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당유고

위화진경(魏花眞經) 完譯(4)

지보고 2023. 11. 24. 18:27

 

21. <비처>가 사랑한 <지도로智度路>의 딸  천후(天后) <후황厚凰>

 

又以剡臣公爲元元花士 掌骨女歌舞 帝與后亦至蝴蝶樓 對舞暢神

또 <염신剡臣>공을 원원화사(元元花士)로 삼아 골녀를 관장하여 가무를 즐기니 

제와 후도 호접루(蝴蝶樓)에 이르러 마주보며 신명나게 춤을 추었다.

  

後來 帝文郎作詩 解其詞曰

훗날 <제문帝文>랑이 시를 지어 풀어 노래하기를 

 

胡蝶樓中 胡蝶兒 雙去雙來 唱新詞

翠衣緋袴 黃金帶 環無樹王 弄神枝

鳳車乍震 山呼高 東父西母 下瑤池

天宮綠髮 三千尺 鷄林天子 眼中垂

眞眞元元 妙妙裡 長得君王 寵如飴

寵如飴 寵始飴 九天銀河 濃如脂

호접루엔 나비가 짝을 지어 날아들며 새로운 노래를 부르네.

비취 저고리, 붉은 바지, 황금옥대와 고리 옥 없는 수왕은 꽃가지를 희롱하네.

봉황이 탄 수레가 잠시 흔들리니 만세소리 높고 아비와 어미가 연못으로 내려오네.

천궁의 길게 늘어트린 녹색 머리카락이 계림천자의 눈에 드리우네. 

진원(眞元)은 그 속이 묘하고도 묘하고 군왕에게 받은 오랜 총애는 엿처럼 달콤하네.

엿처럼 달콤한 총애는 달콤함에서 비롯되고 구천 은하수는 짙기가 기름을 친것 같구나.

 

<비처>의 총애를 받는 <후황>을 훗날 <제문>이 노래한 시이다.

 

모진(백란) - 란공(유문) - 제문帝文(547?- )

 

<제문>은 법흥대제 <모진>의 손자로

<미실(547-616?)>을 사랑하여 딸 <보림>과 <애함>을 낳았다.

 

호접루는 소지왕 6년(484년)에 건축한 골녀들의 연무장(演舞場)이다.

   

帝又至太子宮與后歌之 命太子與魏花郞 對舞

제가 또 태자궁에 이르러 후와 함께 노래하며 태자와 <위화魏花>랑에게 명하여 마주보며 춤을 추게 하였다.

 

郎歌舞天成每得帝讚

<위화>랑의 가무(歌舞)는 하늘의 이치를 이루어 매번 제의 칭찬을 받았다.

 

帝爲碧我賜錦衾 作新夫歌歌之 使宣登碧我起舞

제가 <벽아碧我>를 위하여 비단 이불을 내리고 신부가(新夫歌)를 지어 노래하고

<선등宣登>과 <벽아碧我>에게 일어나 춤추도록 하였다.

 

天后名其衾曰新夫衾 而謂宣登曰 汝若生女則可配吾子

천후가 그 이불을 신부금(新夫衾)이라 하고 <선등宣登>에게 말하였다.

" 너가 만약 딸을 낳으면 내 아들의 배필로 함이 옳다." 

 

宣登乃使碧我禱生女 不得悶之

이에 <선등宣登>은 <벽아碧我>가 딸을 낳도록 기도하게 하였으나 얻지 못하여 이를 근심하였다.

 

元兮宮主疾篤臨薨謂元臣曰 吾將復生于碧我腹中矣

<원혜元兮>궁주가 병이 위독하여 임종으로 <원신元臣>에게 일러 말하였다.

" 나는 장차 <벽아碧我>의 배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자 한다."

 

是夜果娠生女陽花 天后親幸賜米衣

이날 밤 과연 임신하여 딸 <양화陽花>를 낳아 천후가 친히 행차하여 쌀과 옷을 내렸다.

 

선등(벽아) - 양화(498?- )

 

帝以玉蘭公主妻剡臣公代元兮 仙徒乃奉普賢爲花()慕珍宮爲花士

제가 <원혜元兮>를 대신하여 <옥란玉蘭>공주를 <염신剡臣>공의 처로 하고

선도들이 <보현普賢>을 원화(源花)로 <모진慕珍>궁을 화사(花士)로 받들었다.

 

비처(란릉) - 옥란(478-533) 

 

天后以厚惠約爲魏花()郎 以善知妻慕珍宮 以陽花約爲太子媵妾

천후가 <후혜厚惠>를 <위화魏花>랑의 처로 할 것을 약조하고

<선지善知>를 <모진慕珍>궁의 처로 하고 <양화陽花>를 태자의 잉첩으로 할 것을 약조하였다.

 

비처(후황) - 후혜(497-532)

아지(후황) - 선지(484- )

 

乃賜碧我白馬紫金衣賜 以三等骨品加爵 宣登命吉鮑祠

이에 <벽아碧我>에게 백마와 자금의를 내리고 삼등 골품의 작위를 더하여

<선등宣登>에게 명하여 포사(鮑祠)에서 길례를  행하도록 하였다.

 

以魏花郞爲太子舍人 皆登骨門

<위화魏花>랑을 태자 사인(舍人)으로 하니 함께 골문(骨門)에 올랐다.

 

天后命魏花郎 以宣登爲父 郎以此呼宣登以父 剡臣以先父

천후가 <위화魏花>랑에게 명하여 <선등宣登>을 아버지로 하게 하니

<위화>랑이 이로써 <선등宣登>을 아버지로 <염신剡臣>을 선부(先父)로 불렀다.

 

后稱善曰 汝父吾弟也 汝可呼朕以叔母可也

후가 착하다고 하며 말하였다.

" 너의 아버지는 나의 동생이니 너는 짐을 숙모라고 부름이 옳다."

 

지도로(라황) - 후황(466-499)

지도로(찬황) - 선등(469-526)

 

선등은 천후 후황의 이복동생이다.

 

郎以是呼天后以叔母 呼帝以叔父

<위화>랑이 이로써 천후를 숙모로 제를 숙부로 불렀다.

 

碧我則呼以姊后兄皇他 骨女不可及矣

<벽아碧我>를 후(后) 형황(兄皇)의 동생으로 부르니 다른 골녀들은 미치지 못 하였다.

 

后好洗太子每召太子於湯殿抱 而入浴及約厚惠

후는 매번 대전 욕탕에 태자를 불러 안고 탕에 들어가 약조한 <후혜厚惠>와 더불어 태자를 씻는 것을 좋아하였다.

 

又洗魏花郎如太子左右抱之

또 태자와 같이 좌우에 안고 <위화魏花>랑을 씻었다.

 

太子好乳而哺之后 又使魏花郎哺其一曰 汝妻厚惠之乳也 汝亦可以得哺也

태자가 그 젖을 먹는 것을 좋아하니 후는 또 <위화魏花>랑을 그 한 쪽 젖을 먹도록 하고 말하였다.

" 너의 처 <후혜厚惠>의 젖이니 너 역시 젖을 먹는 것이 옳다." 

 

碧我感泣曰 賤子得接玉體恐得罪禍

<벽아碧我>가 감읍하여 말하였다.

" 천한 아들이 옥체의 젖을 받아 먹으니 죄를 받을까 두렵습니다."

 

后曰吾女之夫非汝子也 何罪之有

후가 말하였다.

" 내 딸의 남편은 너의 아들이 아니니 무슨 죄가 있겠는가?" 

 

宣登乃與剡臣議 上天宮尊號 而獻八寶玉仙冠

이에 <선등宣登>과 <염신剡臣>이 상의하여

천궁의 존호(尊號)를 올리고 팔보옥선관(八寶玉仙冠)을 바쳤다.

 

后曰汝等但知忠君而不知孝親 朕之父母無號 朕不甘心群臣

후가 말하였다.

" 너희들은 단지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은 알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모른다.

짐의 부모는 존호(尊號)가 없으니 짐이 신하들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乃上王號於副君 后號于大廟主

이에 부군(副君)에게 왕(王)의 이름을 올리고 대묘주(大廟主)에 후(后)의 이름을 올렸다.

 

后大悅會仙徒于海上 而求天仙不避風雪

후가 크게 기뻐하며 해상(海上)에 선도(仙徒)를 모아 풍설을 무릎쓰고 천선(天仙)을 구하였다.

 

宣登諫之 乃歸玉體未寧 帝憂之求藥四方

<선등宣登>이 이를 간하여 돌아오니 옥체가 미령하여 제가 이를 걱정하여 사방에 약을 구하였다.

  

而未至 黃兎正月二日崩于龍宮

얼마 지나지 않아 황토(黃兎)(499년) 정월 2일 용궁에서 붕하였다.

 

太子與魏花郎號哭成病 帝亦悲泣不食

태자와 <위화魏花>랑이 통곡하다 병이들고 제 역시 슬피 울며 음식을 먹지 않았다.

 

群臣莫知所爲副君 乃命地后迎帝抱帝入臥殯殿 天后玉顔如華 帝以爲回魂

신하들이 부군(副君)을 위하여 어찌 할 바를 몰라

지후 영제(迎帝)에게 제를 안고 들어와 빈전(殯殿)에 눕게하니

천후의 옥안(玉顔)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아 제는 혼이 돌아온 것 같이 여겼다. 

 

命宣登率諸巫誦經七日

<선등宣登>에게 명하여 여러 선무를 데리고 7일간 경을 외우도록 하였다.

 

帝夢見天后跨紫鹿 而入玉京曰 可以地后爲天后

제가 꿈에 천후가 자색 사슴을 걸터 앉아 타고 옥경(玉京)으로 들어 와 말하기를

"지후를 천후로 함이 옳다" 라고 하는 것을 보고

 

帝泣而 挽其袖曰 願與吾妻同去

제가 울면서 그 소매를 당기며 말하기를

" 내 처와 같이 가기를 원한다" 라고 하였다.

 

天后曰 上元之會入侍玉黃 當卽召君幸勿悲泣而少待也

천후가 말하였다.

"대보름의 집회에 옥황(玉黃)을 모시고 들어와 즉시 군행(君幸)을 부르게 하였으니

슬피 울지말고 잠시 기다리십시오."

 

帝猶不忍別之則 后自袖中出一花枝與之曰 此可以慰郎君也

제는 오히려 이별을 참지 못하니 후가 소매에서 꽃 가지 하니를 꺼내며 말하였다.

"이것으로 낭군을 위로함이 옳다"

 

帝乃受而聞其香 有少女自花蕾中抱帝接肳() 妾當奉枕

이에 제가 받아서 그 향을 맡으니

꽃봉오리 속에서 소녀가 나와 제를 안고 입맞추며 말하였다.

"첩은 마땅히 잠자리를 받들것입니다."

 

帝奇之引其手 而出花娟麗可愛

제가 이를 기이하게 여겨 그 손을 잡아 당겼다.

꽃에서 나오니 예쁘고 고와서 사랑할 만 하였다.

 

帝乃大喜抱女 而歡覺之乃迎帝也

이에 제가 크게 기뻐하여 여인을 안으니 이는 환각이고 <영제迎帝>였다.

 

迎帝曰天后以妾獻于陛下也 願陛下愛妾而忘先后

<영제迎帝>가 말하였다.

"천후가 첩을 폐하께 바쳤습니다

원컨데 폐하께서는 첩을 사랑하여 선후(先后)를 잊으시길 바랍니다."

 

帝乃與迎帝共入浴殿 群臣山呼 獻賀葬先后于伊同宮

이에 제와 <영제迎帝>가 같이 대전으로 들어 가 목욕을 하니 신하들이 산호만세를 부르고

이동궁(伊同宮)에서 선후(先后)를 장례하고 하례를 드렸다.

 

以迎帝爲天后 命以太子爲迎帝子

<영제迎帝>를 천후로 하고 태자를 <영제迎帝>의 아들로 명하였다.

 

 

22. <비처>의 천후(天后)가 된 <영제迎帝 >

 

太子乃以華服拜謁新后 行母子之禮

이에 태자는 화복(華服)으로 신후(新后)를 알현하고 절하여 모자(母子)의 예(禮)를 행하였다.

 

迎帝乃抱太子入湯洗之曰

汝母嘗欲以吾女普仁妻汝 朕今爲汝母當守其約 而慰汝母之靈矣

<영제迎帝>가 태자를 안고 탕에 들어 가 씻으며 말하였다.

" 너의 어머니는 이미 나의 딸 <보인普仁>을 너의 처로 하고자 하였다.

짐이 지금 너의 어머니가 되어 마땅히 그 약조를 지켜 너의 어머니의 혼령을 위로코자 한다."

 

乃召普仁與太子同浴

이에 <보인普仁>을 불러 태자와 같이 목욕하였다.

 

普仁長太子()二歲 能抱太子 入湯洗之 出湯衣之 奉供如流

<보인普仁>은 장성하고 태자는 12살이라

능히 태자를 안고 탕에 들어 와 씻고 탕을 나와 옷을 입히니 봉공(奉供)하는 것이 흐르는 물과 같았다.

 

소지명왕기에는 태자 분종이 488년에 태어났다고 하였다.

천후 <후황>이 죽은 해는 499년이다.

위의 기사는 499년의 일이다.

이때 태자 분종은 12살이다 十자가 탈락되어 있다.

 

太子便之常在迎后之側與普仁起臥

태자는 이를 편하게 여기고 항상 영후(迎后)의 곁에서 보인과 함께 일어나고 누웠다.

 

以此碧我魏花郞不得近太子

이로써 <벽아碧我>와 <위화魏花>랑은 태자를 가까이 하지 못하였다.

 

迎帝命碧我魏花郞復歸剡臣公

<영제迎帝>가 <벽아碧我>와 <위화魏花>랑에게 명하여  <염신剡臣>공에게 다시 돌아가도록 하였다.

 

公大喜置酒 命郎歌之 抱碧我而舞 碧我曰

공이 크게 기뻐하며 술을 차리고 <위화>랑에게 명하여 노래를 부르도록 하고

<벽아碧我>를 안고 춤을 추니 <벽아碧我>가 말하였다.

 

妾本郎君之妻 復歸郎君好也 但恐宣登郎君 無我則不能自活矣

" 첩은 본래 낭군의 첩이었으니 다시 돌아 와 좋습니다만

<선등宣登> 낭군은 제가 없으면 스스로 살아가지 못함이 두렵습니다."

 

公不許碧我乃作紫鳩歌而傷之

공이 허락하지 않아 <벽아碧我>가 자구가(紫鳩歌)를 지어 마음 아파 하였다.

 

郎乃密迎宣登以慰碧我 剡臣公知之責郎

이에 <위화>랑이 몰래 <선등宣登>을 만나 <벽아碧我>를 위로하니

<염신剡臣>공이 이를 알고 <위화>랑을 문책하였다.

 

郎曰靑我祖亦有二夫 父何妬之神仙之道 無貪無嗔 惟淡然而已

<위화>랑이 말하였다.

"<청아靑我> 조모 역시 두 남편인데 아버지는 어찌 이를 질투하십니까?

신선(神仙)의 도(道)는 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어 무심함을 생각할 뿐입니다."

 

公乃許碧我事二夫

이에 공이 허락하여 <벽아碧我>는 두 남편을 섬기었다.

 

 

23. <비처>와 <벽화碧花>의 만남

 

八月帝與善知普賢入捺己行宮

8월 제와 <선지善知>, <보현普賢>이 날기 행궁으로 들어갔다. 

 

剡臣公以頭上先駕 而發碧我與郎從之 次于波路家

<염신剡臣>공이 두상(頭上)으로 가마 앞에 서고  <벽아碧我>와 <위화>랑이 그를 따르고

다음으로 <파로波路>가(家)가 따르며 출발하였다.

 

<파로>는 <벽아>의 전남편 <손동>의 아우이다.  

 

時碧我已長濃姿艶態 神仙中人也

이때 <벽아碧我>는 이미 장성하여 자태가 농염하니 신선 중의 사람이었다.

 

剡臣公大喜 命碧我治其容帝

<염신剡臣>공이 크게 기뻐하며 <벽아碧我>에게 명하여 그 용모로 제를 치료토록 하였다.

 

以波路爲碧我古主幸其家置酒半酣 波路以大花蒂獻之

<파로波路>는 <벽아碧我>의 옛 주인인 그 집으로 행차하여 술을 차리고

주연이 반쯤 무르익을 때 <파로波路>가 큰 꽃봉오리를 바쳤다.

 

帝奇之聞其香 花忽開 而美人由中出蹁蹮而舞 帝召而抱之曰

제가 기이하게 여겨 그 꽃의 향기를 맡으니 홀연히 꽃이 열리며 가운데로 부터

미인이 비틀거리며 나와 춤을 추니 제가 불러 이를 안으며 말하였다.

 

此眞吾妻神中之花也 從何而來

" 이 아이가 진실로 나의 처로 신(神) 중의 화(花)이다. 어떻게 따라 왔느냐?"

 

碧我()此實妾與前夫遜同生也

<벽아碧我>가 말하였다.

" 이 아이는 실은 첩과 전 남편 <손동遜同>이 낳았습니다."

 

손동(벽아) - 벽화(485- )

 

帝乃幸之寵高

이에 제가 잠자리 시중을 들게하니 총애가 최고였다.

 

 命波路爲行宮大舍 碧花爲行宮夫人

<파로波路>를 행궁 대사(大舍)로 <벽아碧花>를 행궁 부인으로 명하였다.

 

碧我與郎亦留行宮奉供帝

벽아碧我와 <위화>랑 역시 행궁에 머물면서 제를 봉공하였다.

 

恐迎帝妬之不得納之

<영제迎帝>가 질투할까 두려워 납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副君乃使迎帝勸納 碧花還都寵無比者

이에 부군이 <영제迎帝>에게 시켜 납폐를 받아들이도록 권하여

<벽화碧花>가 경도로 돌아오니 총애를 비교할 자가 없었다.

 

帝乃起臥於剡臣家 呼碧我以母 而悅碧花之心

이에 제는 <염신剡臣>가(家)에서 일어나고 누워 <벽아碧我>를 어머니라 부르며

<벽화碧花>의 마음을 기뻐게 하였다.

 

迎帝乃以普仁爲太子妃 將吉神宮願 與帝淨 帝不得已歸天宮吉畢

<영제迎帝>는 <보인普仁>을 태자비로 하고 신궁에서 길례를 치루고자

제와 함께 깨끗하게 하기를 원하니 제는 부득이 천궁으로 돌아와 길례를 마쳤다.

 

復幸剡臣家愛碧花宴群臣

다시 <염신剡臣>가에 행차하여 <벽화碧花>를 사랑하고 신하들에게 주연을 베풀었다. 

 

群臣皆賀新宮 請入暖宮許之

신하들 모두는 신궁에서 하례하고 난궁(暖宮)으로 들이기를 청하니 이를 허락하였다.

 

乃以碧我及郎主暖政

이에 <벽아碧我>와 <위화>랑이 난궁의 다스림을 주관하였다.

 

 

24. <모진慕珍>의 침신(枕臣)이 된 <위화魏花>

 

時慕珍宮交結豪傑 欲行大志有智囊 阿時說之曰 帝寵傾于暖宮可拜于碧我魏花

이때 <모진慕珍>궁은 호걸과 서로 결합하여 큰 뜻을 펼치고자

지혜가 많은 사람을 모으니 <아시阿時>가 이를 설명하며 말하였다.

"제의 총애가 난궁에 기울었으니 <벽아碧我>와 <위화魏花>에게 절함이 옳습니다."

 

慕珍宮與妃善知每謁帝于暖宮 拜帝及碧花于床下祝福 次拜碧我又拜魏花郎

<모진慕珍>궁과 비(妃) <선지善知>가 매번 난궁에서 제를 알현하고

평상 아래에서 복을 빌며 제와 <벽화碧花>에게 절을 하고 다음으로 <벽아碧我> 또 <위화魏花>랑에게 절 하였다.

 

 郎告于剡臣公 公曰 慕宮有天命而拜汝者 欲臣汝也

<위화>랑이 <염신剡臣>공에게 고하니 공이 말하였다.

"<모진>궁에게는 천명(天命)이 있으니 너에게 절 하는 것은 너를 신하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乃邀慕珍宮使碧我奉酒魏花以臣見之

이에 <모진慕珍>궁을 맞이하여 <벽아碧我>에게 술을 올리도록 하고 <위화魏花>를 신하로 하여 만나게 하였다. 

 

自是常侍左右宮 素愛郎美遂作枕臣

이로부터 항상 좌우궁을 모시니 <위화>랑의 아름다움을 평소대로 사랑하여 마침내 침신(枕臣)이 되었다. 

 

起臥藉之郎奉之益恭宮寵之

일어나고 눕는 것을 도우며 <위화>랑이 받들어 더욱 공경하니 <모진>궁이 그를 총애하였다. 

 

愈密 口中 傳甘 眼中 授密 魚水 膠添 無以加也

더구나 몰래 입 속으로 달콤함을 전하고 눈 속으로 몰래 친밀함을 주니 더 이상 가까워 짐은 없었다.

 

剡臣公乃置慕珍堂于園中以邀之奉供

이에 <염신剡臣>공이 동산 가운데에 모진당(慕珍堂)을 세우고 그를 맞이하여 받들어 모셨다.

 

時帝沈臥暖宮 政事都在天宮副君

이때 제는 난궁(暖宮)에서 누워 자니 정사(政事)는 천궁의 부군(副君)에게 있었다. 

 

未幾帝崩于暖宮

얼마 되지 않아 제가 난궁(暖宮)에서 붕하였다. 

 

薦上碧花自知罪重 而欲殉于帝

상에게 천거된 <벽화碧花>는 스스로 죄가 중대함을 알고 순사코자 하였다.

  

碧我止之曰 腹中之兒貴莫大何自棄而不報帝恩乎

<벽아碧我>가 이를 막으며 말하였다.

" 배 속의 아이의 귀함이 막대한데 어찌 스스로 버려 제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으려 하는가?"

 

碧花乃以素衣待罪

이에 <벽화碧花>는 소복으로 대죄하고 있었다. 

 

迎帝天后乃與副君行祥登宝位 而命碧花退居剡臣公家 不賜骨品

이에 <영제迎帝> 천후와 부군이 보위에 등극하여

<벽화碧花>에게 명하여 <염신剡臣>공 집으로 퇴거토록 하고 골품을 내리지 않았다.

 

故不敢朝賀行祭 碧我憐之慰以歌舞

그런 연유로 감히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조하를 받지 못하니  <벽아碧我>가 이를 가련히 여겨 가무로 위로하였다.

 

慕珍宮累至送郎請見花拒之 不得遂與相見

<모진慕珍>궁이 누차 <위화>랑을 보내어 만나기를 청하였으나

<벽화>가 거절하여 만나지 못하다가 마침내 서로 만났다.

 

宮悅其色而欲通之 碧我亦勸與之 偕而不聽

<모진>궁이 그 색(色)을 좋아하여 통정코자 하니 <벽아碧我> 역사 이를 권하였으나 모두 듣지 않았다. 

 

宮乃宿于碧我而不去

이에 <모진>궁이 <벽아碧我>에게 자면서 가지 않았다.

 

遂濡於碧我娠女曰堯花

마침내 <벽아碧我>를 적시어 딸을 임신하니 이름이 <요화堯花>이다.

 

모진(벽아) - 요화(500?- ) 

 

時宮好 內荒巡遊骨女如 宝兮肜肜妙梁等

이때 <모진>궁은 내실과 황음함을 좋아하여  골녀 <보혜宝兮>, <융융肜肜>, <묘량妙梁> 등과 다니며 놀았다.

 

습보(오수) - 보혜(460-517)

질지(?) - 융융(470?-523)

자비(미량) - 묘량(467- )

 

皆媚于宮生子

모두 <모진>궁에게 아첨하여 자식을 낳았다.

 

宮每與阿時魏花宿于諸家 莫有敢拒

<모진>궁은 매번 <아시阿時>와 <위화魏花>와 함께 여러 집에서 잤으나 감히 막지 못하였다.

 

선모(보혜) - 아시(481- )

  

 

25. 태자로 책봉받는 <모진>과 국선(國仙)이 된 <위화>와 원화(源花)가 된 <벽화>

 

翌年四月 迎帝天后廢前太子芬宗爲殿君 以慕珍宮爲太子

以芬宗兄淨凰爲太子妃 魏花郞比梁爲太子左右枕臣

다음 해 4월 <영제迎帝> 천후가 전(前) 태자 <분종芬宗>을 폐하여 전군(殿君)으로

<모진慕珍>궁을 태자로 <분종芬宗>의 누나 <정황淨凰>을 태자 비로

<위화魏花>랑과 <비량比梁>을 태자 좌우 침신(枕臣)으로 하였다.

 

비처(후황) - 정황(486- )

비지묘량) - 비량(488- )

 

太子乃召碧我碧花入太子() 碧花知不能自守 乃薦于太子寵隆誓以同穴

이에 태자가 <벽아碧我>와 <벽화碧花>를 불러 태자궁에 들어오게 하니

<벽화碧花>는 스스로 지킬 수 없음을 알고 태자에게 천거되어 융성한 총애를 받고 같이 묻히기를 명세하였다.

 

迎帝聞之賜以牧丹花衣

<영제迎帝>가 이를 듣고 모란꽃을 수놓은 옷을 내렸다.

 

自是太子累幸碧我母女 郎寵益加 事無不成 言無不聽

이로부터 태자는 누차 <벽아碧我> 모녀를 잠자리 시중을 들게하여

<위화>랑을 총애함이 점점 더하니 안 되는 일이 없고 듣지 않는 말이 없었다.

 

是年八月 太子以金寶二十彩飾 魏花郞以主嘉俳 其美古今無雙

이해 8월 태자가 금보(金寶) 20가지 빛깔로 장식하고  <위화魏花>랑이 주관하여 가배를 행하니 

그 아름다움은 고금에 견줄 만한 짝이 없었다.

 

骨女爭獻新錦 以拜之 皆言白羊神復來 欲見者雲集

골녀들이 다투어 새 비단을 바치고 절하니

모두가 백양신(白羊神)이 다시 왔다고 말하고 보고자 하는 사람이 구름처럼 모였다.

 

獻錦者列于前而歌之名曰前方

獻痲者列于其後而歌之名曰後方

비단을 바치는 자들이 앞에서 줄을 서서 노래하니 이를 전방(前方)이라 하고 

삼베를 바치는 자들이 그 뒤에 줄을 서서 노래하니 이를 후방(後方)이라 하였다.

 

郎散花而舞於其中 得其花者榮之 名曰白中

<위화>랑이 꽃을 뿌리며 그 가운데서 춤을 추고 그 꽃을 받은 자는

이를 영광으로 여기니 이를 백중(白中)이라 하였다.

 

白者花也 言花中於己也

백(白)은 화(花)이고 중(中)은 가슴에 단 꽃이다. 

 

白中皆設宴于其家邀郎壽之名曰奉花

가슴에 꽃을 단 모두는 그 집에서 잔치를 열어 <위화>랑을 맞이하여 그 장수를 비니 이를 봉화(奉花)라 하였다.

 

年中不絶奉花之女多 被太子寵嫁于權門

년중 끊어지지 않고 봉화(奉花)하는 여자들이 많아 태자의 총애를 받고는 권문(權門)에 출가하였다.

 

故白中女不惜金錢 而歡徒 歡徒者以酒食衣帛接待郎之徒屬也

그런 연유로 백중(白中)의 여자는 금전을 애석해 하지 않고 무리를 환영하였고

무리를 환영하는 자는 술과 음식과 옷과 비단으로 <위화>랑을 접대하니 그 무리들은 <위화>랑에 속하게 되었다.

 

初 順實公 統合諸徒 推上 日 ??歷 好淵 末厚 至妙心

처음에 <순실順實>공이 여러 선도를 통합하여 상에게 추천하며

<호연好淵>과 <말후末厚>, <묘심妙心>까지의 이력을 말하였다. 

 

심(보반) - 호연(397-466)

눌지(신루) - 말후(433-487)

삼고위(나연) - 묘심(440?-488)

 

妙心美 而骨微學德 且非首望 而芊山力推之

<묘심妙心>은 아름다우나 골이 미천하고 학문과 덕이 있으나

오히려 우두머리가 되지 못하니 <간산竿山>이 힘써 이를 추천하였다.

 

時羊徒多推剡臣公 馬徒多推翁文郞 相抗妙心

이때 양도(羊徒)는 많은 사람이 <염신剡臣>공을 추천하고

마도(馬徒)는 많은 사람이 <옹문翁文>랑을 추천하여 서로 <묘심妙心>과 대항하였다.

 

새문(동보) - 옹문(463- )

 

竟以天宮地宮之勅得立順之者爲妙心徒不順者各歸

마침내 천궁과 지궁의 조칙으로 순종하는 자를 세우도록 하니

<묘심妙心> 무리들 중 순종하지 않는 자는 각각 돌아갔다.

 

以此羊徒多從剡臣公 發妙心之奸 以功多入靑雲 欲奉剡臣公爲日仙 帝亦許之

이로써 양도(羊徒)는 많은 사람이 <염신剡臣>공을 따르고

<묘심妙心>의 간사함을 고발하여 공을 세운 많은 사람은 높은 벼슬에 올라

<염신剡臣>공을 일선(日仙)으로 받들고자 하니 제가 이를 허락하였다.

 

而上仙章伊公止之曰

상선(上仙) <장이章伊>공이 이를 저지하며 말하였다.

 

보해(보미) - 장이(425-490) 

 

汝學不及眞仙俊登太子 汝欲爲太子而奉徒則可也

別立則有妙心之轍 汝父白兄以汝托我 汝乃我子也

濁亂之餘不可 使汝繼也

" 너의 학문은 진선(眞仙) <준등俊登>태자에 미치지 못하니 너가 태자를 위하여 무리를 받드는 것이 옳다.

특별히 세우고자 함은 <묘심妙心>의 전철을 밟는 것이다.

너의 아버지와 맏 형이 너를 나에게 맡겼으니 너는 곧 나의 아들이다.

혼탁하고 어지럽힘이 남아 있으니 옳지 않아 너가 계승토록 한 것이다."

 

지도로(파호) - 준등(459-494)

 

剡臣公乃以章伊公言奏之帝曰 方今之仙惟此叔父而已乃廢日月仙

이에 <염신剡臣>공이 <장이章伊>공의 말을 상주하니 제가 말하였다.

" 바야흐로 지금의 선(仙)은 이 숙부가 이미 이루었으니 이에 일선(日仙)과 월선(月仙)을 폐한다."

 

命內外仙巫 皆宗章伊公 仙徒 素服 其德 咸願 戴之

나라안팎 선무(仙巫)에게 명하여 모든 종(宗)을 <장이章伊>공으로 하니

선도는 소복으로 그 덕을 기리고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그를 받들었다.

 

而固辭不受曰 十四之數當見白羊花 汝等奉之 吾今受之 誰能繼十四之數乎

<장이>공이 고사하며 받지 않고 말하기를

" 14의 운수에 백양(白羊)의 화(花)를 만날 것이니 너희들은 이를 받들어아 한다. 

내가 자금 이를 받으면 누가 14의 운수를 이을 수 있겠는가? 라고 하며

 

仍謂剡臣公曰 汝雖多慾福在汝兒 今後十四年而發至是

<염신剡臣>공에게 일러 말하기를

" 너는 비록 많은 복을 바라나 너의 아이에게 있다. 지금 부터 14년 후에 일어난다." 라고 하였다.  

 

果驗仙徒之趨赴者甚衆皆賀于剡臣公曰 國仙出矣

과연 효험이 있어 뵈러 간 선도들이 매우 많이 모이고 모두가 <염신剡臣>공에게 축하하며 말하였다.

" 국선(國仙)이 나타났다." 

 

公大喜曰 吾以順祖白父之子得此兒 可以歸見祖先而不愧

공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 나는 <순실> 할아버지와 큰 아버지의 아들로 이 아이를 얻었으니

돌아가 부끄럽지 않게 먼저 할아버지를 뵙는 것이 옳다," 라고 하며

 

乃大享仙徒五千人七日 宣登公亦享之五日

선도 5천명을 7일간 크게 접대하니  <선등宣登>공 역시 5일간 이를 접대하였다.

 

郎命大振年才十五

<위화>랑의 운이 크게 떨치니 나이 겨우 15살이었다.

 

지증왕 2년 501년이다.

 

金官阿羅等皆遣使納幣

금관과 아라 등이 모두 사신을 보내어 납폐(納幣)하였다.

 

太子命賜郎徒衣食置仙院 皆令東宮宅師營之

태자가 낭도에게 옷과 음식을 내리고

선원(仙院)을 설치하여 모든 령을 동궁 택사(宅師)가 내리도록 하엿다.

 

以猪君昭牛之裔胡滿爲徒頭 以治徒衆階其徒十二 以德授秩無相㪰雜

<저군猪君>과 <소우昭牛>의 후예인 <호만胡滿>을 도두(徒頭)로 하고

낭도를 12계급으로 하여 다스리도록 하여 덕으로써 가르쳐 난잡함이 없도록 하였다.

 

太子亦數出院視徒

태자 역시 수시로 선원에 나가 낭도들을 살펴보았다

 

徒衆願奉碧花爲源花太子許之

낭도들이 <벽화碧花>를 원화로 받들기를 원하니 태자가 이를 허락하였다.

 

時仙院成於凉宮之側 故太子與碧花出居凉宮 以督仙政

그 때 선원(仙院)이 양궁(凉宮) 곁에 완공되어 태자와 <벽화碧花>가 양궁(凉宮)에서

출입하고 거주하며 선정(仙政)을 감독하였다.

 

宣登之光院 芬宗之勝院 皆隣接 故亦出仙院 講論眞經 謂之眞談

<선등宣登>의 광원(光院)과 <분종芬宗>의 승원(勝院) 모두 인접하여서

또한 선원으로 나가 진경(眞經)을 강론하니 이를 일러 진담(眞談)이라 하였다.

 

太子與碧花亦或親臨 下問能善對者賞用之

태자와 <벽화> 또한 간혹 친히 왕림하여 하문하여 잘 대답하는 자에게 상을 주었다.

 

天下之能言仙() 皆聚仙院 爭以其道進之

천하의 선(仙)을 말하는 자 모두가 선원에 모여 다투어 그 도(道)를 올렸다.

 

太子使宣登採其善否 苟有一枝一能

雖曰鷄鳴狗吠之類 亦皆賜祿以養其才

태자가 <선등宣登>을 시켜 한 가지에 한 능력이 있는지,

비록 하찮은 말이라도 진실로 잘하고 못함을 가려내도록 하고 또한 녹봉을 내려 그 재능을 양성토록 하였다. 

 

郎 多才所得諸術以百計 而有若不知 衆皆服 其德

<위화>랑은 재능이 많아 여러 계략을 얻어 백 가지 계책으로 하니

만약 알지 못하면 여러 사람을 덕으로 복종시켰다. 

 

有以瑤草 進者 其術 未精

기화요초로 나아가고자 하는자는 그 계략이 정(精)에 달하지 못하였다

 

() 若用汝言則 草不可生 若欲草生則 汝不可食

奈何 草人乃眠退究 其業 十年而復進方稱旨

<위화>랑이 말하였다. 

" 너의 말대로 한즉 풀이 자라지 않고 풀이 자라도 너는 먹지 못한다.

초인(草人)은 그 직업을 십년 잠을 자지 않고 연구하여도 어찌 다시 나아가겠는가?"

 

故術士不敢以年幼欺郎

그런 연유로 술사(術士)는 감히 어리다고 <위화>랑을 속이지 못하였다.

 

各進其精 輒一見聞 而解之 若熟知 莫不服 其才 曰固 天仙 非人才也

각 자 그 정(精)으로 나아가니 문득 한번 보고 들어도 그것을 이해하여 외우며

그 재능에 복종하며 단단히 말하기를

"천선의 재능은 인간의 재능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26.  <벽화> 원화정의(源花淨儀)를 행하다.

 

玄駒四月丑日 仙徒奉碧花于仙院眞殿 奉太子于仙院元殿 行源花淨儀

현구(玄駒){502} 4월 축(丑)일 선도들이 <벽화碧花>를 선원 진전(眞殿)에서 받들고

태자를 선원 원전(元殿)에서 받들어 원화정의(源花淨儀)를 행하였다. 

 

郎主其事 有節次皆合規矩

<위화>랑이 그 일을 절차있게 주관하니 모두 규율에 맞았다.

 

觀者歎服其神其儀曰 是日 太子與妃碧花娘主 幷騎白神馬入仙院水宮

관람하는 자들이 그 신(神)과 그 원화정의(源花淨儀)에 탄복하며 말하였다.

"오늘 태자와 태자비 <벽화>낭주가 나란히 백신마(白神馬)를 타고 선원 수궁(水宮)으로 들어 오셨다."

 

여기서 신(神)은 태자 <모진>을 말하고 원화정의는 <벽화> 원화를 말한다

 

各服羽衣霓裳 出就眞元殿 郎具仙冠仙服加以二十彩 率徒朝見納拜獻身 奉歌奏樂

각 자 우의예상(羽衣霓裳)을 입고 진전(眞殿)과 원전(元殿)을 나와 나아가니

<위화>랑이 20가지 채색을 더한 선관(仙冠)과 선복(仙服)을 구비하여

낭도를 인솔하여 와서 만나 뵙고 절을 드리고 노래와 연주를 올렸다. 

  

上言 惟我 太平 千歲 聖骨太子 眞仙 元元花士 慕珍宮 殿下 康寧 通明 太子 曰神 休 仙徒 五拜

오직 우리의 성골태자 진선(眞仙) 원원화사(元元花士) 모진궁 전하께서는  

강녕(康寧)과 통명(通明)으로 태평 천세를 누리소서 라고 올리니

태자 일신(曰神)은 쉬고 선도들은 오배(五拜)를 올렸다.  

 

又上言 惟我 太平 千代 聖骨太子 慕珍宮 第三妃 源花 碧花宮娘主 康寧 理明

또 오직 우리의 성골태자 모진궁의 제 3비 원화(源花) <벽화>궁 낭주께서는

강녕(康寧)과 이명(理明)으로 태평천대를 누리소서라고 올렸다. 

 

碧花曰 太子在我仙徒四拜奏樂

<벽화>가 말하기를

" 태자는 나에게 있으니 선도는 사배를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라." 라고 하였다.

 

太子源花就玉座共坐下言 吾花郞吾仙徒均霑仙雨得無憂苦

태자와 원화가 옥좌로 나아가 함께 앉아 말씀을 내리시기를

" 내 화랑, 내 선도는 고루고루 선의 비를 적시어 근심과 괴로음이 없음을 이룰지어다." 라고 하니

 

仙徒皆伏奏達如天聖恩歡喜在身

선도들 모두는 엎드려 하늘과 같은 성은과 환희를 입었음을 아뢰었다. 

 

郎跪 奉仙茶 于太子源花 而俯伏 奏達歡天欣地敢上仙茶太子與妃交茶

위화랑이 무릎을 꿇고 태자와 원화에게 선다(仙茶)를 올리고

엎드려 하늘의 흔감과 땅의 과감을 환호하여 아뢰고

상선(上仙)이 태자와 비(妃)에게 교대로 다(茶)를 올렸다.

 

仙徒齊歌而郎舞之其歌曰 我太子我妃宮是眞仙是源花 眞仙兮源花兮

千秋萬歲 長相樂 四海八方 共太平

선도들이 가지런히 노래하고 위화랑이 그 노래에 춤을 추며 말하기를

"우리 태자 우리 태자비는 진선(眞仙)이시고 원화(源花)이시다. 

진선(眞仙)이시여! 원화(源花)이시여!

천추만세를 누리시고 사해팔방을 두루 태평하게 하시어 오래토록 서로 즐기소서"

 

太子答歌曰 吾花郞吾仙徒皆我股肱 爲國柱爲我夫妻 皆有福妃爲之起舞座上

태자가 화답하여 노래하며 말하기를

"우리 화랑 우리 선도 모두는 나의 팔 다리이니 우리 부처(夫妻)를 위하여 나라의 기둥이 되라.

모두들 복이 있으니 비(妃)를 위하여 춤추도록 하라"

 

賜仙徒序坐堂下 下茶食 郎及徒頭有司賜坐堂上 下茶食有次

당하에 앉아 있는 선도들에게 차례로 차와 음식을 내리고

<위화>랑과 당상에 앉아 있는 대두와 유사에게 차례로 차와 음식을 내렸다. 

 

畢徒頭下堂伏地奏曰 臣等當此佳日 請行源花淨儀上下共樂

마침내 대두가 당하에서 땅에 엎드려 아뢰기를

" 신(臣)들은 마땅히 이 좋은 날 원화정의를 상하와 같이 즐기시기를 청하옵니다." 

 

太子辭之 郎就前跪請再三 乃許

태자가 이를 사양하니 위화랑이 무릎을 꿁고 앞으로 나아가 재삼 청하니 허락하였다.

 

妃乃還水宮 換着牧丹花衣 施臙脂 太子與郎上樹王壇 取花枝

이에 비(妃)는 수궁으로 돌아가 모란꽃을 수놓은 옷으로 갈아입고 연지를 바르고

태자와 위화랑과 함께 수왕단(樹王壇) 위에서 꽃가지를 꺾었다.

 

還御元殿玉座 妃自水宮還御眞殿金座

태자는 원전(元殿)으로 돌아와 옥좌(玉座)에 앉고

비(妃)는 수궁으로부터 돌아와 진전(眞殿) 금좌(金座)에 앉았다.

 

仙徒奉歌奏樂 郎以玉盤盛璋璧奉于妃宮四拜

선도들이 노래와 악기를 연주하니 위화랑이 옥쟁반에 옥홀(璋)을 가득 담아 비(妃)에게 네번 절하고 올렸다. 

 

妃宮受之步詣太子前獻之再拜 太子受之而以花枝授妃 妃受之

비(妃)는 이를 받아 태자 앞으로 걸어 가 두번 절하고 이를 바치니

태자는 이를 받고 꽃가지를 비(妃)에게 주니 비(妃)가 꽃가지를 받았다.

 

郎奉歌曰 萬物之中人爲花 萬人之中仙爲花

今我太子仙之眞 今我妃宮花之源 源花抱璧拜眞仙 眞仙授花抱源花

위화랑이 노래하며 아뢰기를

" 만물중엔 사람이 꽃이며 만인중엔 仙이 꽃이다.

지금 우리 태자는 仙의 眞이며 우리 비(妃)는 花의 源이다.

源花가 옥구슬을 안고 眞仙에게 절하니 眞仙은 꽃을 주고 源花를 포옹하네"

나무의 결정체는 꽃이고 빛의 결정체는 밝음이다.

만물 중에서는 사람이 그 결정체이고 사람의 결정체가 仙이다

그 仙의 결정체가 神인 것이다.

태자는 만인의 으뜸인 진선(眞仙)이고 벽화는 만물의 으뜸인 원화(源花)이다.

 

502년 4월에 <벽화>가 원화정의를 통하여 처음으로 원화(源花)가 되었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자 하는 것이고 사람은 仙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며 仙道는 神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太子乃抱妃而舞妃上

이에 태자는 일어나 비(妃)를 안고 춤 추었다.

 

太子肩上弄花枝而舞 仙徒一齊奉歌如辭 歡極而下

태자의 어깨 넘으로 농염한 꽃가지가 춤추고 선도들도 일제히 노래하니 즐거움이 극에 이르렀다.

 

郎獻仙酒 太子與妃交酒 郎起舞仙徒奉歌如初辭

위화랑이 선주(仙酒)를 바치니 태자와 비가 교대로 술을 마시고

위화랑이 일어나 춤을 추니 선도들이 처음 말대로 노래를 불러 올렸다.

 

太子答如初賜坐堂上下 下酒食命盡歡

태자는 처음과 같이 답하고 당상 당하에 술과 음식을 내리고 마음껏 즐기라고 하였다.

 

太子召徒頭以下有司於玉座之下 命妃親賜酒 命郎親賜仙徒酒

태자는 대두이하 유사를 옥좌의 아래로 불러

비(妃)가 친히 술을 따르게 하고 위화랑에게도 친히 술을 따르게 하였다.

 

乃山呼千秋 太子抱妃入眞殿玉帳

이에 천추만세를 부르니 태자는 비(妃)를 안고 진전(眞殿) 옥장(玉帳)으로 들어갔다.

 

仙徒奉歌奏樂帳下 而郎退仙徒皆下拜

선도들은 장막아래에서 노래와 악기를 연주하고 위화랑은 선도들 모두에게 하배(下拜)하고 물러났다.

 

有司進遊花行酒醉舞達夜歌聲不絶

유사들은 꽃놀이와 술에 취해 밤이 되도록 춤을 추며 노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