帝

폐신(嬖臣)의 시작으로 은택을 뽐내게 되었고 때도 없이 불러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하니

<위화>랑은 제에게 죄를 받을까봐 두려워하였다.

 

后乃設天臺于狼山置博士 命郎主之 仍幸三院及臺而會于郎

이에 후가 낭산(狼山)에 천대(天臺)를 설치하고 박사를 두어 <위화>랑을 천대주로 명하여

삼원(三院)과 천대(天臺)에 행차하여 <위화>랑을 만났다.

 

郎以神后神帝之號上之 帝亦大喜

<위화>랑이 신후(神后)와 신제(神帝)를 상제(上帝)로 부르니 제 역시 크게 기뻐하였다.

 

時碧花生太子子三夫

이때 <벽화>가 태자의 아들 <삼부三夫>를 낳았다.

 

모진(벽화) - 삼부(503- )

 

郞以妹剡花薦于太子 太子不甚愛

<위화>랑이 여동생 <염화剡花>를 태자에게 천거하니 태자는 깊이 사랑하지 않았다.

 

염신(벽아) - 염화(489- )

 

又以玉蘭薦之有寵 太子久留剡院

또 <옥란玉蘭>을 천거하니 총애가 있어 태자가 염원(剡院)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后怒命郎責玉蘭及太子

후가 노하여 <위화>랑에게 명하여 <옥란>과 태자를 꾸짖도록 하였다.

 

郎乃使玉蘭稱疾不起 太子憂之求藥四方

이에 <위화>랑이 <옥란>이 병이나서 일어나지 못한다고 하니 태자가 염려하여 사방으로 약을 구하엿다.

 

玉蘭曰 妾之疾非藥可救 但太子均寵 而無妬 則自何

<옥란>이 말하기를

“첩의 병은 약으로 고치지 못하고 태자의 고른 총애와 질시가 없으면 바로 나을 것입니다.”

 

太子善之乃還東宮 天后責太子多寵 而已亦絶郎爲誓 郎不敢復進之

태자가 착하게 여기고 동궁으로 돌아가니 천후는 태자의 지나친 총애를 꾸짖고

<위화>>랑에게도 역시 절제토록 맹서하게 하니 <위화>랑은 감히 다시는 천거하지 못하였다.

 

 

32. 천후 <영제>의 친정(親政)과  태자 <모진>의 감국 (監國)

 

十月帝上閼川壇上 受號定國名曰新羅

10월 제가 알천 단상에 올라 신라(新羅)라는 국호를 정하고 이를 받았다.

 

遂與后巡狩國中 而歸命太子監國執行政事 大事后自決之

마침내 후와 함께 나라 안을 순수하고 태자에게 정사(政事)를 집행하고 감국(監國)토록 명하고

돌아 와 대사(大事)는 후가 스스로 해결하였다.

 

時德智公卒 太子臨喪 其室肜肜公主 以粉脂薦枕于殯室

이때 <덕지德智>공이 죽어 태자가 상가(喪家)에 왕림하니

그 아내 <융융肜肜>공주가 분과 연지를 바르고 빈소에서 잠자리 시중을 들었다.

 

내기(장총) - 총덕(394-464)

취희(인덕) - 질지(428-492) 금관가야 제 8대왕(재위 451-491)

총덕(황아) - 덕지(440-503)

질지(?) - 융융(470?-523)

 

太子稱慰孤 而宿之 后命郎召太子

태자가 <융융>공주의 외로움을 위로하며 잠을 자니 후가 <위화>랑에게 명하여 태자를 불렀다.

 

太子欲柔后 而命郎先入侍后 郎不敢違之如其言

태자는 후에게 유순코자 <위화>랑이 먼저 들어 가 후를 시중토록 명하니

<위화>랑은 감히 그 말대로 하고 어기지 못하였다.

 

后果復寵之太子

과연 후가 다시 태자를 총애하였다.

 

乃入后自漸而不能責太子

이에 태자가 들어가니 후는 스스로 점점 더 태자를 꾸짖을 수가 없었다.

 

以此郎益見寵愛 宣登碧我賴以爲重

이로써 <위화>랑은 더욱 총애를 받고 <선등>과 <벽아>는 귀중하게 되었다.

 

翌年正月 后與太子受朝眞宮 賜酒骨老上仙 命郎行酒上仙

다음 해 정월 후와 태자가 진궁(眞宮)에서 조하를 받고 골노와 상선에게 술을 내리며

<위화>랑에게 명하여 상선에게 술을 올리도록 하였다.

 

沛覧公奏曰 臣家世修仙業 以造國風 先臣忽明實爲順實日仙之悟道師

先臣沙覧繼爲其師實有功蹟於斯門 臣不敢以私聞也

今當此筵不無感舊臣欲 以先臣遺物皆傳臣女覧淵 以歸臣孫魏花郞副仙

<패람沛覧>공이 아뢰기를

“신의 집안은 대를 이어 선업(仙業)을 수학하여 나라의 풍속을 조성하였습니다.

신의 선조 <홀명忽明>은 <순실順實> 일선(日仙)이 실로 도를 깨달아 사부로 삼았습니다.

신의 선친 <사람沙覧>은 그 사부를 위하여 계속하여 이 문에 실로 공을 남겼습니다.

신은 감히 사사로이 들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는 당연히 옛 신하의 욕망을 드러냄이 없지 않으나

신의 선친이 남긴 유물은 모두 신의 딸 <람연覧淵>에게 전해져서

신의 손자인 <위화>랑 부선(副仙)에게 돌아갔습니다.“

 

산근(405-475)(외황) - 외산(459-521)(람연) - 발장(479?- )

사람(382- )(?) - 패람(410?- )(?) - 람연(460?- )

배실(난씨) - 순실(396-448)

 

山兼公亦奏曰 臣母靑我常言 忽明世己之學宗于當世

章伊好淵之學亦出于此 今其子孫淸貧無 以守廟保蹟 臣等當此盛筵實愧于心

<산겸山兼>공도 역시 아뢰기를

“신의 모친 <청아靑我>가 항상 말하기를  <홀명忽明>과 <세기世己>의 학문이 당세에 가장 뛰어나고

<장이章伊>와 <호연好淵>의 학문도 여기에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그 자손들이 청빈 무위로 조상의 묘를 지키고 보존하니 신 등은 이 성대한 자리가 실로 부끄러울 뿐입니다.“

 

눌지(산아) - 산근(405-475)

제상(치술) - 청아(399-452)

산근(청아) - 산겸(438-508)

양부(줄례) - 홀명(343?-412)

유례(선추) - 세기(335-391)

보해(보미) - 장이(425-490)

심(보반) - 호연(397-466)

 

天后曰 世己忽明兩公皆爲吾祖之師 中興仙道 宜令有司置其廟 田祿 其子孫諸仙咸(?)

천후가 말하기를

“<세기世己>와 <홀명忽明> 두 공은 모두 나의 조부의 사부로 선도를 중흥하였다.”

마땅히 유사(有司)에게 그 사당을 설치하고 밭과 녹봉을 내리도록 하니

그 자손 선도들 모두가 마음속으로 감동하여 탄복하였다.

 

순실(청아) - 등흔(모량) - 연제(463-525)

 

后德以爲必有仙報 後五日 太子 感?陪 后謁 桃滯雪 御厨乏雉

후의 덕(德)은 반드시 선(仙)의 보답이 있었다.

5일 후 태자가 후를 알현하고 곱절로 감동하였다.

눈이 쌓여 수라상에 올릴 꿩이 모자랐다.

 

后日 食五雉 故厨人憂之 欲自刎以贖祥 忽有群雉自走入厨舍 皆肥彭咮佳

후가 말하기를

“ 꿩 다섯 마리를 먹어야겠다”고 하였다.

수라간 나인이 이를 걱정하고 스스로 목을 베어 속죄코자 하니

홀연히 살이 찌고 맛이 좋은 꿩 여러 마리가 스스로 수라간으로 뛰어 들어왔다.

 

后異之問其事 命太子??其忠賜厨人爵舍知

후가 기이한 그 일을 묻고 태자에게 명하여 그 충성으로 수라간 나인에게 사지(舍知)의 작위를 내리도록 하였다.

 

厨人曰 臣聞世己忽明兩公有陰報於陛下 豈臣微忠之所感哉

수라간 나인이 말하기를

“신은 <세기>와 <홀명> 두 공이 폐하에게 은밀한 보답을 내렸다고 들었습니다.

어찌 신의 미천한 충성이겠습니까?

 

后益賢之 命屬仙院看厨天宮賜名雉人

후가 더욱 현명하다고 여겨 선원에 배속하여 천궁의 수라간을 살피도록 하고 치인(雉人)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后出入必從之 后入仙院每與魏花郞交食

院主親自下厨 與婢子 捨身等學厨于雉人 得其精熟后嘉之

후가 출입 시 반드시 따라 다녔고 후가 선원에서 매번 위화랑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

선원주(仙院主)는 친히 스스로 수라간 아래에서 계집종과 함께 몸을 바쳐 치인에게 수라간 일을 배워

그 정교하고 익숙함을 득하니 후가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