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지도로智度路>공과 <영제迎帝>의 만남
先是帝愛從弟智度路公 求其妃 剡臣公以從妹迎帝薦之
이에 앞서 (비처)제(帝)는 종제(從弟)인 <지도로智度路>공을 아끼어
그 비(妃)를 구(求)하였는데 <염신剡臣>공이 종매(從妹)인 <영제迎帝>를 천거했다.
눌지(아로,효진) - 자비慈悲(414-479)
조생鳥生(418-487)
미해(자아) - 파호巴胡(420-482)
보해(성명) - 습보習寶,보보아(420-485)
자비(파호) - 비처毗處(436-500)
습보(조생) - 지도로智度路(437-514)
등흔(모량) - 영제迎帝(463-525)
백흔(조리) - 염신剡臣(447-503)
<조생>은 <자비>의 동생으로 <비처(소지왕)>의 고모이다.
<지도로>는 <비처>보다 1살 어린 고종사촌 동생이다.
<등흔>과 <백흔>은 <청아>의 아들이다.
<영제>는 <염신>의 사촌동생이다
至是迎帝得上寵 登欣公入相秉政 智度路公與剡臣公爲右左之輔
이에 이르러 <영제迎帝>가 상(上)의 총애를 얻자 <등흔登欣>공이 재상(相)으로 들어와 정권을 잡고,
<지도로智度路>공과 <염신剡臣>공을 좌보(左輔)와 우보(右輔)로 삼았다.
帝命智度路公妹 元兮宮主爲剡臣公妻 行吉鮑祠
제(帝)는 <지도로>공의 누이동생 <원혜元兮>궁주를 <염신>공의 처로 하여 포사(鮑祠)에서 길례(吉)를 올리도록 명했다.
내숙(조생) - 원혜(462- )
登欣公爲白欣公曰剡兒雖少而敏吾無憂矣
<등흔登欣>공이 <백흔白欣>공에게 말했다.
“염아(剡兒)는 어리지만 영민(敏)하니 나는 걱정이 없다.”
白欣公與登欣公素篤友愛 至老㔫勤 每以朝夕團合以爲尤至樂
<백흔>공과 <등흔>공은 본래 우애가 두터웠는데 늙어가며 더욱 은근해져
매양 아침저녁으로 단합하는 것으로써 지극한 도락을 삼았다.
白欣公事兄如父 信其言故乃許剡臣公而不憂曰 吾有此子死亦足矣
<백흔>공은 형을 아버지처럼 섬겨 그 말을 신뢰하는 까닭에
마침내 <염신>공을 허락하고 근심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나는 이 아들을 가졌으니 죽어도 족하다.”라고 했다.
帝以酒食待 兩欣公 呼以叔父不名
제(帝)가 술과 음식으로 양 흔공(欣公)을 대접하는데 숙부(叔父)라 부르며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賜以豊車肥馬使乘府 供之恩渥最重
승부(乘府)로 하여금 풍차(豊車)와 비마(肥馬)를 하사하니 두터운 은혜가 최고였다.
毗帝二年金猿之仲春十日迎帝生智度路公子慕珍宮于牟梁宮
비처제 2년 금원(金猿:경신 480년)의 중춘(仲春:음력 2월) 10일에
<영제迎帝>가 모량궁(牟粱宮)에서 <지도로>공의 아들 <모진慕珍>을 낳았다.
지도로(영제,연제) - 모진(480-540) 23대 법흥왕 재위 514-539
帝親幸賜米
(비처)제(帝)가 친히 행차하여 쌀(米)을 내렸다.
登欣公謂白欣公曰 白羊神母曰兆在八十年者 正謂此兒也 吾與汝雖老不及剡兒則見之
<등흔>공이 <백흔>공에게 말했다.
“백양신모(白羊神母)가 말한 ‘조짐이 80년 밖에 있다’한 것은 바로 이 아이를 이른 것이다.
나와 너는 늙어서 비록 볼 수 없으나 염아(剡兒)라면 그를 보리라.”
白欣公乃召剡臣公戒之
<백흔>공이 이에 <염신>공을 불러 그를 경계시켰다.
剡臣公以此 知天命之所歸 終始保護智帝 竟以副君受禪寶祚歸于慕珍宮 殆天授非人力也
<염신>공이 이로써 천명(天命)이 돌아갈 바를 알고
시종(終始) <지증>제를 보호하여 끝내는 부군(副君)으로써 선양을 받고
보조(寶祚)가 <모진慕珍>궁에게 돌아갔으니 거의 하늘이 내려주심이요 인력(人力)이 아니었다.
後三年水狗七月
후 3년(소지왕 4년) 수구(水狗:임술 482년) 7월,
白欣公以大等伊湌卒于仙院
<백흔白欣>공이 대등이찬(大等伊湌)으로써 선원(仙院)에서 졸(卒)하였다.
翌年二月登欣公及助里宮主薨 帝皆厚葬之
이듬해 2월에는 <등흔登欣>공과 <조리助里>궁주가 훙(薨)하였는데 제(帝)는 모두 후하게 그를 장사지냈다.
超授剡臣公波珍湌 命行稟主事
<염신剡臣>공에게 파진찬(波珍湌)을 제수(超授)하고 품주(稟主)의 일(事)을 행하도록 명했다.
翌年宝美宮主薨
이듬해 <보미宝美>궁주가 훙(薨)하였다.
보미(404-485)는 기림왕 5년(368)에 신라에서 왜로 건너가 인덕천황의 妃가 된 水皇(355?- )의 손녀로
419년 <박제상>이 왜로 가서 <미해>를 구출할 때 함께 신라로 돌아온 궁주이다.
剡臣爲牟梁宮欲立大元祠 與毗己不合而免出按京外獄事
<염신剡臣>이 <모량牟粱>궁을 위하여 대원사(大元祠)를 세우고자 했으나
<비기毗己>와 불합하여서 면출(免出)되고 경외옥사(京外獄事)를 안핵(按)하개 되었다.
눌지(파호) - 비기毗己(445-504)
<비기>는 <비처(소지왕)>의 異父同母弟이다.
13. <염신剡臣>과 <벽아碧我>의 만남
翌年到捺己
이듬해에 날이(捺已)에 당도했다.
날이는 지금의 경북 영주이다.
捺己古有月碧太后祠 乃召文之聖后也
날이(捺已)는 옛날에 월벽태후사(月碧太后祠)가 있었는데 곧 소문(召文)의 성후(聖后)이다.
其王孫世守而貧不能自存
그 왕손(王孫)이 세세로 수묘하다가 가난하여 스스로 먹고 살 수 없게 되었다.
富戶遜同見王孫之女碧我之美 願以千牛易之爲妻 王孫許之 生女曰碧花
부호(富戶)인 <손동孫同>이 왕손(王孫)의 딸 <벽아碧我>의 아름다움을 보고는
천마리 소(千牛)와 바꾸기를 원하자 왕손(王孫)이 그를 허락하였는데 딸을 낳아 <벽화碧花>라고 하였다.
벽망(벽회) - 벽씨
식진(벽씨) - 벽아(469-526)
손동(벽아) - 벽화(485- )
염신(벽아) - 위화(487- )
<벽아>는 소문국 <월벽>태후의 후손이며 왕손(王孫)은 <식진息晉>을 말한다.
或曰遜同與王孫賭以奪之 及生碧花以千牛幣之
혹은 <손동孫同>이 왕손(王孫)과 도박으로 그녀를 빼앗은 것이고
<벽화碧花>를 낳자 소 천마리로 납폐(納幣)한 것이라고도 한다.
碧花生才五月遜同暴死
<벽화碧花>가 태어나고 겨우 5달만에 <손동孫同>이 급사하였다.
同異父弟 波路素與同嫡妻相通
<손동孫同>의 이부제(異父弟)인 <파로波路>는 평소 <손동孫同>의 적처(嫡妻)와 상통(相通)하고 있었다.
嫡妻乃迎波路爲繼夫 有其財而欲逐碧我母女
적처(嫡妻)가 마침내 <파로波路>를 맞이해 계부(繼夫)로 삼아 그 재산을 차지하고서
<벽아碧我> 모녀를 쫓아내고자 하였다.
波路慕碧我 仍爲之副妻而不逐
<파로>가 <벽아>를 사모하여 그대로 그녀를 부처(副妻)로 삼고 쫓아내지 않았다.
嫡妻怒使其子告于官曰 波路??其兄而取其妻財
적처(嫡妻)가 노하여 그 아들로 하여금 관청(官)에 고발하여 말하기를
“<파로>가 그 형을 독살(鴆)하고 그 처(妻)의 재산을 취했다.”고 했다.
吏知其誣而欲奪其財 及碧我强成其獄將誅之
관리는 그 무고(誣)임을 알자 그 재산과 <벽아>를 빼앗을 욕심으로 강제로 그 옥사(獄)를 성립시키고 장차 죽이려 했다.
吏謂碧我曰 汝爲我妾則當赦汝罪 碧我不得已許之 歸欲自盡
관리가 <벽아>에게 이르기를
“네가 내 첩이 되면 마땅히 네 죄는 사면할 것이다.” 라고 하니
<벽아碧我>가 어쩔 수 없어 그를 허락하고 돌아와서 자결(自盡)하려하자
侍女止之曰 今按使到郡 可詣訴之
시녀가 그를 만류하며 말했다.
“지금 안사(按使)가 군(郡)에 당도했다하니 그를 찾아 호소할 수 있습니다.”
碧我乃與侍女訴于途中 公乃黜其吏
<벽아碧我>가 마침내 시녀와 더불어 도중(途中)에서 공을 만나 호소하니 공(公)이 그 관리를 내쫓았다.
波路感恩願以碧我爲婢 公欲辭之 碧我曰 生不能奉供不若死以爲護鬼而報恩
<파로波路>가 은혜에 감동하여 <벽아>를 비녀(婢)로 삼아줄 것을 원하자 공(公)이 사양하려하니 <벽아>가 말했다.
“살아서 봉공할 수 없다면 죽어서 호귀(護鬼)가 되어 보은하는 것만 못합니다.”
公憐其志 命載後車而歸
공(公)이 그 뜻을 가련히 여겨 뒷수레(後車)에 태우도록 명하고 돌아왔다.
時公有正妻元兮宮主 副妻翠凰宮主 各有茅宅枕婢不可容
당시 공(公)은 정처 <원혜元兮>궁주와 부처 <취황翠凰>궁주가 각각 모택과 침비(枕婢)가 있어 용납이 불가하였다.
乃私立小院命居之
이에 사사로이 작은 원(院)을 세워 그곳에 거처하도록 명했다.
碧我乃禱子于樹王曰 生子則報恩萬世 身供只限一生
<벽아碧我>가 곧 수왕(樹王)에게 아들을 기원하며 말하기를
“아들을 낳은즉 만세에 보은함이니 이 몸의 봉공은 단지 한번 낳음에 한할 뿐입니다.”
公爲合其歡 果夢 赤兎仙官 乘彩雲 而下降 授玉劍 而去
有紫金書曰 魏華玉耶拔之 光明大射 異香滿濕
공(公)이 그 합환(合歡)하였는데 과연 꿈에 적토선관(赤兎仙官)이
채색구름(彩雲)을 타고 하강하여 옥검(玉劍)을 주고 가거늘 자금서(紫金書)가 있어 이르되
“위화옥야(魏華玉耶)가 그것을 뽑는다.”라 하고 광명이 크게 쏟아지며 이상한 향내가 가득 스며드는 것이었다.
公大奇之曰 必生貴子卽 進其秩爲暖房 置奴婢而供之
공(公)이 그를 크게 기이하게 여기고 말하기를
“반드시 귀한 자식을 낳으리라.”하며 즉시 그 품계(秩)를 높여 난방(煖房)을 삼고 노비(奴婢)를 두어 그녀를 받들게 하였다.
果以翌年赤兎之午月卯日生玉男 面如白玉 唇若赤脂
과연 이듬해 적토(赤免;정묘 487년)의 5월(午月) 묘일(卯日)에 옥남(玉男)을 낳았는데
얼굴은 하얀 백옥(白玉)과도 같고 입술은 마치 붉은 연지를 칠한 듯하였다.
乃名魏花郞
이에 이름을 <위화魏華>랑이라 하였다.
염신(벽아) - 위화(487- )
14. <벽아碧我>, <비처毗處>의 후궁이 되다.
時日仙末厚夢見 順實郞見復生于剡臣家奏曰
今年大仙下降 明年雖有小邪 葺月城則除之
때에 일선(日仙) <말후末厚(433-487)>는 꿈에 <순실順實>랑이 <염신剡臣>의 집안에 다시 태어남을 보고 아뢰었다.
“금년에는 대선(大仙)이 하강하고,
명년에는 비록 작은 요사(邪)가 있을 것이나 월성(月城)을 수리하면 그를 제거(除)할 것입니다.”
눌지(신루) - 말후(433-487)
帝乃問其大仙 末厚乃以白盆盛水照之 有白雪亂下中
有一淨院 紫衣仙娥 抱玉兒 而出拜于帝 帝奇之
(비처) 帝가 이에 그 대선(大仙)이 누구인가 묻자
<말후末厚>가 곧 하얀 합(白盒)에 물을 가득 채워서 그를 비추니 백설이 어지럽게 내리는 가운데 한 깨끗한 원(院)이 있고
자의(紫衣)를 입은 한 선녀(仙娥)가 옥아(玉兒)를 안고 나와서 帝에게 절을 하는 것이었다.
帝가 그것을 기이하게 여겼다.
未幾 末厚上化 妙心代之
얼마 지나지 않아 <말후末厚>가 상화(上化)하자 <묘심妙心>이 그를 대신하였다.
삼고위(나연) - 묘심(450?-488)
其冬帝以雪夜 訪剡臣家 碧我抱魏花 而出拜 完如盆中所見
그 겨울에 帝가 눈 내리는 밤에 <염신剡臣>의 집을 방문했는데
<벽아碧我>가 <위화魏華>를 안고 나와 절을 하니 완연히 합(盒)안에서 본바와 같았다.
帝乃知其爲大仙 乃賜碧我爵品 而幸之
제(帝)가 이에 그 대선(大仙)임을 알고 <벽아碧我>에게 골품과 작위를 내리고 그녀를 행(幸)하였다.
累召宮中有寵 元兮翠凰等皆屈身 卑辭不敢以暖房侮之
누차 궁중에 불러들여 총애가 있자 <원혜元兮>와 <취황翠凰> 등이 모두 몸을 굽히고
언사를 겸손하게 하며 감히 난방(煖房)이라 하여 그녀를 깔보지 못했다.
15. <묘심妙心>의 난
時日仙妙心 爲天柱寺法 多亂骨女
이때 일선(日仙) <묘심妙心>은 천주사의 법(法)이 되어 골녀들을 음란함이 많았다.
元兮翠凰亦媚于妙心迎之設場
<원혜元兮>와 <취황翠凰> 역시 <묘심妙心>에게 교태를 부리고 그를 맞이 할 곳을 마련하였다.
비태(찬황) - 취황(465- )
妙心知碧我有寵于帝 欲引與之奸曰 我有媚道可以固寵
<묘심妙心>은 <벽아碧我>가 제에게 총애가 있음을 알고 그녀를 데려올려고 간사하게 말하였다.
"나에게는 미도(媚道)가 있어 총애를 굳게 할수 있다."
碧我知其詐而斥之曰 我乃宰相之妾也 帝寵非其分焉用媚道
<벽아碧我>가 거짓임을 알고 이를 배척하며 말하였다.
"나는 재상(宰相)의 첩으로 제의 총애를 얻고자 미도(媚道)를 사용하는 것은 본분이 아니다."
妙心不悅乃謂元兮曰 此女妖物若不逐出 三年之內必亡爾家
<묘심妙心>이 기뻐하지 않고 <원혜元兮>에게 말하였다.
"이 여자는 요물이니 만약 쫓아내지 않으면 3년내에 반드시 너의 집이 망할 것이다."
元兮信其言奏于剡臣公 公疑之問於碧我 碧我乃告妙心淫狀
<원혜元兮>가 그 말을 믿고 <염신剡臣>공에게 아뢰니 공이 이를 의심하여 <벽아碧我>에게 물었다.
이에 <벽아碧我>가 <묘심妙心>의 음란함을 고발하였다.
公素憎妙心儧亂骨女
공은 평소 <묘심妙心>이 골녀를 음란함을 증오하였다.
及聞元兮納媚大怒曰 奴汚吾妻罪不可赦也
이윽고 <원혜元兮>가 아첨하여 받아들여졌다는 말을 듣고 대노하여 말했다.
"더러운 종(奴)이 내 처에게 죄를 지었으니 용서할 수 없다."
公乃踈元兮 欲誅妙心
이에 공은 <원혜元兮>를 멀리하고 <묘심妙心>을 주살코자 하였다.
時善兮后亦酷愛妙心遂娠其女
이때 <선혜善兮>후 역시 <묘심妙心>을 몹씨 사랑하여 마침내 그의 딸을 임신하였다.
내숙(조생) - 선혜(459-518)
妙心以爲必生天子 后信其言 益愛妙心
<묘심妙心>이 반드시 천자(天子)를 낳을 것이라고 하니 그 말을 믿고 더욱 <묘심妙心>을 사랑하였다.
初智度路公女厚凰爲太子阿知妃
처음에 <지도로智度路>공의 딸 <후황厚凰>을 태자 <아지阿知>의 비로 하였다.
비처(치군) - 아지(463-483)
지도로(라황) - 후황(466-499)
阿知薨 受帝寵 進 爵璽宮 寵冠九宮 以此天宮久曠
<아지阿知>가 죽어 제의 총애를 받아 새궁(璽宮)의 작위를 받고 총애가 구궁(九宮)에서 으뜸으로
오래도록 비워둔 천궁(天宮)을 차지하였다.
妙心夜夜抱后而臥常言曰
<묘심妙心>이 밤마다 <선혜善兮>후를 안고 누워 항상 말하기를
朕實神帝而毗處邪氣也 汝以吾妻不除邪氣 此腹中天子無以貴也
"짐이 사실 신제(神帝)이고 <비처毗處>는 사악한 기운이다.
당신은 나의 처로 시악한 기운을 제거하지 못하니 이 복중(腹中)의 천자(天子)는 귀하게 되지 못 할 것이다."
善兮曰妾爲郎君不避水火 况爲吾腹之兒敢不如敎
<선혜善兮>가 말하기를
"첩은 낭군을 위하여 물불을 피하지 않는데 하물며 내 복중의 아이를 위해서 감히 가르침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妙心曰 吾臣有善刺者可入琴匣 使處宮中夜入琴匣置
汝枕頭待汝抱毗處 而臥出匣刺之秘 不發喪矯詔 召智度路毗已剡臣等悉誅之
而後乃以遺詔 立我爲天子 以汝爲皇后不亦好乎
<묘심妙心>이 말하가를
"내 신하중에 칼을 잘 찌르는 자가 있는데 금갑(琴匣)에 들어갈 수 있다.
궁중에 들여보내 밤에 금갑(琴匣)에 들어 가 당신의 침상 머리에 두어라
당신이 <비처毗處>를 안고 눕기를 기다렸다가 금갑(琴匣)에서 나와 비밀리에 찔러 죽일 것이고
발상하지 않고 거짓 조서로 <지도로智度路>와 <비이毗已>, <염신剡臣>등을 불러 모두 주살한 후
유조(遺詔)로 나를 천자로 당신을 황후로 세우면 역시 좋지 않겠는가?"
善兮聞之 乃懼曰 毗處荒於厚凰 不與我好固有罪矣 他皆我骨肉豈忍 多誅也
<선혜善兮>가 이를 듣고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비처毗處>는 <후황厚凰>에게 황음하여 나와는 사이가 좋지 않으니 죄가 있으나
다른 사람은 나의 골육인데 어찌 모두를 주살 하겠는가?
妙心知善兮之不忍 乃使其徒入衛天宮
<묘심妙心>은 <선혜善兮>가 차마 참지 못함을 알고 그 무리를 천궁 시위로 들어가게 하였다.
欲自行之期以上元夜天宮 初夕之時 帝幸天泉亭 有鵲亂噪相鬪
정월 대보름날 밤, 천궁(天宮)의 초저녁 일과시간에,
帝가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였는데, 까치가 시끄럽게 울며 서로 싸웠다.
命駐輦而搜之得書於池中曰 開見二人死不開一人死
가마를 잠시 멈추고 못 속에서 글을 얻어 받아보니
"개봉하면 두 사람이 죽고 개봉하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라고 쓰여 있었다.
帝謂剡臣曰 寧其二人死不若一人
제가 <염신剡臣>에게 일러 말하기를
" 두 사람이 죽는 것은 한 사람이 죽는 것 보다 못하다." 라고 하니
剡臣曰一人者君也 不開不可
<염신剡臣>이 아뢰기를
" 한 사람은 왕을 말합니다. 개봉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乃開視之 有夜入天宮 先射琴匣之語
이에 그것을 개봉하여 살펴보니
"밤에 천궁으로 들어 간 사람이 있으니 먼저 금갑을 쏘아라" 라고 적혀 있었다.
剡臣乃奏天宮荒淫之罪帝亦可之
이에 염신<剡臣>이 천궁의 황음의 죄를 아뢰니 제 역시 옳다고 하였다.
乃歸天宮 后不知而喜欲抱帝而媚 帝乃挽弓射枕頭琴匣
천궁으로 돌아가니 후는 알지 못하고 기뻐하며
제에게 교태를 부리고 제를 안고자 하니 활을 당겨 침상머리에 있는 금갑을 쏘았다.
血流出外 有人號呌而出
피가 바깥으로 흘러나오고 소리지르며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智度路與剡臣引兵入衛曳出匣人視之乃妙心奴也
<지도로智度路>와 <염신剡臣>이 시위 병을 인솔하여 들어와
금갑을 끌어내어 사람을 살펴보니 <묘심妙心>의 종(奴)이었다.
大搜宮中妙心以女服在蘭陵宮嬉戱曳出之 盡捕其徒下理方
궁중을 모조리 뒤지니 <묘심妙心>이 여복을 하고 난릉궁(蘭陵宮)에서 희희닥 거리며 놀고 있는 것을 끌어내고
이방(理方)에 이르기 까지 그 무리들을 모조리 체포하였다.
帝命剡臣公治之辭多連宮中 智度路公曰
제가 <염신剡臣>공에게 명하여 이를 치죄토록 하니
궁중의 많은 사람이 연관되어 있어 <지도로智度路>공이 말하였다.
二人者妙心與奴也 吾妹雖有罪天后也 刑不上於大夫 况天后乎 汝其止之
" 두 사람은 <묘심妙心>과 종이고 비록 내 여동생이 죄를 지었으나 천후이다.
형벌을 대부(大夫)에게도 올리지 않는데 하물며 천후이니 이를 막아야 한다."
剡臣公乃奏於帝曰 謀逆之事 天后實不知而嬖幸則有之
이에 <염신剡臣>공이 제에게 상주하여 이르기를
"역모의 사건을 천후는 사실 모르고 폐행(嬖幸)만의 짓입니다." 라고 하였다.
帝乃賜妙心死 命后出宮 蘭陵英陵亦皆坐事而出遂廢日月仙
이에 제는 <묘심妙心>에게 죽음을 내리고 후는 출궁토록 명하고
<란릉蘭陵>과 <영릉英陵> 모두는 역시 출궁하여 앉아서 죄를 기다리게 하고는
마침내 일선(日仙)과 월선(月仙)을 폐하였다.
16. <위화魏花>, <모진慕珍>을 군(君)으로 섬기다.
以璽宮厚凰爲天后 迎帝爲地后
새궁(璽宮) <후황厚凰>을 천후로 <영제迎帝>를 지후로 삼았다.
命智度路公攝行天子事 剡臣公與叔欣公爲左右輔 以運大政
<지도로智度路>공에게 천자(天子)의 일을 대행토록 하고
<염신剡臣>공과 <숙흔叔欣>공을 좌보와 우보로 하여 대정(大政)을 운영토록 명하였다.
帝忌舊宮之妖移居月城新宮
제는 구궁(舊宮)의 요사함을 기피하여 월성(月城) 신궁(新宮)으로 이거하였다.
迎帝生帝子山宗殿君與魏花郞同日
<영제迎帝>가 제의 아들 <산종山宗> 전군을 <위화魏花>랑과 같은 날에 낳았다.
<위화>랑과 <산종>이 태어난 해는 소지왕 9년 487년 음력 5월 5일 단오일이다.
이때 소지왕 비처 52세, 지도로 51세, 영제 25세, 벽아 19세, 모진 8세이다.
帝乃召碧我抱郎入宮 賜食衣寶
이에 제는 <벽아碧我>를 불러 <위화魏花>랑을 안고 궁으로 들어오게 하여 음식과 옷과 보물을 내렸다.
命碧我 乳山宗 故遂留宮中 山宗之山取於大仙也
<벽아碧我>에게 명하여 <산종山宗>에게 젖을 먹이도록 하였다.
그런 연유로 마침내 궁중에 머물면서 <산종山宗>의 山을 취하여 大仙이라 하였다.
帝謂迎帝曰 汝子當以汝兄之子爲臣而朕不及見也
제가 <영제迎帝>에게 일러 말하기를
" 너의 아들은 마땅히 너의 오빠의 아들로 신하이니 짐은 보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니
迎帝曰 妾等願以己年?獻于陛下 何患聖壽不長
<영제迎帝>가 말하기를
" 첩 등은 몸과 마음을 폐하에게 바치길 원하니 어찌 장수하심을 근심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니
帝嘉之言 命爵迎帝長子慕珍宮 爲山宗殿舍知曰
제가 그 말을 가상히 여겨 <영제迎帝>의 장자 <모진慕珍>궁에게 작위를 내리고
<산종山宗> 전군의 사지(舍知)로 삼으며 말하였다.
山兒之胞兄 智弟之冢子也 雖無吾妻之言 可以爵 况此嘉言 不可不報也
" <산아山兒>의 포형(胞兄) 지도로 동생의 적장자(冢子)이다.
비록 내 처의 말이 없더라도 작위를 내림이 옳은데
하물며 이토록 가상한 말을 듣고 보답하지 않음은 옳지 않다."
慕珍宮已八歲 天姿??成龍行 而虎步拜恩進退儼有威儀帝稱善曰 此子必碩吾邦
<모진慕珍>궁은 이미 8살로 천자의 자태를 지니고 천자의 행동으로 힘차고 씩씩하게 걸어나와 보은에 절하고,
나가고 물러남에 의젓하고 위엄이 있어 제가 칭찬하며 말하였다.
" 이 아들은 우리나라를 반드시 크게 할것이다."
命加奴婢 又謂碧我曰 汝子神仙也 必興原道以安吾邦
노비를 더하도록 명하고 또 <벽아碧我>에게 일러 말하기를
" 너의 아들은 신선(神仙)이니 반드시 원도(原道)를 일으켜 우리나라를 편안하게 할 것이다." 라고 하며
亦加奴婢 碧我乃謝于迎帝曰
역시 노비를 더하도록 하니 <벽아>가 <영제>에게 사양하며 말하기를
上德及臣子亦慕公之恩也
"상의 덕과 신의 아들 역시 모진공의 은혜입니다." 라고 하니
迎帝笑曰 吾子兄子皆上之臣也 均沾雨露何有私恩
<영제迎帝>가 웃으며 말하였다.
"나의 아들과 형의 아들 모두 상의 신하입니다. 은혜를 고루 받는데 어찌 사사로운 은혜가 있겠습니까?"
仍命慕珍宮拜見碧我曰 汝叔母也 有汝好弟可與親也
<모진慕珍>궁에게 명하여 <벽아碧我>를 보고 절하도록 하고 말하기를
" 너의 숙모이니 너는 동생을 좋아하여 친하게 지냄이 옳다."라고 하니
碧我驚避不敢受拜曰 臣是賤人安敢當禮慕珍宮
<벽아碧我>가 놀라 감히 절을 받는 것을 피하며 말하기를
"신은 천한 사람인데 어찌 예를 감당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乃抱魏花郞愛之曰 此吾花也
이에 <모진慕珍>궁을 안고 <위화魏花>랑을 사랑하며 말하기를
"이 아이는 나의 꽃(花)이다."
郎挽宮玉佩 宮卽 解而佩之曰 吾以此爵汝
<위화>랑이 <모진>궁의 옥퍠(玉佩)를 당겨 <모진>궁의 옥패가 풀어지니 말하기를
"내가 이것을 너에게 작위로 줄 것이다" 라고 하였다.
自是宮數往來碧我宅與郎遊
이때부터 <모진>궁은 수차례 <벽아碧我> 집을 왕래하며 <위화>랑과 놀았다.
時剡臣公長子元臣 少宮 七歲 元臣之妹越期帝女也
이때 <염신剡臣>공의 장자 <원신元臣> 소궁(少宮)은 7살이고
<원신元臣>의 여동생 <월기越期>는 제의 딸이다.
염신(원혜) - 원신(481- )
비처(원혜) - 월기(484- )
皆從郎遊尊宮爲君 而事之
모두가 <위화>랑을 따라 놀며 <모진>궁을 존중하며 군(君)으로 섬기었다.
17. <후황厚凰>의 아들 <분종芬宗>을 태자로 책봉하다.
天后生芬宗殿君 少山宗 七月 而帝酷愛之立 爲太子
천후가 <분종芬宗> 전군을 낳아 작은 <산종山宗>으로 하니 7월에 제가 그를 몹씨 사랑하여 태자로 하였다.
비처(후황) - 분종(488- )
命慕珍宮與元臣阿時等護太子
<모진慕珍>궁과 <원신元臣>, <아시阿時> 등에게 명하여 태자를 보호토록 하였다.
碧我方生剡花 亦入乳太子 魏花郞才三歲 能知禮節不敢抗太子 能盡臣道
天后嘉之告于帝曰
<벽아碧我>가 바야흐로 <염화剡花>를 낳아 역시 태자에게 젖을 먹이려 들어오니
<위화魏花>는 겨우 3살이지만 능히 예절을 알아 감히 태자를 막지 못하고 신하의 도를 다하니
천후가 이를 가상히 여겨 제에게 말하였다.
魏花吾兒之忠臣也
"<위화魏花>는 우리 아이의 충신입니다."
帝乃呼以赤心花賞以緋袴翠佩
이에 제가 (위화를) 적심화(赤心花)라 하고 붉은 바지와 비취색 구슬을 상으로 주었다.
時翠凰亦生剡臣子非西 入乳太子 非西多與太子爭乳
이때 <취황翠凰> 역시 <염신剡臣>의 아들 <비서非西>를 낳아
태자에게 젖을 먹이려 들어오니 <비서非西>와 태자가 젖을 먹으려고 많이 다투었다.
염신(취황) - 비서(489- )
이때 <위화> 3세, <분종> 2세, <비서> 1세이다.
天后問曰 太子汝君 非西汝弟 汝將爲誰 郎曰爲君
천후가 (위화에게) 묻고 말하였다.
" 태자는 너의 군(君)이고 <비서非西>는 너의 동생이다. 너는 장차 누구를 위할 것인가?
위화랑(郎)은 군(君)을 위할것이라고 말하였다.
天后曰 然則可笞非西乎 郎泣曰 臣弟無知臣 願代受其笞
천후가 "<비서非西>의 볼기를 치는 것이 옳다." 라고 하니 <위화>가 울면서 말하였다.
동생은 신하임을 알지 못하니 그 볼기를 대신 맞기를 원합니다."
天后曰 忠君之心出於孝 友者果矣 朕若生女則 當妻于慕珍及汝矣
천후가 말하였다.
" 군을 섬기는 마음은 효에서 나오는데 과연 우애가 있는 아이로구나.
짐이 만약 딸을 낳으면 마땅히 <모진慕珍>과 너의 처로 할 것이다."
郎喜起拜謝之
<위화>랑이 기뻐하며 일어나 사례하고 절하였다.
天后出翠凰問於郎曰
천후가 나가자 <취황翠凰>이 <위화>랑에게 묻고 말하였다.
吾亦生女妻汝何如
나 역시 딸을 낳아 너의 처로 하면 어떻겠는가?"
郎搖首曰 將娶天后女 不用伯母女
<위화>랑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하였다.
" 천후의 딸에게 장가들 것이니 백모(伯母)의 딸은 소용이 없습니다."
翠凰曰 汝不以吾女妻之 不使非西弟之
<취황翠凰>이 말하였다.
" 너는 나의 딸을 처로 하지 않으니 <비서非西>를 동생으로 여기지 말라"
郎乃泣曰 願從母言 恐天后不恕 母與我俱危 不如從天后
이에 <위화>랑이 울면서 말하였다.
" 원컨데 어머니의 말을 따르면 천후가 어머니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 두렵습니다.
함께 위태로우니 천후를 따르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翠凰奇其言 告于剡臣公曰
<취황翠凰>이 그 말이 기이하여 <염신剡臣>공에게 고하여 말하였다.
吾子雖愚 以魏花爲兄 必有幸矣
" 비록 나의 아들은 우매하나 <위화魏花>가 형이니 반드시 행운이 있을 것입니다."
公曰吾所信待 專在此兒汝與元兮 勿謂母微(而)輕之
(염신)공이 말하였다.
" 나의 소신은 기다리는 것이다.
이 아이의 운명은 너와 <원혜元兮>에게 오로지 달렸으니 어미에게는 이를 가볍게 말하지 말라"
翠凰曰妾等已知夫主之志 豈敢忽乎
<취황翠凰>이 말하였다.
"첩 등은 이미 남편의 뜻을 아는데 어찌 감히 이를 소홀히 하겠습니까?"
以此元臣欲讓其嗣于郎 公嘉其有太伯之孝 而欲許之
이리하여 <원신元臣>보다 <위화>랑에게 그 후사를 양보코자 하니
<염신>공은 태백지효(太伯之孝)가 있음을 가상히 여겨 이를 허락코자 하였다.
18. <위화魏花>, <염신剡臣>의 적자(嫡子)가 되다.
碧我爭之曰 賤妾之少子 安敢受嫡母冢子之位 命郎不受
<벽아碧我>가 이를 다투어 말하였다.
"천첩의 아들이 감히 적모적자의 지위를 받겠습니까? <위화>에게 명하여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公怒欲笞碧我 碧我拒之曰
공이 노하여 <벽아碧我>를 매질하려 하자 <벽아碧我>가 이를 거부하며 말하였다.
妾以獻身於郎君非妾身也 妾雖賤人郎君宰相也
不敢以宰相之身被笞也 郎君若免妾爲庶人歸
妾骸骨則可以受怒當笞 若以妾爲妻則不可
况妾在四節之林 不知何時當寵 安敢自輕
"첩이 낭군에게 몸응 바쳤으니 첩의 몸이 아닙니다. 첩은 비록 천한 사람이나 낭군께서는 재상입니다.
감히 재상의 몸을 매질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낭군께서 첩을 면하게 하여 서인(庶人)으로 돌아가도록 하면
첩의 해골이라도 노여움으로 마땅히 매질을 받음이 옳습니다. 만약 첩이 처라면 옳지 않습니다.
하물며 첩에게는 사절지림(四節之林)이 있어 어느 때에 마땅히 총애가 있을 지 알지 못하는데
어찌 스스로 가볍게 할 수 있겠습니까?"
公乃釋怒而抱郎曰 汝母甚頑 汝當從父
이에 공이 노여움을 풀고 <위화>랑을 안고 말하였다.
"너의 어머니는 아주 완고하니 너는 마땅히 아버지를 따라야 한다."
郎方五歲而能不屈曰 母雖頑而忠于父 弟雖寵而服于兄
<위화>랑은 방년 5살로 굴복할 수 없어 말하였다.
"어머니는 비록 완고하나 아버지에게 충성하여야 하고 동생은 비록 총애하나 형에게 복종하여야 합니다."
公益愛之曰 汝言賢如此 故可以冢之 以賢代長興 家之道也
<염신>공이 더욱 이를 사랑하며 말하였다.
"너의 말의 현명함이 이와같으니 가이 적자이다. 장흥(長興) 대신 현(賢)이 가문의 도(道)이다."
郎曰賢者知弟不可以爲兄 兄者君也 弟者臣也 臣可以爲君乎
國賴臣賢家依弟 良弟亦不可不賢也
<위화>랑이 말하였다.
"현명한 자는 동생이 형을 위함은 옳지않고 형은 군(君)이고 동생은 신하이니
신하가 군(君)을 위함이 옳은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나라는 현명한 신하에게 의지하고 가정은 좋은 동생에게 의지합니다.
동생이 현명하지 않음은 옳지 않습니다."
염신(원혜) - 원신(481- )
염신(벽아) - 위화(487- )
<위화>가 이복형인 <원신>을 형으로서가 아니라 군(君)으로 섬기고자 하는 것이다.
元兮宮主自內聞之走抱郎曰
<원혜元兮>궁주가 내실에서 이 말을 듣고 뛰쳐나와 <위화>랑을 안고 말하였다.
好吾子也 妾怨郎君之廢元臣者久矣 今聞此言 郎君欲立此子者無疑也
願以此子爲吾子以代元臣
"좋은 우리 아들이다.
첩은 <원신元臣>을 폐하니 오래도록 낭군을 원망하였습니다.
지금 이 말을 들으니 낭군께서 이 아들을 세우고자 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원컨데 이 아들로 우리 아들 <원신元臣>을 대신하기를 바랍니다."
公大喜曰吾妻之言甚合
<염신>공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 내 처의 말이 아주 합당하다."
乃命爲元兮子而郎與元臣 相讓其冢數年不決
이에 <원혜元兮>에게 명하여 <위화>랑과 <원신元臣>을 아들로 하여
서로 그 적자를 사양한 지 수년이었으나 해결이 되지 않았다.
帝乃命元臣爲白欣公冢孫 以郎爲助里宮冢婦孫
이에 제가 <원신元臣>을 <백흔白欣>공 적손으로 <위화>랑을 <조리助里>궁 부인쪽 적손으로 하였다.
미해(청아) - 백흔(조리) - 염신(원혜) - 원신
순실(청아) - 조리(백흔) - 염신(벽아) - 위화
以兩立之 爲郎賜田園及助里宮財寶 郎年七歲也
양쪽 가문을 세우고 <위화>랑을 위하여
전원(田園)과 <조리助里>궁에 재물과 보화를 내리니 <위화>랑의 나이 7살이었다.
소지왕 15년 493년이다.
19. <염신剡臣>공과 <옥량玉梁>낭주의 만남
時剡臣公 新娶乃宿公女玉梁娘主生子
때에 <염신剡臣>공은 <내숙乃宿>공의 딸 <옥량玉梁>낭주에게 새로 장가들어 아들을 낳았다.
내숙(미량) - 옥량(473- )
염신(옥량) - 염량(494?- )
剡梁寵冠 諸室碧我之寵亦大減 元兮宮主累至而毁
<염량剡梁>이 총애가 으뜸이었고 여러 내실 중 <벽아碧我>의 총애도 크게 줄고 <원혜元兮>궁주는 누차 무너지니
玉梁曰 郎君之疎 我輩者因 玉梁之䜛也
<옥량玉梁>이 말하기를
" 낭군의 소홀함은 내 무리배들이 나를 참소하였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碧我信之不愛剡梁郎諫之曰 吾弟也母亦子之可也
<벽아碧我>가 이를 믿고 <염량剡梁>을 사랑하지 않으니 <위화>랑이 이를 간하여 말하였다.
" 나의 동생이고 역시 어머니의 자식입니다."
碧我曰 剡梁奪汝之財寶可乎
<벽아碧我>가 말하기를
" <염량剡梁>은 너의 재물과 보화를 뺏으려 한다." 라고 하니
郎曰 兄弟無所私 可與之
<위화>랑이 말하기를
" 형제는 사사로이 가지는 것이 없으니 주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하였다.
碧我乃解其玩 寶盡與剡梁而不惜之
이에 <벽아碧我>가 그 완고함을 풀고 보화를 모두 <염량剡梁>에게 주고 애석해 하지 않았다.
玉梁以愛其子 告剡臣公 公益賢碧我曰
<옥량玉梁>이 그 아들을 사랑하여 <염신剡臣>공에게 고하니 공은 <벽아碧我>를 더욱 현명하다고 하며 말하였다.
他妻皆妬 而汝不妬 汝眞吾妻也
" 다른 처들 모두가 질투를 하는데 당신은 질투하지 않으니 당신은 진정 나의 처이다."
乃生雪花 郎詣助里得順實郎古笛欲吹之
이에 <설화雪花>를 낳으니 <위화>랑이 <조리助里>에게 가서 <순실>랑의 옛 피리를 얻어 불고자 하였다.
염신(벽아) - 설화(494?- )
時猪君之裔 有善吹笛者 召之敎郎以笛得音
이때 <저군猪君>의 후예 중에 피리를 잘 부는 자가 있어
이를 불러 <위화>랑을 가르치니 <위화>는 피리 소리의 음을 얻었다.
其徒有駃兒者亦能笛 亦出入敎郎 駃嬌如婦女 能媎于內
그 무리 중에 <결아駃兒>라는 자가 있어 역시 피리에 능하여 출입하여 <위화>랑을 가르치니
<결아>는 마치 부녀같이 아리따워 내실에서 잠자리 시중을 능히 할 수 있었다.
碧我與之和琴于月下 興高而相通娠女斗花
<벽아碧我>와 함께 달 아래서 거문고로 화답하다 흥이 최고에 이르자 상통하여 딸 <두화>를 임신하였다.
恐公知之而惱之 郎乃逐駃兒
<염신>공이 이를 알까 두려워하여 괴로워하니 <위화>랑이 <결아駃兒>를 쫓아내었다.
20. <선등宣登>과 <벽아碧我>의 사랑
內宮衛監宣登亦善吹笛 願得見順公古笛
내궁위감(內宮衛監) <선등宣登> 역시 피리를 잘 불어 <순실>공의 엣 피리를 보고 얻기를 원하였다.
지도로(찬황) - 선등(469-526)
剡臣公命碧我邀宣登敎郎
<염신剡臣>공이 <벽아碧我>에게 명하여 <선등宣登(469-526)>을 맞이하여 <위화>랑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碧我乃邀之宣登曰
吾於蝴蝶樓吹笛之時 見叔母之善舞請一舞
이에 <벽아碧我>가 그를 맞이하니 <선등宣登>이 말하였다.
" 내가 호접루(蝴蝶樓)에서 피리를 불 때 숙모의 고운 춤을 보고 한번 춤 출 것을 청합니다."
<벽아>와 <선등>은 동갑으로 이때 28살이다.
<염신>은 <등흔>의 조카이고 <선등>은 <등흔>의 외손자이다.
<벽아>는 <염신>의 처로 <선등>의 외숙모가 된다.
碧我辭之 不得和笛 而舞 宣登稱之曰 眞舞聖之妻也
<벽아碧我>가 이를 사양하였으나 부득이 피리소리에 춤으로 화답하니 <선등宣登>이 이를 칭하여 말하기를
" 진정 무성(舞聖)의 처입니다" 라고 하였다.
自是宣登學舞于碧我 或至夜深偶因大雪宿于碧我寢 遂與之相通 宣登曰
久慕叔母 今夜奉枕 無以報恩
이로 부터 <선등宣登>이 <벽아碧我>에게 춤을 배우니
혹은 심야에 이르러 우연히 큰 눈을 만나 <벽아碧我>의 침상에서 자게되어 마침내 서로 상통하니
<선등宣登>이 말하였다.
" 오래도록 숙모를 사모하다 오늘 밤 잠자리를 받드니 은혜에 보답 할 길이 없습니다."
碧我乃以私通 駃兒之事告之所娠之兒 必肖駃兒奈何
이에 <벽아碧我>가 사통하여 <결아駃兒>의 일을 고하고
아이를 임신한 바 필히 <결아駃兒>를 닮을 것이니 어찌 하느냐 라고 하니
宣登笑曰 一念生一㤼 一㤼生一業 情事亦天定
叔母何惱 叔父左抱索娥右取玉梁 久曠叔母
叔母亦與我行樂不亦可乎
<선등宣登>이 웃으며 말하였다.
"일념(一念)은 일겁(一㤼)을 낳고 일겁(一㤼)은 일업(一業)을 낳으니 정사(情事) 역시 하늘이 정한 것입니다.
숙모는 어찌 괴로워 하십니까?
숙부는 왼쪽에 <색아索娥>를 안고 오른 쪽에 <옥량玉梁>을 취하여 오래도록 숙모를 비워 두었습니다.
숙모 역시 나와 함께 재미있게 놀고 즐기는 것도 역시 옳지 않겠습니까?"
碧我曰 誠如郎君之言 妾無憂矣 妾乃賤人恐得重罪
<벽아碧我>가 말하였다.
"낭군이 정성을 다하여 그와같이 말을 하니 첩은 걱정이 없습니다.
첩은 천한 사람으로 중죄를 받을까 두려웠습니다."
宣登曰 叔父若怒 我當娶叔母爲妻矣 勿慮也
<선등宣登>이 말하였다.
"숙부가 만약 노여워하면 마땅히 숙모에게 장가들어 처로 삼을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碧我大喜乃 盡情而媎之
이에 <벽아碧我>는 크게 기뻐하며 정을 다하여 잠자리 시중을 들었다.
自是宣登累宿於碧我 情若夫婦
이로 부터 <선등宣登>은 누차 <벽아碧我>에게서 잠을 자니 정이 부부같았다.
郎爲母而不言 碧我曰 吾子賢人必享大福
<위화>랑은 어머니를 위하여 말을 하지 않으니 <벽아碧我>가 말하였다.
"내 아들은 현인이니 반드시 대복(大福)을 누릴 것입니다."
及生斗花
급기야 <두화斗花>를 낳았다.
결아(벽아) - 두화(496?- )
宣登負??于剡臣公請罪曰 侄强于叔母也
<선등宣登>이 부담되어 <염신剡臣>공에 죄를 청하며 말하였다.
"조카가 강제로 숙모에게 한 짓입니다."
公笑曰 汝何言乎
공이 웃으며 말하였다.
"너는 무슨 말을 하는가?"
乃命宣登洗斗花 仍許碧我于宣登
이에 <선등宣登>에게 명하여 <두화斗花>를 씻게하고 <벽아碧我>를 <선등宣登>에게 허락하였다.
時宣登爲勝殿師 常在太子宮
이때 <선등宣登>은 승전사(勝殿師)로 항상 태자궁에 있었다.
天后乃召碧我于太子宮 拜爲內傳 以郎爲太子舍知
幷床而食同卷而讀 太子九歲而郎十歲
이에 천후가 <벽아碧我>를 태자궁에 불러 내전(內傳)으로,
<위화>랑을 태자 사지(舍知)로 벼슬을 내리고 상에 어울려 같이 먹도록하고 책 일기를 권하니
태자는 9살이고 <위화>랑은 10살이었다.
소지왕 18년 496년이다.
玉顔 龍光 完若日月之相對
구슬같은 얼굴과 빛나는 눈동자는 완전히 일월의 상과 같았다.
碧我與宣登同年二十八
<벽아碧我>와 <선등宣登>은 동갑으로로 28세였다.
식진(벽씨) - 벽아(469-526)
지도로(찬황) - 선등(469-526)
<벽아>와 <선등>은 같은 해에 태어나서 같은 해에 죽어 백아릉에 함께 묻혔다.
始得比翼之情 又蒙甘盤之榮 不勝感激 至誠事太子
처음으로 비익(比翼)의 정을 얻고 또 감반(甘盤)의 영화(榮華)를 입으니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태자를 지성으로 섬기었다.
天后累至賞賜曰 吾子得好師傳 朕無憂矣
천후가 누차 상을 내리며 말하였다.
" 나의 아들이 좋은 스승을 얻어 전하니 짐은 걱정이 없다."
時天后以父公智度路爲副君委以政事 依二聖古事巡狩國中 封于神山爲樂
이때 천후는 아버지 <지도로智度路> 부군에게 정사(政事)를 위임하고
이성(二聖)의 고사(古事)에 의하여 나라 안을 순수하며 신산(神山)에서 받들어 모심을 즐거움으로 하였다.
습보(조생) - 지도로(437-514 22대 지증왕 재위 500-513)
지도로(라황) - 후황(466-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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